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손으로 쓰지만 글은 마음으로 짓는다

[서평]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노트>가 말하는 진정한 글

등록 2008.02.14 15:26수정 2008.02.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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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지식인의 글쓰기노트> 겉그림

<조선지식인의 글쓰기노트> 겉그림 ⓒ 포럼

▲ <조선지식인의 글쓰기노트> 겉그림 ⓒ 포럼

처음에는 궁금했고, 읽을수록 불편했으며, 책을 덮을 즈음에는 두려웠다. 그래서 다시 궁금해졌다. 어디서부터 다시 내 모습을 살펴봐야 할지.

 

제목 한번 그럴싸하게 <조선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라 하는데 글 쓰는 데 써먹을 ‘재료’ 몇 개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을 안고 책을 펼쳤다.

 

지식인이라는데, 그것도 유학을 국시로 삼고 살며 ‘선비정신’을 남긴 조선 지식인들이라는데 분명히 요즘 시대에도 써먹을 만한 글쓰기 방법 몇 가지 가르쳐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서둘러 거둬들여야 했다. 누가 볼까 싶어 허겁지겁 뒤로 감추어야 했다. 좀 더 의미 있고 실력 있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조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작 내 뛰는 가슴을 더 뛰게 한 건 쿵쿵 콩콩 쾅쾅 쉼 없이 뛰었을 조선 지식인들 심장이었다.

 

그들 손재주가 내 손으로 옮겨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 게 사실이었지만, 정작 내 손을 두드린 건 그들 마음이었다. 그러니 나도 손이 아닌 마음으로 이 책을 받아들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렇듯 문장이란 결코 밖에서 구할 수 없다. 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책, 17쪽/정약용, <다산시문집> ‘오학론3 五學論三’(일부분)을 풀어 씀)

 

글씨는 손으로 쓰지만 글은 마음으로 짓는다

 

글 좀 몇 자 쓰다 보면 자의 반 타의 반 좋든 싫든 글쟁이라고들 한다. ‘-장이’는 직업이나 기술을 드러내는 표현이고 ‘-쟁이’는 그 사람이 지닌 어떤 특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타고난 금속 세공 기술을 지닌 대장장이를 ‘대장쟁이’라 할 수 없고, 욕심 그득한 욕심쟁이를 ‘욕심장이’라고 할 수 없단다.

 

그러면 ‘글쟁이’란 어떤 기술을 뜻하거나 직업적 성격을 담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어떤 특별한 성질을 나타내는 것일까? 글 꽤나 써서 밥벌이하고 사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글쟁이는 ‘글장이’일 것도 같은데, 실제로는 다들 글 쓰는 이들을 글쟁이라 부른다. 그럼 도대체 글쟁이란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건 직업적 의미가 아닌 어떤 특별한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때 그 의미는 또 무엇일까? 역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문장 곧 글이라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마주친 이 의미심장한 몇 줄 글을 보고서 어찌 ‘글쟁이’를 ‘욕심쟁이’와 같은 말과 같이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장이’가 뭐고 ‘-쟁이’가 뭐냐며 말장난 같은 질문을 혼자 책 읽는 내내 되뇌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조선지식인의 독서노트>를 받아 적느라 아니 받아 담느라 땀 꽤나 흘렸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긴장한 마음을 달래기 힘들어 보였다.

 

“문장에는 스스로 정해진 가치가 있다. 글을 지은 사람의 명예나 지위로 한때나마 문장의 가치를 평가받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는 문장은 실력에 따를 뿐이다.” (이 책, 37쪽/장유, <계곡만필> ‘문장에는 정해진 가치가 있다' 文章自由定價’(일부분)을 풀어 씀)

 

옛 조선지식인들이 남긴 많은 책들(일부분)을 현대어로 쉽게 고쳐 쓴데다가 각 글마다 분량도 기껏해야 두세 장이라 가볍게 보았다. 글 좀 더 잘 쓰는 데 필요한 것 몇 가지나 챙겨보겠다는 얄팍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끝없이 펼쳐지는 말 없는 질책 앞에서 그야말로 나는 도둑놈 심보가 두둑한 놈으로 전락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긴장할 수밖에, 달리 변명할 여지도 없어 보였다.

 

그런 마음을 조금 달래고서야 글 쓰는 방법에 관한 조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글이란 짜임새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며 직접적인 조언을 했다. 또 어떤 이는 글에 마음과 사실을 담지 않고 화려한 ‘색칠’만 하는 건 글 좀 써 보겠다는 이들이 가장 피해야 할 일이라고, 나를 그렇게 오래도록 질책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글 써서 뭔가 얻으려 한다면 물질이 아니라 자신을 얻고(살피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세를 잇대어 세상과 그것을 나누라고도 했다.

