"명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음식", 현대판 자산어보
우리 해양영토·문화의 가치를 알려주는 책, 김창일 학예사의 <물고기 인문학>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일본 오사카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편의점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명란을 일본에서는 명태자식(明太子이)라고 하나봐." "나는 다라코를 명란으로 알고 있는데 뭐가 다른 거야." "일본은 명란의 나라답게 제품이 다양하네." 등의 대화가 오갔다.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해산물에 대해 아는 척 하지 말라는 아내의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란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음식이다. 명란젓과 더불어 명태라는 한국식 이름도 전해 졌다. 명태 주산지인 함경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먹던 겨울 음식이었다. 가와하라 도시오는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어느 날 시장에서 소금에 절인 명란을 구입해 부산에서 자주 먹던 매운 명란젓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주변 사람들의 호평에 용기를 얻어 1949년부터 팔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인 입맞에 맞춘 숙성절임 명란을 팔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김창일 <물 만난 해양민속학자의 물고기 인문학>
물메기탕이 겨울 별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남해에서는 커다란 머리와 넓적한 몸뚱이가 메기를 닮았다 해서 물메기라 부르고 동해안 지역에서는 둔해 보이는 몸짓이 곰같다 해서 곰치라 한다. 물메기는 꼼칫과 어류인데 세계에 190여 종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는 꼼치, 물메기, 아가씨 물메기 등 여덟 종이 서식한다.
남해와 서해에는 꼼치가 잡히고 미거지, 아가씨물메기, 물메기는 동해에서 주로 어획된다.남해 서해안에서는 꼼치가 물메기탕의 재료가 되고 동해안은 미거지, 아가씨물메기, 물메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탕의 재료로 사용한다. -김창일 <물 만난 해양민속학자의 물고기 인문학>
드디어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해놓고 기다리던 국립민속박물관 김창일 학예사의 신간 <물 만난 해양민속학자의 물고기 인문학>이 도착했다. 책의 일부는 칼럼을 통해 이미 읽어 봤는데 나머지도 어서 빨리 읽고 싶었다. 어류나 해양문화에 관한 전문 지식을 김창일처럼 간결하고 쉽게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연구자는 희귀하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내공이 깊다.
해양 연구자 중에 김창일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류를 연구하기 위해 어부가 되고, 해녀를 연구하기 위해 해남이 되고, 바닷속을 연구하기 위해 기꺼이 머구리(잠수부)가 된다. 더 나아가 어촌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 아예 그곳으로 이주해 항포구의 주민이 되어버린다. 잠깐 스치듯 둘러보고 인터뷰 조금 한 뒤 논문을 써내는 책상머리 연구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연구자다.
섬과 항포구에 들어간 연구자
▲ 김창일 학예사. ⓒ 김창일 페이스북
김창일은 해양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섬과 항포구에 들어가 1년씩 상주하며 연구를 해왔다. 사계절을 겪어봐야 그 섬의, 그 항포구의 해양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평도와 남해도에서 사계절을 지내며 섬의 해양문화를 연구했고 울산, 삼척의 포구에서도 1년씩 어부들과 물고기를 함께 잡으며 어류의 생태와 어로문화를 연구했다. 그렇게 그는 또 부산 영도와 가덕도, 강화도 등 전국 곳곳의 섬과 항포구에서 장기거주 하며 8년 넘게 현장 연구를 해왔다.
오죽했으면 그의 아내가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 어부에 관한 동화책을 읽어주자 아이가 "우리 아빠도 어부지?" 하고 묻더란다. 그런 생생한 연구의 결실을 모아 그는 지난해 여름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국민 생선 조기, 명태, 멸치를 주제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명치> 전시회를 기획했고 공전의 히트를 쳤다. 모두 현장에서 제대로 배운 가락이 있었기에 진짜 어촌을 통으로 옮겨다 놓은 듯 생생한 전시를 열 수 있었을 것이다.
▲ 김창일 학예사. ⓒ 김창일 페이스북
그는 어로문화 연구를 위해 어선에 직접 올라 그물, 통발, 주낙을 투망하고, 미끼를 매달고, 잡은 물고기를 분류해 어창에 넣고, 경매가를 높이 받으면 위판장에서 환호하는 등 어부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가능한 전시였다. 그의 새책 <물고기 인문학> 또한 그가 어로 현장에서 어부로 생활 하며 자연스럽게 물고기, 사람, 바다를 몸으로 알게 됐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책이다.
그는 어부들과 혈육처럼 함께하며 연구했다 해서 어부들의 삶을 애틋하고 아름답게만 기록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과 야만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주야장천 한 방향으로만 거울을 비추는 건 조사자로서 현실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의심하며 기록한다. 실사구시를 구현했던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 같은 실학자들처럼.
우리 바다, 해양영토는 육상영토보다 4.5배나 넓다. 하지만 대부분의 육지 사람들은 우리 해양영토에 대해 거기 사는 사람이나 문화에 대해 무지하다. 관심도, 공부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해양영토와 해양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줄 책이 나왔다. 그래서 이책은 해양 영토의 가치를 반드시 알아야 할 전국민 필독서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단언컨데 <물고기 인문학>은 현대판 자산어보이고 김창일 학예사는 현대판 정약전이 분명하다.
▲ 책 <물 만난 해양민속학자의 물고기 인문학> 표지. ⓒ 휴먼앤북스
덧붙이는 글
강제윤 기자는 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a href="https://cafe.naver.com/islandnet"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cafe.naver.com/island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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