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주도자 중 유일한 독립유공자 서재필
[오늘의 독립운동가 72] 11월 20일 독립문 준공
▲ ㅂ회서울 독립문 ⓒ 국가유산청
흔히 '독립문'이라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서울 독립문'이다. 그래서 국가유산청 누리집은 독립문을 영어로 'Dongnimmun Arch, Seoul'로 표기한다. 그냥 '독립문'이라 하면 될 성싶지만 그렇게 하면 문화유산 명칭 부여 원칙에 어긋난다.
먼저 소재지를 밝히고, 이어서 성격을 말해주는 이름을 밝힌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 '서울 독립문' 식이다. 우리나라 안에 다보탑과 독립문이 각각 하나뿐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 외국인 등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위치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은 1894년부터 1896년까지 내정과 제도에 관한 개혁을 추진하지만 이권 침탈을 획책한 외세의 간섭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자주독립을 유지하기도 힘겨운 처지에 몰렸다. 이에 당시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지키겠다는 다짐의 표시로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문 건립을 주도한 단체는 독립협회였다. 독립협회는 국왕의 동의부터 얻은 후 국민 모금운동을 펼치며 독립문 건립에 뛰어들었다. 1896년 11월 21일 주춧돌을 놓았고 1년 만인 1898년 11월 20일 완공했다.
서재필, 독립협회 창설과 독립문 건립 주도
고등학교 국사 시간을 돌이켜보면 '독립문=서재필' 식으로 기억된다. 독립협회 결성을 주도한 인물이 서재필이고, 프랑스 개선문을 염두에 두고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토대로 독립문 설계도가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갑신정변= 3일천하'도 독립문과 함께 서재필을 연상시키는 개념이다. 그와 덩달아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의 인물들도 기억에 되살아난다. 독립문 준공 날짜와 서재필에 대해 알아보는 김에 그들의 생애도 대략 훑어본다.
김옥균 암살, 박영효 1910년 이후 친일활동 매진
갑신정변 실패 후 주요 주도자들은 한결같이 외국으로 달아났다. 다만 홍영식은 망명하지 않고 끝까지 임금을 호위하다가 청나라 군사에게 살해되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현해탄을 건너가 1894년까지 10년 동안 주로 일본에 거주했다. 하지만 1894년 3월 민씨정권이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상해에서 암살되었다.
서광범은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885년 다시 미국으로 갔다. 1894년 일본의 주선으로 귀국해 법무대신이 되고 박영효와 함께 개혁을 추진했다. 1895년 특명전권공사를 자청해 미국에 갔다가 폐병 악화로 1897년 객사했다.
박영효는 여러 자객들의 위협을 받았으나 죽지 않았고, 1894년 일본의 도움에 힘입어 내무대신이 되었다. 그 후 총리대신서리로서 약 200일 동안 을미개혁을 추진했다. 그 후 정부가 친러로 기울자 1895년 재차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는 1910년 이후 친일 활동에 매진한다.
1919년 이후 서재필은 미국에서 독립운동
서재필은 일본과 미국에 머물다가 1895년 귀국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한글판 <독립신문>을 발행하고(1896년 4월 7일부터 1899년 12월 4일까지) 1896년 독립협회 창설을 주도하지만 친러정권이 들어서자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간다.
서재필은 1919년 3·1운동 후 줄곧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다. 1947년 미군정청 최고 정무관으로 잠시 귀국하지만 194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사망한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이다.
갑신정변 주도자 중에 그만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갑신정변이라는 같은 사건을 이끌었지만 속내는 달랐던 모양이다. 독립문 완공일을 맞아 서재필의 명복을 빌며, 갑신정변 주도자들의 안타까운 후반부 삶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덧붙이는 글
국가 인정 독립유공자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려면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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