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불법의 세계, 유리벽 반사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문화유산 되짚어보기 32> 우리나라 석탑의 찬란한 금자탑 '원각사지 10층 석탑'

등록 2008.06.23 16:46수정 2008.06.2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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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세조 13년, 1467년 사월 초파일에 성대한 연등회를 베풀면서 완공되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세조 13년, 1467년 사월 초파일에 성대한 연등회를 베풀면서 완공되었다 ⓒ 이종찬


[기사 수정: 저녁 8시 45분]

바로잡습니다
애초에 이 기사는 삼일문 현판의 글자는 박정희의 친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지적에 따라 확인한 결과 2001년 곽태영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대표에 의해 철거되어 현재는 독립선언서에서 집자한 글자가 담겨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잘못된 사실을 제공한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 전하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국보 제1호' 하면 '숭례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보 제2호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국보 제2호가 깊은 산 속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누구나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곳에 있다.


탑골공원(서울 종로구 소재). 한때 '파고다 공원'이라 불렸던 그 탑골공원 안에 대한민국 국보 제2호가 웅장하고도 화려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 나라 석탑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바로 그것. 비록 지금은 세월의 파편에 의해 투명한 유리벽 속에 갇혀 역사의 흔적을 더듬고 있긴 하지만 이 탑이야말로 우리 겨레의 자존(自尊)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그네도 대한민국 국보 제2호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줄 몰랐다. 신발을 손에 들고 엉뚱한 곳을 두리번거리며 신발을 찾아 헤매는 꼴이라고나 해야 할까. 나그네가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처음 본 것은 지난 6월 초였다. 그날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밤을 샌 나그네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사무실 겸 쓰고 있는 숙소로 들어가기에도 시간이 어정쩡했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면서 졸음마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디 잠시 눈을 붙일 마땅한 공원 벤치 같은 곳은 없을까. 그렇게 찾은 곳이 탑골공원이었다. 그렇게 반쯤 넋이 빠진 상태에서 만난 탑이 우리 나라 석탑의 찬란한 금자탑이라는 국보 제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이었다.

a  삼일문

삼일문 ⓒ 이종찬


a 탑골공원  탑골공원 안을 휘적휘적 걷는다

탑골공원 탑골공원 안을 휘적휘적 걷는다 ⓒ 이종찬


한때 삼일문에는 박정희 현판이 걸려 있었다

사적 제354호 탑골공원 들머리에 서면 화려한 단청을 한 삼일문이 짙푸른 초록 속에 잠겨 있다. 금세라도 초록의 물결이 삼일문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 삼일문은 우리 나라 독립운동의 발원지를 기념하기 위해 최근에 세운 문이다.


예전에 삼일문에는 일본군 장교를 지난 박정희의 친필을 본 뜬 현판이 걸려 있었다. 2001년 11월 곽태영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가 그 현판을 철거하자 2003년 2월 허길량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이 독립선언서 글씨를 집자해 다시 만들었다.

친일장교와 군사독재정권의 유령이 떠돌며 독립운동 발원지를 떡 하니 가로막고 있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보다. 그들이 왜 이 문을 뜯어 불태우려 했는지 그 속내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탑골공원 안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노인들이 여기저기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이 있거나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있다. 저만치 3·1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팔각정에도 노인들이 삼삼오오 앉아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다. 

어디 빈 벤치 하나 없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탑골공원 안을 휘적휘적 걷는다. 손병희 선생 동상과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를 지나자 저만치 대한민국 국보 제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이 유리벽 속에 갇힌 거대한 마네킹처럼 우뚝 서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유리벽 반사 땜에 10층 석탑 곳곳에 세밀하게 새겨진 조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a 원각사지 10층석탑 국보 제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이 유리벽 속에 갇힌 거대한 마네킹처럼 우뚝 서 있다

원각사지 10층석탑 국보 제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이 유리벽 속에 갇힌 거대한 마네킹처럼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a 국보 제2호 아아 유리벽 속에 갇힌 불법의 세계여

국보 제2호 아아 유리벽 속에 갇힌 불법의 세계여 ⓒ 이종찬


오묘한 불법의 세계, 유리벽 반사 속에 숨겨져 있다

특히 위층 탑신부를 바라보면 주변에 빼곡하게 서 있는 나무 그림자가 빈틈없이 둘러쳐진 유리에 비친다. 그래서 나무 그림자가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조각인지,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조각이 나무 그림자로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 마구 헛갈린다. 오묘한 불법의 세계가 유리벽 반사 속에 숨겨져 있다고나 해야 할까.

어디 유리벽이 뚫린 곳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 싶어 탑을 빙 둘러 본다. 하지만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빈틈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갑갑하다. 밖에서 10층 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도 갑갑해 미치겠는데, 저 유리벽 속에 갇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저 탑은 오죽 갑갑할까. 

서울시의 문화유산 보호정책이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탑은 비바람에 강한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이기 때문에 다른 탑에 비해 훼손이 빠르다. 게다가 요즈음 들어 산성비와 비둘기의 배설물 때문에 이 탑에 대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 또한 많이 받았었다.

