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된 아들, 가족들은 충격'? <조선일보>의 문제적 칼럼
[주장]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조선일보>, 언론의 책임과 역할 되새겨보길
지난 13일, <조선일보>는 "딸이 된 아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지면에 실었다. 해당 칼럼은 연예인 하리수, 유튜버 풍자 등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가족들과 갈등을 빚은 것을 언급하면서 "이들 부모의 고통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라고 말한다.
또한 칼럼은 "부모는 자식이 정상적 가족·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라며 마치 트랜스젠더 개인이 '비정상적 일원'인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서술하고, "세상이 너무 바뀌어 성 정체성 논란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라며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논란'이라 칭했다.
이어 칼럼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딸인 트랜스여성 비비안 제나 윌슨을 "아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머스크가 공화당, 그것도 트럼프 적극 지지로 바뀐 것도 아들이 준 충격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 어떤 일이 이보다 큰 충격이 될 수 있을까 싶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고통 대신 '가족의 충격'만?
이처럼 해당 칼럼은 트랜스젠더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마치 그들의 가족이 더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인 양 서술하며 논의의 초점을 비틀었다. 가족의 혼란과 감정적 어려움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사회적 혐오와 차별 속에 내몰리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고통이 과연 가족의 고통보다 덜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조선일보>는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면서도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이나 고통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철저히 타자화했다고 본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 사안에 대해 언론이 중심을 두어야 할 사안은 자극적인 언어로 구성된 가족의 충격적 감정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들이 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다.
가족과 사회의 '혼란함'을 강조하는 논조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생존권과 존엄성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그들의 존재를 공론장에서 다시 한 번 부정당하게 만든다. 이는 언론이 조장하는 사회적 폭력의 일종이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는 '언론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호기심이나 배척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인 오늘,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길
11월 20일인 오늘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매년 이날, 세계 곳곳에서 혐오와 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트랜스젠더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유럽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인 트랜스젠더 유럽(Transgender Europe, TGEU)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전 세계에서 살해된 트랜스젠더의 수를 연례보고서로 발간한다.
지난 13일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 세계에서 살해된 트랜스젠더만 350명에 달한다. 2008년 보고서를 발간한 이래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며 보고서 발간 이래 사망한 트랜스젠더 또한 총 5천 명을 넘어섰다.
지난 6일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공공연히 트랜스젠더의 존체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을 장관직에 임명하고 있다. 이에 비비안 제나 윌슨을 비롯해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미국 땅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무시한 채 편향되고 자극적 사례만을 제시하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논란거리'로 서술하는 <조선일보>의 칼럼은 혐오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조선일보>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길 바란다.
또한 칼럼은 "부모는 자식이 정상적 가족·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라며 마치 트랜스젠더 개인이 '비정상적 일원'인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서술하고, "세상이 너무 바뀌어 성 정체성 논란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라며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논란'이라 칭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고통 대신 '가족의 충격'만?
▲ <조선일보>의 해당 칼럼은 트랜스젠더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마치 그들의 가족이 더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인 양 서술하며 논의의 초점을 비틀었다. ⓒ <조선일보>
이처럼 해당 칼럼은 트랜스젠더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마치 그들의 가족이 더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인 양 서술하며 논의의 초점을 비틀었다. 가족의 혼란과 감정적 어려움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사회적 혐오와 차별 속에 내몰리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고통이 과연 가족의 고통보다 덜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조선일보>는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면서도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이나 고통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철저히 타자화했다고 본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 사안에 대해 언론이 중심을 두어야 할 사안은 자극적인 언어로 구성된 가족의 충격적 감정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들이 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다.
가족과 사회의 '혼란함'을 강조하는 논조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생존권과 존엄성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그들의 존재를 공론장에서 다시 한 번 부정당하게 만든다. 이는 언론이 조장하는 사회적 폭력의 일종이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는 '언론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호기심이나 배척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인 오늘,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길
▲ 유럽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인 트랜스젠더 유럽(Transgender Europe, TGEU)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전 세계에서 살해된 트랜스젠더의 수를 연례보고서로 발간한다. 지난 13일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 세계에서 살해된 트랜스젠더만 350명에 달한다. 2008년 보고서를 발간한 이래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며 보고서 발간 이래 사망한 트랜스젠더 또한 총 5천 명을 넘어섰다. ⓒ TGEU 누리집 갈무리
11월 20일인 오늘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매년 이날, 세계 곳곳에서 혐오와 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트랜스젠더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유럽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인 트랜스젠더 유럽(Transgender Europe, TGEU)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전 세계에서 살해된 트랜스젠더의 수를 연례보고서로 발간한다.
지난 13일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 세계에서 살해된 트랜스젠더만 350명에 달한다. 2008년 보고서를 발간한 이래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며 보고서 발간 이래 사망한 트랜스젠더 또한 총 5천 명을 넘어섰다.
지난 6일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공공연히 트랜스젠더의 존체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을 장관직에 임명하고 있다. 이에 비비안 제나 윌슨을 비롯해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미국 땅을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무시한 채 편향되고 자극적 사례만을 제시하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논란거리'로 서술하는 <조선일보>의 칼럼은 혐오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조선일보>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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