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24)

[우리 말에 마음쓰기 553] ‘하느님, 그의 존재’, ‘그런 존재’, ‘힘이 없는 존재’

등록 2009.02.16 19:14수정 2009.02.16 19:14
0
원고료로 응원

 

ㄱ. 하느님, 그의 존재

 

.. ‘사랑하는 하느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때 난 그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그는 언제나 내 앞에 나타난다 ..  《리타 페르스휘르/유혜자 옮김-아빠의 만세발가락》(두레아이들,2007) 113쪽

 

 ‘그의 존재’와 ‘그는’이라고 나오는데, 이렇게 ‘그’라고 적기보다는 ‘하느님’이라고 밝힐 때가 한결 낫습니다.

 

 ┌ 그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

 │→ 그분이 있는가 없는가를 믿지 않지만

 │→ 그분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 …

 

 여기에서는,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쯤으로 손봐도 어울리네요.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겠지만”쯤으로 손보아도 어울리고요.

 

 “사랑하는 하느님, 도와주세요” 같은 말은, 하느님을 믿든 안 믿든 저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있는지를 믿지 않지만”으로 적어도 괜찮은 한편,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이나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 길이 없지만”쯤으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ㄴ. 사람은 그런 존재는 아냐

 

.. 성격의 문제지. 사람은 죄책감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아냐 ..  《쿠마쿠라 타카토시/편집부 옮김-샤먼 시스터즈 (1)》(대원씨아이,2003) 56쪽

 

 우리네 지식인들이라 할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써 왔습니다. ‘크다’고 하는 나라일은 한문으로 움직였습니다. 생각하기로 이루어지는 사상과 철학은 한문으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지식인들은 편지 한 장을 주고받을 때에도 멋들어진(?) 한문을 쓰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아냐

 │

 │→ 움직일 수 있지는 않아

 │→ 움직이지는 않아

 │→ 안 움직여

 └ …

 

 작은 일도 그렇지만 크다고 하는 온갖 일을 할 때면, 살가운 벗과 주고받는 편지도 그렇지만 널리 쓰여야 할 굵직굵직한 글을 쓸 때면, 으레 한자로 적거나 한자말로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깊이 자리를 잡은 우리 삶입니다. 이런 흐름이나 버릇은 문화나 전통으로 여기며 고이 이어받아 앞으로도 대물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흐름이나 버릇이 얼마나 이어받을 만한 문화나 전통인가를 곰곰이 되짚을 수 있습니다. 따져 볼 수 있습니다. 찬찬히 살피며 한결 나은 문화나 전통으로 새로워지도록 고칠 수는 없는지, 또는 거듭날 길은 없는가 하고 새롭게 가꿀 수 있어요.

 

 “사람은 죄책감만으로는 안 움직여.” 하고 말할 수 없을까요. “사람은 미안하다는 생각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하고 말하면 자기 뜻을 제대로 건네지 못할까요.

 

 어떤 일을 하든 ‘일하는 마음’과 ‘일하는 매무새’를 곰곰이 되짚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날이 쓰는 말 한 마디를 할 때에도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하느냐를 무엇보다도 깊이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ㄷ. 작고 힘이 없는 존재

 

.. 나는 최근 몇 년 전까지 작고 힘이 없는 존재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있었습니다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9쪽

 

 ‘최근(最近)’은 ‘요사이’나 ‘요즈음’이나 ‘요’로 고칩니다. “몇 년(年) 전(前)까지”는 “몇 해 앞서까지”로 다듬어 줍니다.

 

 ┌ 작고 힘이 없는 존재인 내가

 │

 │→ 작고 힘이 없는 사람인 내가

 │→ 작고 힘이 없는 내가

 └ …

 

 우리들은 작다고 하든 크다고 하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목숨 하나 붙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작고 힘이 없는 목숨붙이인 내가

 

 우리는 사람이니 ‘작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고, 힘이 없는 목숨붙이이니 ‘힘이 없는 목숨붙이’라고 가리킬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이런 말 저런 말 넣지 말고 “작고 힘이 없는 내가”“작으면서 힘도 없는 내가”로 적어도 됩니다.

 

 ― 작고 힘이 없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뒤따르는 ‘내가’까지 덜고 “작고 힘이 없으면서”만 적어 봅니다. 어떤 말이든 꾸밈없이 적을 때가 가장 단출하고 또렷하고 느낌이 살고 넉넉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2.16 19:14ⓒ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존재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