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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하고 싶었지만> 이것은 단순한 육아일기가 아니다

1970·1980년대 부산, 한 어머니의 투쟁과 사랑의 기록

등록|2024.11.20 15:53 수정|2024.11.20 15:54
1950년생 이순희씨의 육아 일기 <통곡하고 싶었지만>이 최근 출간돼 주목 받고 있다. 이 책은 1970, 1980년대에 두 아들을 키우며 쓴 일기를 모은 것으로,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과 장애아동을 키우는 어머니의 고군분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순희씨의 일기는 1975년 10월 28일, 둘째 아들 형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 출산 당시 아이가 거꾸로 나오면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고, 결국 형수는 뇌성마비 진단을 받게 된다. 이후 이순희씨는 매일 용기를 내어 아들의 재활을 위해 노력했다.

▲ 책 <통곡하고 싶었지만> 표지. ⓒ 빨간소금


일기에는 형수의 물리치료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순희씨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가정에서도 치료를 병행했으며, 치료 동작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했다. 단순한 육아 일기를 넘어 치료 일지의 역할도 했다. 예를 들어 "반듯이 누운 상태에서 뒤집어서 엎드리고 다시 반듯이 눕는 과정을 반복했다"와 같은 구체적인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순희씨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형수를 특수학교 대신 일반 학교에 보내고, 운동회와 소풍에도 참여시키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아들의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한테 몸이 불편한 동생이 있다고 반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분위기라면 엄마로서 절대 수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담임 선생님께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차별에 맞서 싸웠다.

일기에는 당시 부산의 모습도 생생히 담겨 있다. 경주 도투락 월드로의 가족 여행, 함박스테이크 외식, 오락실과 독서실의 등장 등 1980년대 부산의 문화와 생활상이 세세히 묘사돼 있다. 또한 일반 목욕탕 요금이 950원인데 비해 사우나탕 요금이 2500원인 것에 놀라는 등 당시의 경제 상황도 엿볼 수 있다.

혼자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이순희씨의 투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 학교 선생님, 물리치료사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숙모님이 긴 외출 시 탄불을 피워두거나, 형수의 담임 선생님이 방학 때 손으로 쓴 긴 편지를 보내주는 등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다.

이순희씨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꽃꽂이를 놓지 않았고, 인생 후반부에는 사회복지사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현재는 주로 여성장애인 가정을 지원하는 홈헬퍼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한편, 형수는 대학에서 장애인 인권 운동에 열중하다 졸업 후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 설립했다.

그의 일기는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 여성의 역할, 가족의 의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숨겨진 투쟁과 사랑의 기록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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