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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 불복한 정부, 형제복지원 피해자 '벼랑 끝'

소송 원고 김의수씨 쓰러진 채 발견돼 대구 병원으로 옮겨져... "2차 가해" 비판 나와

등록|2024.11.21 10:54 수정|2024.11.21 13:57

▲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인권유린이 벌어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 부산시


"이 소송은 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중략) 이제라도 배상을 받아서 사회적 치료와 잃어버렸던 저의 존엄성을 찾아주십시오. 저의 아픔을 아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수 년 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 들어가며 이같은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던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일이 발생했다. 법원의 선고를 인정하지 않고 상급심의 문을 두드리는 정부가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52)씨가 지난 17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인근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그가 지인에게 남긴 말은 "마지막 통화가 될 것 같다"라는 메시지였다.

구급대 출동에도 부·울·경 지역에선 받아주는 곳이 없어 김씨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다음 날 새벽 대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이틀 만에 의식이 일부 돌아왔으나 완전한 회복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난 7일 형제복지원 사태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 원고 중 한 명이다. 2021년 국가배상 소송을 시작했고, 1심 승소에도 법무부가 항소하자 다시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 결국 서울고법이 사실상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가 지난 11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손해배상 소송 2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발언하고 있다. 김의수씨는 이번 재판의 원고 중 한 명이다. ⓒ 연합뉴스


그는 10대 때인 1984년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반복되는 폭행과 강제노역 등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그는 진술서를 통해 "고통스러워 어떤 날은 죽으려고 유리도 삼켰지만, 목에 걸려 토악질로 뱉어낸 적도 있다. 형제복지원에서 지옥 같은 일들을 당했고 겨우 버텼다"라고 증언했다.

최악의 한국현대사 중 하나로 불리는 사건을 겪으며 퇴소 후에도 그는 계속 고통을 토로해왔다. 이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부당한 공권력 행사 등 국가폭력을 인정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자 소송 절차를 밟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3년 만인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 일부 승소 판결에 이어 이달 7일에도 원심 판단을 유지한 항소심 결과를 끌어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법정에 서야 할 판이다. 정부가 "인정 금액이 너무 높고 선례가 될 수 있다"라며 또 불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항소심 결과에 대한 상고 기한은 29일까지다.

이를 놓고 김씨는 "상고가 두렵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극도의 불안감을 보였다. 김씨의 지인은 "너무 안타깝다. 국가가 항소하지 않았다면 이런 선택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2차, 3차 가해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피해자단체도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조례에 따라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부산시도 뒤늦게 김씨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중이다. 부산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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