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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남매가 사는 집, 대가족은 행복이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자기만의 방>

등록|2024.11.21 10:12 수정|2024.11.21 10:12

▲ <자기만의 방> 스틸 ⓒ ㈜씨네필운


이 영화를 선택할지 말지 망설일 이유 세 가지를 추리해 봤다.

# 그 처음은 제목부터 노리고 작명한 1929년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수필 몫이 될 테다. 여성의 자기해방을 위해 독립적인 공간과 경제적 자유가 절대적 조건임을 피력하며 여성운동의 기운과 함께 등장한 기념비적 작품이 이후 세상에 미친 영향력은 해당 제목을 활용했거나 패러디한 숱한 작품과 인용으로 확인할 수 있겠다. 본 작품 역시 정확하게 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 다음으론 영화 <곡성>에서 잊기 힘든 충격을 준 청소년 배우 김환희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뭣이 중한디'라는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와 함께 각인된 배우도 어느새 대학교 4학년이 됐다. 아직도 <곡성>의 배역으로 기억되는, 이제 성인 연기자가 된 김환희의 주연작이라면 어떤 모습을 지닐까 하고 궁금할 이들이라면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하지만 이 작품으로 첫 장편을 완성한 오세호 감독의 이름이 필자에겐 오히려 더 끌리긴 했다. 감독의 전작 단편 <이상한 슬픔>은 현대판 정글이 되어버린 작은 학원에서 노력해서 얻은 본인의 위태로운 지위를 지키려는 주인공의 심리, 그의 집착이 불러온 스스로 원치 않은 파괴적 결말로 이르는 과정이 제목처럼 묘한 슬픔의 정서로 흐르는 연출이 돋보였던 인상적인 작업이었다. 그런 감독이 장편에서도 자신의 연출력을 돋보일 수 있을지 관심이 갔다.

그렇게 어떤 영화일지 상상하며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코믹한 카피와 제목이 주는 묵직한 중압감이 과연 잘 조화를 이룰까. 상업적인 고려가 필히 수반될 수밖에 없는 장편 개봉영화에 감독의 기세가 먹히진 않을까. 늘 첫 장편은 그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소녀의 '자기만의 방'

▲ <자기만의 방> 스틸 ⓒ ㈜씨네필운


영화의 시작은 요란법석이다. 주인공 '우담'은 9남매의 넷째다. 그는 학교에서 불편한 별명, '햄스터'로 불릴 만큼 요즘 보기 드문 다자녀 가족의 일원이다. 햄스터의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는 걸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우담은 왜 자신의 집만 이렇게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부모님은 중년이 되어서도 워낙 사이가 좋은 나머지, 이러다 10남매 될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른다. 우담은 동생들과 함께 부모님을 상시 감시하며 경계해야 한다.

비좁은 집에서 동생들은 늘 우당탕 뛰어다니고, 아파트 아래층은 거기에 질려 번번이 이사를 떠난다. 오늘도 새로운 이웃이 떡을 돌리러 왔다 유독 자기 집만 가격이 저렴한 비밀을 묻자 우담은 그 원인을 자신들의 형제자매들로 몸소 실증해 보인다. 경악한 표정으로 젊은 부부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17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우담의 간절한 소망이 응답받는다. 그의 집에는 방이 3개 있다. 부모님의 방, 남자 방, 여자 방이다. 아홉째 막내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 우담은 첫째와 둘째 언니랑 함께 여자 방에 거주했지만, 두 언니가 독립해 나가는 덕분에 독방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쁜 그는 방을 꾸미고 문 앞에 출입금지를 떡하니 남들 보라는 듯 붙여놨다. 이제 이 방에서 열심히 공부해 얼른 언니들처럼 독립하는 게 인생의 지상과제다. 하지만 곧 위기가 들이닥친다.

우담에게 햄스터라 비아냥거리며 못살게 구는 원수 같은 동급생이 있다. 공부 못하고 자신과 달리 미래에 대한 대비 같은 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하지만 번번이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 그 이름은 '고경빈'. 날라리 일진 퀸카 같은 캐릭터다. 어제도 오늘도 둘은 툭하면 대치하다 종종 대판 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앙숙이 어느 날 셋째인 오빠 '우주'와 손을 잡고 우담의 집 현관 앞에 나타난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심지어 경빈은 오빠 우주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당장 갈 곳이 없던 경빈은 부모님의 난감한 표정과 함께 당분간 이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런데 이 집에 빈방이 있었던가. 졸지에 우담은 어렵사리 쟁취한 방을 경빈과 함께 써야 할 판이다. 분노가 치밀어올라 주체할 수 없다. 어떻게든 원수 같은 경빈을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경빈은 당장 갈 데가 없으니 바퀴벌레처럼 이곳에 들러붙으려는 행색이다. 무슨 수가 없을까.

다각도로 조명되는 '각자의 방'

▲ <자기만의 방> 스틸 ⓒ ㈜씨네필운


제목만 보고 요즘 독립영화에서 하나의 본류가 된 페미니즘 여성주의 서사의 변주로 본 작품을 짐작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확인하니 가족 시트콤 모양새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응시하면 구심력이 강한 형태로 버지니아 울프를 소환하진 않지만, 명백히 원심력 영역에선 그 자장 안에 있는 작업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울프의 수필에서 1세기가 지난 상황에서 다변화된 개별 입장 속 '자기만의 방(들)'에 대해 살펴보자.

