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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나온 뮤지컬 명작 '위키드', 제발 아이맥스에서 보세요

[리뷰] 영화 <위키드>

등록|2024.11.21 15:41 수정|2024.11.21 15:46
*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처음 뮤지컬 <위키드>를 본 것은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였다. 원작이 되는 <오즈의 마법사>를 어릴 적 읽었던 동화로만 어렴풋하게 기억하던 상황에서도 뮤지컬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탄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위키드>가 난고 끝에 영화관으로 돌아왔다. 오래전부터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와 직결되는 <위키드>를 영화화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숙원이었지만, 계속되는 제작 난항과 판권 분쟁으로 미래는 없는 듯 보였다. 소설 <오즈의 마법사>보다도 뮤지컬의 기반에 더 가깝다고 알려진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판권이 유니버설 픽처스에 있어 다른 스튜디오들이 쉽사리 영화화하지 못한 것도 있다.

일례로, 디즈니는 <이블 데드> 시리즈로 잘 알려진 감독 샘 레이미를 통해 오즈의 이야기를 각색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영화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흥행과 비평 성적 모두 놓쳐 버렸고, 할리우드의 관심은 다시 뮤지컬의 온전한 영화화로 돌아오게 된다.

완벽히 살려낸 원작의 정치성

▲ 영화 <위키드> 스틸컷 ⓒ 유니버설 픽쳐스


결국 영화 <위키드>의 메가폰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잘 알려진 존 추 감독에게 돌아가게 됐고,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 역에 신시아 에리보가, 북쪽 마녀 '글린다' 역에 유명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본작의 크레딧에는 아버지의 성을 포함한 예명 '아리아나 그란데-뷰테라' 로 기재되어 있다)가 자리하게 됐다.

하나의 뮤지컬을 두 개의 영화로 나눈 결정과 화려한 분홍색과 초록색 일변인 예고편의 분위기가 맞물려, 원작 팬들은 <위키드>만의 정치적 코멘터리를 살려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위키드>는 뮤지컬이기 이전에 동명의 소설이었는데, 원작자 그레고리 맥과이어는 5권으로 구성된 소설이 '인식의 틀'과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 본인도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성소수자이니만큼, 이러한 메시지는 <위키드>의 중추이기도 하다.

그런 맥과이어의 말마따나,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악역으로만 묘사되던 사악한 서쪽 마녀를 비극적 반(半)영웅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다. 태어날 때부터 녹색의 피부를 가져 주변으로부터 따돌림받아 온 마녀 '엘파바'가 마법을 배우는 '쉬즈 대학교'에 입학해 우정과 사랑을 배우고, 마침내 '오즈의 마법사'의 눈에 나게 돼 그를 만나러 가게 된다는 줄거리는 원작 소설과 뮤지컬, 그리고 영화가 공유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법사는 실제적인 마법 능력을 갖추지 못한, 그러나 선한 인물로 묘사됐다. 하지만 <위키드>의 마법사(제프 골드블럼 분)는 오즈의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말하는 동물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공공의 적'을 매개로 여론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선한 마음으로 가득한 엘파바를 그런 마법사의 도우미로 삼으려고 했던 '마담 모리블(양자경 분)'은 엘파바가 마법사의 독재를 돕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곧바로 총애했던 제자를 사악한 자로 몰아가는 등 '파시스트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도 한다.

팬들의 우려에 대답이라도 하듯, <위키드>는 하나의 뮤지컬을 두 개의 긴 영화로 쪼개고, 남는 러닝타임을 통해 이러한 정치성을 충실히 보강한다. 말하는 염소로 탄압받는 대상인 '딜레몬드 교수'와 그 동료들의 분량을 늘렸고, 온 세상이 그들을 적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분노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위키드>는 언제까지나 악인으로 규정된 자들, 모함받은 자들 그리고 약한 자들을 위한 서사시여야 하며, 본작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무엇보다 강력한 음악의 힘

▲ 영화 <위키드> 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


물론, 뮤지컬 원작이니만큼 그 속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 역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위키드>의 뮤지컬 넘버(노래)들은 원작보다 진득하게 풀어진다. 가사와 가사 사이에 영화적 연출을 듬뿍 담은 대사와 장면이 들어가는가 하면, 코러스를 능숙하게 이용해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음악적 감상을 만족시켜 주기도 한다.

주연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에리보의 열연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위키드>는 녹음된 하나의 음원을 사용하는 대신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라이브로 노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덕분에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직접 노래하는 모습이 유출돼 틱톡(TikTok)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위키드>의 이러한 라이브 음원은 배우들의 발소리와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녹음해, 마치 뮤지컬 공연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아이맥스(IMAX), 돌비(Dolby Cinema) 등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특별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요즈음, <위키드>는 풍부한 음향으로 특별관에 들이는 돈이 아깝지 않게 한다.

정성을 아끼지 않은 세트 디자인 역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존 추 감독은 영화 곳곳에 사용되는 건물이나 배경이 거의 실물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영화의 시작 장면에 사용되는 수많은 양의 튤립은 직접 밭에 심어 촬영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제작진의 이러한 정성은 다채로운 색감으로 <위키드> 속의 풍경을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담아낸다.

이처럼, <위키드>는 원작 뮤지컬은 물론이고 소설의 예리한 시각까지 똑바로 영화 속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프로젝트에 각별한 애착을 가진 배우와 제작진들이 모여 만들어진 수작이 됐다.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위키드>는 1년짜리 '인터미션(뮤지컬의 막과 막 사이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깝지 않게 한다. <위키드>의 강력하고 정교한 이야기를 극장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이번 겨울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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