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에 어떤 감독님이 '평범한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다 스페셜하다'고 하더라. 그 표현이 너무 좋았다. 평범한 게 어디 있어, 다들 멀리서 보니까 평범해 보이는 거지, 연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한국무용을 꿈꾸다 K팝 아이돌로, 배우로 변신해 사랑스러운 오해영 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까지.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을 거듭한 배우 서현진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2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배우 서현진이 출연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19년차 배우 서현진


공유와 출연한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 <트렁크>로 돌아온 서현진은, 최근 홍보 차 출연했던 한 방송에서 10년차 부부를 연상시키는 궁합을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서현진은 "같은 회사인데 이전까지는 오다가다 인사만 하다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밝혔다. 단체 회식을 하면서 공유의 단골 노래방도 가봤다며 "평소엔 노래를 안 부르다 취하면 부른다. 한 번 듣고 저희가 더 이상 시키지 않는다"고 전했다.

배우로서 어느덧 19년 차를 맞이했지만, 배우 이전의 서현진도 화려한 경력으로 유명하다. 서현진은 처음 걸그룹으로 데뷔해 5년의 시간을 보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M.I.L.K(밀크)의 메인보컬 출신이라는 경력은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서현진은 "그 시절 노래는 이제 노래방에서만 부른다"며 쑥스러워했다.

정작 밀크의 활동기간은 짧았다. 1년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공중파에 출연한 건 4번에 불과했다. 팀이 해체 됐을 때 서현진의 나이는 19세였다.

서현진은 "당시에는 끝났다는 생각을 처음엔 못했다. 한 해씩 지나고 다른 친구들이 데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조금씩 체감을 하게 됐다"면서 "전학 후 국악고 동기들의 공연을 객석에서 관객의 입장으로 처음 보게 됐다. 그때 '이제 나는 무용을 할 수 없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가수의 길 이후 서현진은 연기라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SM과의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동안 일은 없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밝히며 "연기도 무용하듯 반복해서 연습했다"고 이야기했다. 첫 독백 연기를 준비해 나갔을 때 연기 선생님으로부터 '그 대사를 너처럼 슬프게 읽는 애는 처음 봤어'라는 칭찬을 처음으로 들었는데, 이는 서현진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로 서현진은 데뷔한 아티스트들이 연기 연습을 할 때마다 '조교'처럼 불려 나가 연기 시범을 보이는 역할을 4년 가까이 맡게 됐다. 남들보다 뒤쳐지고 있다는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까. 이 시기를 두고 서현진은 "조바심은 진즉에 포기했다. 물론 힘들었지만, 연기 학원을 나가고 뭔가 할게 있어 괜찮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차근차근 연기자의 길을 준비했던 서현진은 2006년 드라마 <황진이>의 단역으로 마침내 배우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후로 서현진은 또다시 7년에 걸친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서현진의 공백기


서현진은 "대중들은 제가 언젠가부터 얼굴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제가 2001년에 데뷔했는데, 2016년 <또 오해영>으로 주목받기까지 15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직업이 '연기 준비생'이었다. 나이가 있으니까 아무 일도 안 하긴 그래서 샌드위치 점에서 알바도 했다"고 회상하며 "이 일에 뛰어든 걸 후회도 했다. 그때가 20대였고 다른 걸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직업을 준비생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주변에서 '요즘 뭐해?'라는 질문이 참 힘들었다. 무용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가수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때 뭐했냐고 물어보면 '뭐 안했다'고 대답한다"라고 밝히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4살 때부터 무용했으니 지금까지 예체능밖에 안 한 거다. 스스로를 안쓰러워해 줘야 했는데 그럴 시간마저 없었던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서현진은 자신의 최대 장점으로 '대책 없는 성실함'을 꼽았다. 서현진은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버티는 거다"라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요즘은 그게 꼭 답인 것 같지는 않다"라는 생각도 밝혔다. 오랜 무명 생활을 겪었던 유재석은 공감하면서 "그럼에도 버티다 보니 되는 게 있더라"고 덧붙였다.

서현진은 무명시절을 떠올리며 "가족끼리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고 이야기하는 시절이다. 부모님에게는 얼마나 아픈 손가락이었겠나. 이미 제가 상처받고 있다는 걸 아니까 더 말을 못 하셨을 것"이라며 가족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서현진은 한 소설의 문구를 인용하며 "하수구에 빠진 듯 굉장히 더럽고 비참한데,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은 나밖에 없다. 작은 영화를 찍든 오디션을 보든 '왜 난 안 되지?'가 아니라 '나에게는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뭘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말했다.

서현진의 인생캐릭터


인고의 세월을 거쳐 2016년 <또 오해영>을 통하여 서현진은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만나 뒤늦게 배우 인생의 꽃을 피운다. 서현진은 그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대중들에게 서현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서현진은 "사실 그때는 즐기지 못했다. 오래 힘들었다가 잘됐는데 왜 즐기지를 못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며 "<오해영>이 잘 되고 나서 나는 그냥 하던 데로 열심히 했는데, 갑자기 잘한다고 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든지 (나한테) 다시 못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라는 걱정이 들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오해영>의 명대사였던 "난 여기서 내가 좀만 더 잘되길 바란 거지, 그 애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와 "여전히 난 내가 애틋하고 잘되기를 바라요"를 다시 곱씹는 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할 당시에는 그 대사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마음에 와 닿는다"고 털어놓은 서현진은 "요즘에 제가 그런 마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현진은 연기를 전공한 배우가 아님에도, 정확한 발성과 대사 전달력, 실수가 거의 없는 연기자로 유명하다. 서현진의 또 다른 히트작인<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출연한 한석규는 서현진에게 농담으로 "NG 좀 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척척 소화해 내고, 각종 의료 소생술이나 봉합 기술을 실제 의사처럼 철저히 연습하며 준비한 노력의 결과였다.

서현진은 "상대적일 수도 있지만, 연기를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항상 다한 것 같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이런 방식이 꼭 답은 아닌 것 같아서 아예 연습을 안 해보기도 했다. 처음엔 하던 걸 안 하려니까 너무 불안해져서 울기까지 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어 "그래도 지금은 이제 ' NG가 좀 나도 다시 하면 되지'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협업이니까'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자란 부분은 촬영 감독, 음악 감독님이 메꿔주실 거니까라고 편히 맘 먹는다"고 말했다.

서현진은 스스로를 두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 낯을 가리고 대인관계는 미숙하고, 게으를 땐 게으르다가 일할 땐 바짝 하는 사람이다. 반려견에서 소리 지르고 바로 사과하기도 한다. 그렇게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이어로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특별했고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평범해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특별하니까, 어디가 부딪히고 찌그러졌더라도, 이제는 그 모양 그대로 잘했다고 해주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