<첫 번째 방>

'자기만의 방'을 이미 성취한 이들이 있다. 9남매의 첫째와 둘째다. 첫째 언니는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큰 탈 없이 성장해 일자리를 얻고 약간의 조력만 함께 하면 독립생활이 가능한 조건에 이르렀다. 그는 경빈과의 갈등으로 차라리 내가 집을 떠나겠다 선언하고 조언을 구하러 온 우담에게 자신이 이룩한 '자기만의 방'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도움을 나누며 가능했던 거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이는 후반부 주인공의 변화에서 핵심적인 열쇠가 되어주는 대목이다.

<두 번째 방>

둘째 언니는 우담의 선발대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복닥거리는 집을 탈출하기 위해 탈모가 올 만큼 열심히 공부한 둘째는 지독히 실용적이다. 공무원 시험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응시할 수 있게 원래 설계된 점을 포착해 성인이 되자마자 공무원이 되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집구석이 지긋지긋한 그는 동생이 함께 살기를 조심스레 청하는 걸 매몰차게 거부한다. 그의 '자기만의 방'은 영화 초반부 내내 우담이 동경하고 추구하던 곳이지만, 오롯이 타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비밀기지이자 은둔 요새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오리지널'에 가장 근접한 공간일 테다.

<세 번째 방>

초반의 시트콤 분위기에서 점점 갈등과 이해, 화해로 향하는 성장 드라마의 골격을 갖춘 영화에서 우담과 갈등의 축이 되는 경빈이 처한 환경과 그가 원하는 이상향이 또 다른 '자기만의 방'을 형성한다. 그가 활달하고 화려한 외양과 달리 늘 위기를 겪는 비밀의 공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잠정적으로 머물게 되지만 보호막과 울타리가 되어주는 우담의 가족이 사는 집 사이의 기묘한 연관 관계는 관객 각자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측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방'에서 '집'으로>

그렇게 고립 지향적인 '자기만의 방'의 추구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부대끼며 협력하는 '가족의 집'으로 어떻게 변환되는지 탐구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척추로 자리매김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에 절실했던 여성의 독립적 공간 추구가 <자기만의 방>을 선언했다면, 한 세기 후 동명의 영화는 여성의 개별적 주체화를 반영하되, 우화적으로 현 세태 속에서 이를 변주하려는 도전에 가까운 기조를 견지한다. 물론 그게 얼마나 화학적으로 잘 녹아들었는지 판단하는 건 관객의 선택이 될 테다.

이 영화의 사용법

▲ <자기만의 방> 스틸 ⓒ ㈜씨네필운


영화는 기대(?)와 사뭇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다. 여성 서사보다는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형상에 가까운 내용이다. 감독의 전작들에서 맛을 봤던 사실주의 색채가 짙은 섬세한 연출과 일상의 갈등하고 대립하는 군상 표현이 절묘했던 기억 대신에 시트콤 드라마 풍의 전개가 초반엔 꽤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야기의 수습이나 갈등의 해소 과정은 조금씩 개연성과 설득력을 획득해 나간다. 독립영화 범주에서 상업영화로 이전하는 단계로 보면 적절하겠다.

리얼리즘과는 간격이 제법 멀다. 아마 작품의 호불호 면에서 가장 큰 지점일 것이다. 사소한 이웃 간의 갈등, 가족 사이의 몰이해가 끔찍한 참극을 숱하게 쏟아내는 세태에서 이 영화 속 귀여운 구석들은 오히려 초현실적 몽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현실의 엄밀한 고증과는 거리를 두고 핵심 사건과 국면에 기능적으로 나머지 요소를 끼워 맞추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에선 요즘 오히려 상당히 낯설어진 통속성이 무척 짙은 분위기라 외려 어색한 질감이다. 아쉬운 점이 여럿 있긴 하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에서 파생된 어떤 분위기에 본 작품을 기계적으로 대입하지 않으면서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관찰하면 작가의 시선이 의외로 또렷한 전망을 확보하고 있다는 걸 간파할 수 있다. 여성의 개별 독립 추구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가족주의의 보수적 설파와는 다른 결로 도시 공간의 미래를 전망하는 주제가 차츰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종의 우화적 구성을 취한다. 이 대가족의 요란한 일상은 실제 가족의 삶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공간이 지향해야 할 방향타가 되어준다. 저출산 위기론이 미디어를 뒤흔들지만, 정작 대도시의 주택난과 이웃과의 불화는 '타인은 지옥'으로 간주하는 세태로 굳어간다. 주인공 역시 그런 시류에 충실한 가치관을 지니고 나만의 보호막을 갈구한다. 하지만 위협이 닥친다. '내 것을 지키자'고 결의한 주인공의 면모는 사실적으로 표현했을 경우라면, 피카레스크 인물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했을 테다.

판타지에 가깝긴 하지만 고전적인 상호부조론을 복원하는 대가족의 포용력이 갈등 해소에 결정적 기여를 담당한다. 영화 속 대가족은 실제 우리들 주변의 이웃이라기보다는, 서울 및 대도시 생태계의 바람직한 표상인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 사는 동네는 서로 부대껴가며 희로애락 나누는 게 본질이라는 소박한 비전을 이 영화는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는다. 작가적 기대는 감독의 차기작으로 미루고, 온 가족이 함께 볼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영화를 기대하면 적절한 선택이 될 테다.

▲ <자기만의 방> 포스터 ⓒ ㈜씨네필운


<작품정보>

자기만의 방
Home Sweet Home
2024|한국|드라마
2024.11.20. 개봉|93분|12세 관람가
감독 오세호
주연 김환희, 김리예
출연 김민규. 백현진, 안지혜, 우연서, 이가경 외
제작 엠픽처스, 점프엔터테인먼트
배급 ㈜씨네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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