 

글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도 이 책 첫 장부터 마주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그 무엇이 있었다. 글쟁이 삶을 둘러싼 그 견고한 자존심이 어디서부터 나와야 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문장은 논리를 중심으로 지어야 한다. 글 전체에 논리가 잘 갖추어져 있으면, 그 글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논리를 갖추고 있지 않아도 아름다운 글이 있기는 하지만, 군자는 그러한 글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이 책, 35쪽/장유, <계곡만필> ‘문장의 중심은 논리 文主於理’(일부분)을 풀어 씀)

 

“지나치게 높이는 말과 사실과 다르게 기리는 것은 바른 길을 가려는 사람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글을 짓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 48쪽/김정희, <완당전집> ‘이여인 최상에게 주다 與李汝人最相’(일부분)을 풀어 씀)

 

어느덧 그토록 오랫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릴 즈음, 이제는 살포시 웃으며 읽을 만한 글들을 발견했다. 생활에서 발견하는 소재를 글 재료로 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렇게 모은 생활 속 글 재료들을 어떻게 버무려야 까막눈에게도 글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글들 말이다.

 

쉽게 쓸 수 있는 것을 괜히 어렵게 쓰지 말란다. 말하고 가르치고 사는 게 다 일치해야 한단다. 자세히 설명할 때와 줄여 써야 할 때를 구분하란다. 멋진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이미 나와 있는 좋은 글들을 모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도 중요하단다.

 

익히 들어 아는 말이라 쉽게 지나칠 수 있지 않나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선지식인의 독서노트>를 읽는 내내 긴장했던 터라 책을 덮을 때가 가까워져 만난 이런 친숙한 조언들도 되새김질하고 또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뽑아 쓸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무엇을 빼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당키 어려운 많은 조언들을 보며 어떻게 이를 다 담아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그러니, 책을 덮을 즈음에는 두려웠다는 말을 이제는 다들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나누고픈 한 글을 곱씹어보며 책을 넘기려 한다. 좋은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좋은 글들을 모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김육이 지은 <잠곡유고>에 들어 있는 글인 <유원총보> 서문(이 책, 200-202쪽/‘유원총보에 붙여 類苑叢寶序’)이다.

 

김육은 이 글에서 <유원총보>라는 책을 짓게 된 이유를 밝히는데, 자기 글이 아닌 남 글을 모아 엮은 <유원총보>를 출간하는데 따른 부담을 드러내었다. 사람들이 자기 글 솜씨를 의심하거나 낮게 볼까 봐 걱정스러워서였을까. 아니다. 김육은 송나라 축목이 편찬한 <사문유취>가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식인들 중에서도 그 책을 지닌 이가 드물었고 가난한 조선 선비들에게는 더더욱 남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글 꽤나 읽는다는 선비로서 그런 가난한 조선 지식인들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느꼈던 듯싶다.

 

김육은 <사문유취>에서 글을 추려내기로 마음먹었다. 번거로운 표현과 불필요한 부분을 걸러내고 핵심만 추려내어 이를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사문유취> 외에 다른 여러 책에서도 김육은 미리 정한 주제에 맞는 글들을 모으고 추리고 가다듬어 46편으로 구성된 <유원총보>를 만들었다. 옛 책 수백 권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추리고 또 필요한 부분은 표현을 고치기도 하여 잘 엮어 낸 책이 바로 <유원총보>이다.

 

그도 두려워하고 걱정했다. 그 많은 옛 글들을 추리고 고치기도 하면서, 세심하게 다시 살피지 못했을까 싶어 걱정스러워했다. 하지만 분서갱유 사건을 언급하기도 하며, 그는 <유원총보>처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좋은 글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마음을 담아 질문인지 부탁인지 모를 말을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한 번 더 속삭였다. 글 짓는 것 만큼이나 글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는 듯.

 

‘그렇다면 후세의 뜻 있는 사람들은 나를 용서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조선지식인의 글쓰기노트>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포럼, 2007.

책을 아끼고 글을 사랑했으며, 말하기 전에 듣기를 즐겨했던 그 오랜 숨결을 함께 나눕니다.

2008.02.14 15:2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조선지식인의 글쓰기노트>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포럼, 2007.

책을 아끼고 글을 사랑했으며, 말하기 전에 듣기를 즐겨했던 그 오랜 숨결을 함께 나눕니다.

[POD]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개정판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포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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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구제하는 글을 쓰라

#조선지식인의 글쓰기노트 #고전연구회 사암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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