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마지막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와 한 '약속'

13세 독립운동에 투신... 독립 위해 싸우고 또 싸웠던 오희옥 지사의 영결식

등록|2024.11.21 11:08 수정|2024.11.21 11:08

▲ 2017년 8월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당시 오희옥 애국지사가 옛 애국가(올드랭사인 곡조)를 선창하는 모습 (JTBC 유튜브 생중계 캡쳐) ⓒ JTBC


'순국선열의 날'이었던 지난 11월 17일,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했다. 독립운동가 오희옥 애국지사의 별세 소식이었다. 향년 98세.

오희옥 지사는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갑작스레 쓰러진 이후, 오랜 시간 병상에서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생전에 지사와 나눈 약속이 있었기에, 그가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응원했지만, 애석하게도 지사는 우리 곁을 떠나고야 말았다.

마지막 여성광복군, 오희옥

오희옥 지사는 1939년 4월 중국 류저우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한 뒤 일본군 정보 수집, 초모(招募), 연극·무용 등을 통한 한국인 사병에 대한 위무 활동에 종사했다. 이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됨에 따라 광복군 대원으로 활약했으며,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했다.

지사의 집안은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할아버지 오인수는 의병장이었고, 아버지 오광선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서로군정서 별동대장 및 경비대장을 역임했으며 어머니 정현숙 역시 만주에서 독립군의 뒷바라지와 비밀 연락임무 등을 수행했다고 한다. 언니 오희영도 광복군 출신이었다.

오희옥 지사는 생존 독립운동가 중 '마지막 여성독립운동가'였다. 이제 지사의 서거로 생존 애국지사는 총 5명(국내 4명·해외 1명)만 남았다고 한다.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

오희옥 지사와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독립운동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가 지사를 처음 대면했다. 당시 국가보훈처 온라인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던 나는, 식장에서 우연히 지사를 만나뵙고 설레는 마음으로 먼저 인사드렸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로서 생존 독립운동가를 만나뵙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행사 중이라 길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기에 "나중에 꼭 인터뷰하러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며 훗날을 기약한 바 있다. 나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그러자고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끝내 인터뷰는 이뤄지지 못했다. 생전에 지사와 나눴다는 약속이 바로 이것이다.

지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운 마음에,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배웅코자 20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사회장 영결식에 참석했다. 행사 시간이 되자 장송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지사의 유해를 모신 소관이 국방부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식장에 들어섰다.

▲ 영결식장에 모셔진 고 오희옥 애국지사의 영정과 관 ⓒ 김경준


국민의례 후 지사의 생애를 요약한 영상이 상영됐다. 지사가 처음 독립운동에 투신한 나이는 불과 13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망국의 설움은 소녀 오희옥을 일찍 철들게 했다. 한창 꾸미고 놀 나이에, 소녀 오희옥은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나아가 한국 독립을 위해 싸우고 또 싸웠던 것이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다.

어느새 식장에는 2017년 8월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당시 지사께서 무대 위에 올라 부른 옛 애국가(올드랭사인 곡조)가 울려퍼졌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조문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 2024년 11월 20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 오희옥 애국지사 영결식 현장 ⓒ 김경준


이날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종찬 광복회장은 조사에서 "꽃같이 젊었을 적엔 펜 대신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우시고, 해방 후엔 다시 펜을 들고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교단에 서셨던 지사님. 오로지 독립투쟁과 조국을 위한 희생과 봉사로 일생을 사셨다"는 말로 지사의 삶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최근 불거진 친일뉴라이트·밀정 논란을 의식한 듯 "신판 일진회가 한국에 다시 독초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를 모략하고 괴롭힌 밀정처럼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있다"며 "지사님의 정신을 따르겠다고 다짐한 우리 광복회의 동지들은 반드시 일본이 심어놓은 악성 바이러스를 제거하고야 말 것"이라고 다짐했다.

▲ 故 오희옥 애국지사에게 올리는 거수경례 ⓒ 김경준


오희옥 지사를 보내드리며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지사를 보내는 마음이 유달리 무겁고 씁쓸한 까닭은, 그 시절의 기억을 전해줄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과 서글픔 때문이다. 그토록 꿈꿔왔던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이대로 지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안타깝기만 하다.

영결식이 끝난 뒤, 충혼당(납골당)으로 향하는 지사를 배웅하기 위해 식장 밖으로 나섰다. 지사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을 하늘도 알았던지, 어느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운구차량으로 향하는 지사의 관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오희옥 지사님! 10년 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이제 다시 약속드립니다. 역사학도로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지사님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독립정신'을 자손만대에 널리 전하겠습니다. 민족 통일의 과업 역시 저희가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근심을 내려놓으시고 하늘에서 그리운 가족, 동지들과 함께 영원한 안락을 누리소서!"

오희옥 지사의 편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 2024년 11월 20일, 고 오희옥 애국지사의 유해를 봉송하는 모습 ⓒ 김경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