그렇다고 높이가 무려 12m에 이르는 이 탑을 유리벽으로 통째로 덮어버리다니. 물론 유리벽 사이와 천장 등에는 일부 환기처리는 해 놓았다. 하지만 이 탑을 찾는 사람들이 탑의 웅장하고도 화려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집에 금돼지가 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과 무에 다르랴. 서울시는 문화유산 보호정책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a 10층석탑 가까이 다가서자 유리벽 반사 땜에 10층 석탑 곳곳에 세밀하게 새겨진 조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10층석탑 가까이 다가서자 유리벽 반사 땜에 10층 석탑 곳곳에 세밀하게 새겨진 조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 이종찬


a 원각사지 10층 석탑 가까이 다가서자 유리벽 반사 땜에 10층 석탑 곳곳에 세밀하게 새겨진 조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가까이 다가서자 유리벽 반사 땜에 10층 석탑 곳곳에 세밀하게 새겨진 조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 이종찬


세조가 세운 원각사, 연산군이 기생방으로 만들다

조선 세조 11년, 1465년에 세워진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에 있었던 절이다. 원각사의 고려시대 때 이름은 흥복사(興福寺)였다. 하지만 흥복사는 세조 11년 회암사(檜巖寺)에서 일어난 사리분신의 서상(瑞祥, 상서로움)을 기념한다는 뜻(세종실록 권33 세조10년 5월 갑인조)으로 새롭게 다듬으면서 원각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원각사는 국왕의 원찰로서의 성격을 지녔던 절이라 할 수 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세조 13년, 1467년 사월 초파일에 성대한 연등회를 베풀면서 완공되었다. 이때 탑 속에 절의 불상에서 분신한 사리와 <국역 원각경>을 봉안하였다 한다. 하지만 연산군 10년, 1504년에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방으로 만들면서 절의 흔적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각사의 상층부 탑신이 땅바닥에 버려지게 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원각사를 없애버린 연산군이 창덕궁에서 한양 도심을 바라보니, 석탑만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그때 한양 중심에는 원각사 10층 석탑이 가장 두드러진 조형물이었다). 연산군은 당장 상층부 탑신을 내리라는 어명을 내렸다.

원각사지 10충 석탑 상층부 탑신 3층이 해방된 다음 해 미군 공병대에 의해 지금의 상태로 복원되기까지 긴 세월 동안 땅바닥에 뒹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중종 7년 1512년에는 원각사를 헐어 그 재목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원각사는 영원히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a 원각사지 10층석탑 오묘한 불법의 세계가 유리벽 반사 속에 숨겨져 있다

원각사지 10층석탑 오묘한 불법의 세계가 유리벽 반사 속에 숨겨져 있다 ⓒ 이종찬


a 원각사지 10층석탑 저 유리벽 속에 갇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저 탑은 오죽 갑갑할까

원각사지 10층석탑 저 유리벽 속에 갇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저 탑은 오죽 갑갑할까 ⓒ 이종찬


10층 석탑에 거대한 불법의 세계를 펼쳐놓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일까. 이 탑 곳곳에 정교하게 새겨진 여러 가지 화려한 조각들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돋보인다. 하지만 유리벽에 비친 나무 그늘 때문에 아무리 가까이 다가서도 자세하게 살펴보기는 어렵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탑을 받쳐주는 기둥돌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둥돌의 각 층 옆면에는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이 탑의 몸통은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둥돌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이 탑은 각 층마다 나무로 만든 건축물처럼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각 면의 돌에는 용과 사자, 모란, 연꽃, 불상, 보살상, 나한상, 천왕상 등이 빈틈없이 새겨져 거대한 불법의 세계가 출렁거리고 있는 듯하다.

이 탑은 상층부 탑신 3층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세조 13년, 1467년에 세워졌음이 밝혀졌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 탑은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앞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 석탑(국보 제86호, 용산 국립박물관)과 매우 비슷하다. 이 탑은 특히 조각의 수법이 세련되고 표현 장식도 풍부해 조선시대 석탑뿐 아니라 우리 나라 석탑 중 가장 뛰어난 금자탑으로 불리고 있다. 

a 원각사지 10층 석탑 서울시는 문화유산 보호정책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서울시는 문화유산 보호정책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기를 바란다 ⓒ 이종찬


<월인천강석보>를 쓴 세조가 즐겨 나들이했다는 원각사. 지금 원각사는 온 데 간 데 없고 원각사지 10층 석탑만 홀로 유리벽 속에 갇혀 역사의 흔적을 유리벽에 비치는 나무 그늘로 더듬고 있다. 아아, 유리벽 속에 갇힌 역사의 흔적이여. 아아, 저 장엄한 불법의 세계가 유리벽을 걷고 나오는 그날은 언제일까.

원각사지 10층 석탑 유리벽 앞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한 채 만인이 편안하게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마음의 촛불 하나 켠다. 서울시의 문화유산 보호정책의 보다 새롭고도 질적인 변화를 위해 마음의 촛불 둘 켠다. 고유가 시대, 생필품값 폭등에 시달리는 가난한 민초들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위해, 대한민국의 자존을 위해 마음의 촛불 셋 켠다.
#원각사지 10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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