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 폐인 'h길산', 특별하게 사는 법

[현장] 블로거 황석영의 '소설 쓰는 이야기'

등록 2008.08.21 11:13수정 2008.08.2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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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황석영 작가와 대화를 나눈 장소인 카페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전경

황석영 작가와 대화를 나눈 장소인 카페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전경 ⓒ 손은영

황석영 작가와 대화를 나눈 장소인 카페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전경 ⓒ 손은영

이름이 너무나도 독특해 찾기 쉽겠다 장담을 했건만, 30분이나 헤맨 후에야 겨우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쓰셨다잖아. 대충이라도 한 번쯤은 읽고 가야 작가에 대한 예의지.'

 

'미녀새 이신바예바가 세계 신기록을 세웠단 걸 미리 알고 보는 스포츠 중계같은 느낌이랄까? 존경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평범한 황석영씨를 만나보고 싶어.'

 

20일 황석영님과의 밤이 시작될 서울 홍대 앞 카페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에 도착할 때까지 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했습니다. 사인 받을 책을 가져오는 것은 고사하고, 그의 신간을 구입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어쩐지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와의 소통을 위해 공통 관심사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설 <개밥바라기별>만의 시간이 아닌, 그의 생각과 경험을 공감하며 즐겁게 웃는 시간이었습니다. 명랑 쾌활한 황석영님과의 시간은 화장실 통행의 허가로 시작됐습니다.

 

"(통행에 꼼꼼히 주의를 주는 안내원에게) 어허- 너무 긴장시키지 마세요(웃음). 화장실도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다녀오시고. 우리 편하게 얘기하는 시간이 됩시다. "

 

소통하며 쓴 소설 <개밥바라기별>

 

a  작가 황석영 님과의 명랑 쾌활했던 시간

작가 황석영 님과의 명랑 쾌활했던 시간 ⓒ 손은영

작가 황석영 님과의 명랑 쾌활했던 시간 ⓒ 손은영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간 소설 <장길산>을 썼습니다. 당시엔 글을 원고지에 썼으니, 퇴고한 원고까지 합하면 6만 매 정도를 손으로 쓴 거죠. 탈고한 때가 마흔을 갓 넘긴 나이였는데, 아, 그때 벌써 오십견이 오는 거예요."

 

그는 올해 2월부터 약 5개월 간 소설 <개밥바라기별>을 블로그에 연재했습니다. 이보다 더 일찍 박범신 작가님이 소설 <촐라체>를 같은 형식으로 연재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덧글폐인'이라고 부를 만큼, 블로거들과 덧글로 소통하며 글을 쓴 작가는 그가 처음입니다.

 

"아이디 'h길산(황석영+장길산)'으로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장길산'을 쓰고 싶었는데, 누가 벌써 쓰고 있더라고요(웃음). 아직은 세 손가락의 독수리 타법이지만, 이걸로도 충분하죠."

 

그에게 '악플러'들과의 댓글놀이는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블로그의 주 독자층이 20,30대 층인 걸 알고는 '살맛'을 느꼈고, 아침에 눈 뜨면 덧글부터 확인했다고 하니, 감히 '블로그 폐인'이라 부를 만합니다. 글 쓰는 황석영과 문예소년 황석영과의 끝없는 대화로 이 책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유럽에 체류하며 많은 걸 느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 청년들의 의식엔, 조직에 대한 불신, 개인의 자유와 해방,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시위문화도 진화 발전했죠. '전쟁반대'라는 대전제만 필두에 두고, 모두 자기만의 목소리로 피켓을 들더군요."

 

세계는 냉전 이후 결코, 그리고 더욱 평화롭지 않았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몇 년 간 봐오던 시위 양상을 천천히 풀었습니다.

 

"동성애, 여성평등, 생태보호 등 구호도 다르지만, 인종과 나라, 스타일까지 다양합니다. 어스름이 질 때까지 온 거리가 마치 축제같아요. 시위가 곧 축제인 나라, 다양한 광경을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 지금 한국의 촛불문화제도 이렇듯 창조적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그는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옆으로 빠질 때도 종종 있었지만, 쏟아내는 이야기속에 꼼꼼하게 대답을 담아주었습니다.

 

"여러분, 신나게 사십시오"

 

a  " 문학은 좌,우 구분이 없는 멀티핸드의 세계입니다."

" 문학은 좌,우 구분이 없는 멀티핸드의 세계입니다." ⓒ 손은영

" 문학은 좌,우 구분이 없는 멀티핸드의 세계입니다." ⓒ 손은영

수많은 질문 중, 질문 자체가 환호(?)를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바로 '작가 황석영의 대척점에 자주 빗대는 작가 이문열에 대한 견해'입니다.

 

"나는 왼손잡이입니다. 교육에 의해 오른손잡이로 차츰 변했죠. 근데 무의식의 순간에 왼손이 먼저 나가는 겁니다. 그 때 깨달았죠. 아, 난 '멀티핸드'구나."

 

"문학이 바로 멀티핸드의 세계입니다. 좌, 우를 따로 나뉘지 않고, 문학은 문학일 뿐입니다. 사회적 행동은 문학과 별개이죠. 굳이 얘기하자면, (이문열 작가는) 6·25 때 폭탄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손을 놓쳐버린 동생과 같다고나 할까요."

 

솔직히 좀더 자극적인 대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놓쳐버린 동생' 같다는 말에서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사람은 이 점이 잘못됐다'라는 명쾌한 해답보다 되려 더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나 학부모까지 참석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처럼 '건방진 독자'부터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공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황석영님이 가장 끝까지 강조한 것은 '다독'입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그 '무엇'. 그 가치를 정하고 나를 바로 세우면, 인생에서 결코 시궁창까지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바로 그 올곧은 가치를 세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자립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다독(多讀)하십시오. <개밥바라기별>에도 나오죠. '사람은 씨발…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신나게 사십시오."

2008.08.21 11:13ⓒ 2008 OhmyNews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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