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강의로 사교육비 잡자? 30년 된 레퍼토리잖아요

안병만 "EBS 강의, 수능 70% 반영"... 자사고가 대안이라더니

등록 2010.03.12 14:05수정 2010.03.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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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EBS수능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연계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과부-EBS-한국교육과정평가원간 교류협력협정서(MOU)'를 체결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EBS수능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연계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과부-EBS-한국교육과정평가원간 교류협력협정서(MOU)'를 체결했다. ⓒ 교과부


10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장관이 "올해 수능부터 EBS 수능 강의의 내용이 70% 또는 그 이상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BS 강의와 수능의 연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과부-EBS-한국교육과정평가원간 교류협력 협정서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금년을 '사교육비 절감 원년'으로 설정한 정책목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요한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EBS 강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수능에 반영하여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뜻입니다.

교과부 발표는 곧바로 메가스터디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발표 당일 10.8%가 빠졌습니다. 정부 교육정책이 사교육업계에 타격을 입힌 겁니다. 하지만 발표 다음 날인 11일 반등하여 3.9% 상승하였습니다. 12일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EBS 충격'에서 벗어난 느낌입니다. 

안병만 장관의 바람이 실현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EBS 강의가 사교육비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강의가 꽤 방대하기 때문에 'EBS 수능강의의 엑기스만 뽑아주는 사교육'도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교는 '방송 틀어주는 곳', 교사는 '리모컨 누르는 사람'이 되는 등 사교육과 공교육이 뒤섞이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러긴 했지만 말입니다.

자사고로 사교육비 잡겠다고 했잖아요? EBS 수능강의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재밌습니다. MB 교육의 핵심은 교육방송이 아니라 자율형 사립고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을 실현하기 위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야기한 건 ▲ 자율형 사립고 등 고교다양화 300 ▲ 입학사정관 등 3단계 대입자율화 ▲ 영어몰입교육 등 영어공교육 완성 ▲ 일제고사 등 기초학력미달 제로 플랜 등이었습니다.

자사고로 사교육비를 잡겠다고 공언한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사고나 고교다양화로 학원비 줄인다"는 뉘앙스의 말이 사라집니다.


대신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리틀 MB'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도 있고 하여, 서울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이 가장 많이 실현된 지역입니다. 자사고는 작년 20개 중에서 13개가 서울에 지정되었고, 일제고사도 '힘있게' 잘 시행되며, 입학사정관제을 실시하는 주요 대학도 많습니다.

a  * 전국과 서울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추이(명목금액, 괄호 안은 전년 대비 증감율)

* 전국과 서울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추이(명목금액, 괄호 안은 전년 대비 증감율) ⓒ 송경원


하지만 서울의 사교육비는 현 정부 들어 전국 평균보다 많이 올랐습니다. 2007년 서울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8만 4천원입니다. 두 해가 지난 2009년은 33만 1천원으로, MB 집권 후 16.5%가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증가율이 9.0%(22만 2천원→ 24만 2천원)인데, 그 2배 가까이 됩니다. MB 교육이 '사교육비 절반'이 아니라 '사교육비 두 배'인 셈입니다.


이 와중에 EBS 수능강의를 들고 나옵니다. MB 교육의 핵심 정책에서 비껴있던 교육방송을 사교육비 경감의 '주요 사안'이라며 이야기합니다. 멀지 않아 '방과후 학교'도 재포장하겠지요. 그러면 "자사고나 입학사정관 등으로는 잘 안되니, 전부터 해오던 교육방송으로 수를 내려고 한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냥 넘어갑니다.

수능 과외방송은 1980년 당시 문교부가 'TV 가정고교'로 시작하였습니다. 30년 동안 진행되어온 단골 메뉴인 셈입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2004년부터 'EBS 수능강의'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 때도 당시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EBS 수능강의가 사교육 열기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짧게는 6년, 길게는 30년 동안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었지만 단 한 번도 사교육비가 줄어든 경우는 없습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날 뿐입니다. 1980년 이후 최대 30년 동안 같은 정책이 이름만 달리 해서 실시되었음에도, 별반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거 안되나 보다'라고 생각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MB 정부는 해묵은 정책을 또 내놓습니다. 

EBS가 '수능과외' 방송국?

정부의 의도는 수능 대비 사교육비를 교육방송으로 잡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올해 262억 원을 지원하는데, 작년 175억 원보다 50% 늘렸습니다.

하지만 수능 사교육을 해결하는 방안이 꼭 '대신 해주는 사교육' 밖에 없을까요? 사교육의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수능만 놓고 볼 때 '문제 알려주는 과외방송'만이 해법일까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수능을 운전면허시험처럼 합격/불합격만 따지는 체제로 바꾸면, 수능 사교육비 경감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경쟁'을 유도하는 상대평가보다 '자신과의 경쟁'으로 이끄는 절대평가가 아무래도 사교육비를 덜 필요로 하니까요.

그나저나 'EBS 수능강의로 사교육비 잡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그림입니다. 청와대가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낼 때 한 차례 나왔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짜놓은 프레임 말고 다른 것도 봐야 합니다. 교육방송으로 학원비 경감이 가능한지를 떠나 'EBS는 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수능과외' 전문 방송국으로 거듭 나면, 그동안 괜찮았던 프로그램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좋은 화면과 훌륭한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구성원들이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할 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요즘 들어 아이들이 즐겨보는 아침 프로그램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혹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제 그만 보고 유치원 가자"는 아비의 말에 딸아이들이 바로 일어나서 좋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3불 #사교육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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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습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요, 정말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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