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찬 기대되지?

힘든 학교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된 '급식'

등록 2007.10.09 13:34수정 2007.10.0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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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이 학교의 급식표.

아이 학교의 급식표. ⓒ 주경심

아이 학교의 급식표. ⓒ 주경심

올해 초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입학의 기쁨도 잠시, 아이는 틀에 짜여진 수업시간과 엄격한 규칙 때문에 재밌어야 할 학교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잠꼬대까지 하는 아이를 두고 남편과 저는 대안학교를 조심스럽게 의논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입학한 지 보름이 지나고 처음으로 급식을 시작하던 날이었습니다.

 

"오늘 부터는 학교에서 점심 먹고 오는 거야! 맛있게 많이 먹고 와!"

 

혹시 음식들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하며 아이를 보냈습니다. 주위 선배 학부모와 사촌조카들로부터 급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느니 급식상태가 너무 엉망이어서 집단 식중독에 걸리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파할 시간에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저만치서 가방을 메고 나오던 아이를 크게 손을 들어 불렀습니다. 아이는 화색이 만면한 채 제게로 뛰어왔습니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급식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놨습니다.

 

"엄마 수수밥이 얼마나 고소한지 몰라요. 아욱 된장국도 맛있었어요. 그런데 길고 매운 거 나와서 혼났어요. 그게 뭐예요?"


그건 바로 도라지 무침이었습니다.


"그래도 맛있었어요."


김치도 씻어먹던 아이가 학교에서 실시하는 급식으로 인해 다양한 맛과 음식을 접하면서 먹는 즐거움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밥이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했던 제 생각은 그저 기우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향해 저는 냉장고에 붙여둔 급식표를 보며 약간은 오버액션으로 그 맛을 먼저 표현했습니다.

 

"와! 오늘은 갈비가 나온다네. 맛있겠다. 엄마 것도 조금 남겨 와야 돼 알았지?"

 

그 말에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용을 써도 안 떠지던 아이의 눈꺼풀이 번쩍 들어올려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 참 이상하지요?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마음 이면에 내 아이니까 세상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기를 바랐던 이기심도 있었던가  봅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급식이 맛있었다고, 두 그릇이나 먹었다고 자랑하는 아이가 은근히 얄밉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그럼 엄마가 해준 게 더 맛있어, 급식이 더 맛있어?"하는 '삼돌이'같은 질문을 날리곤 했습니다. 물론 눈치구단인 아이의 대답은 "엄마가 해준 게 제일 제일 맛있어요"하면 엄지손가락을 높이 올려 듭니다.

 

그렇기에 전학을 오게 됐을 때 아이도 저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급식이었습니다. 집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한 초등학교는 선생님들의 높은 의욕과 학구열로 소문이 자자한 학교였고, 모두가 그 학교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학교를 택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바로 급식 때문입니다.

 

성적이 좋고, 의욕적인 선생님이 많은 그 학교는 소문 때문인지 끝없이 몰려드는 학생들로 인해 1,2학년은 급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지금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급식실이 한눈에 다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었고 깨끗했고, 학생 전체에게 급식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잘 챙겨준다고 해도 칼로리와 영양, 거기다 맛까지 고려한 음식을 매일매일 다르게 만들어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급식은 영양과 맛, 게다가 칼로리에 아이들 식성까지 고려해서 만든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때로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와서 고역을 치르기도 하겠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것이 제일 못 마땅했습니다.

 

'먹기 싫으면 버리면 돼.' 하지만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한번 먹어봐! 와 맛있겠다."

 

엄마가 해줘야 할 몫을 학교급식이 대신하고 있는 한 엄마는 급식편이 되어줘야 한다는 걸  도라지 때문에, 김치 때문에, 매운 오이무침 때문에 짜증부리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급식을 통해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우기도 하니까요. 그것 또한 편식과 영양집중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급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침까지 굶겨 보내며 "급식 많이 먹고 와!"하는 엄마 또한 아닙니다. 눈도 못 뜨는 아이에게 억지로 아침을 먹이느니 차라리 급식을 맛나게 먹는 행운을 선사하겠다는 어느 엄마의 말에 박장대소를 하며 약간은 마음이 동한 것도 사실이지만, 절대 점심급식에 하루영양을 모두 맡기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잘 먹는 아이가 밖에서도 잘 먹는다'는 게 제 지론이거든요. 사실 아이는 집에서도 편식을 모릅니다. 패스트푸드보다는 엄마가 끓여주는 감자탕과 장어탕을 더 좋아하고, 버섯된장국에 밥 말아서 깍두기 올려 먹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니 한식 위주의 학교급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 없지요.

 

오늘 제 아이의 급식메뉴는 고구마밥에 아욱된장국, 쭈꾸미볶음, 어묵조림 포기김치입니다. 쭈꾸미볶음이라는 말에 아이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지금쯤이면 급식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에 조급한 아이들은 군침을 흘리기도 하겠지요.

 

며칠 전에는 아이가 아주 속상한 얼굴로 왔습니다.

 

"왜?"

"엄마 너무 맛있는 닭다리가 나와서 엄마 한 개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가져가는 거 아니라고 해서요. 게다가 봉지도 없었어요."

 

"그렇게 맛있었어?"

"네 우리학교 급식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맛있는 걸 혼자 먹기보다는 엄마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아이. 공부 때문에 잠시 고민은 했지만 역시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을 쫓아 학교를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아들아 내일 반찬도 기대되지?"

 

코를 벌름거리며 급식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릴 아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세상에 먹는 즐거움보다 더한 행복이 또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우리 학교 식판을 공개합니다'에 응모합니다.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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