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참관인이 본 '뒤죽박죽' 지방선거

아파트 따라 줄 달라...유권자들 투표소 찾아 헤매기도

등록 2010.06.03 16:00수정 2010.06.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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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파트는 이리로 오세요."

 

지방선거가 있었던 2일 오전,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제2투표소에서는 이런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은 이 말을 듣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끔씩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A 아파트는 있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제."

 

한 할머니의 푸념 섞인 말이 들려왔다. 애초 선관위에서는 신원확인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는 A 아파트 주민들의 선거인명부를 따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A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해당 아파트에 살지 않는 주민들이 각각 두 줄로 섰다.

 

물론 선관위에서는 A 아파트 거주 주민들을 선거인명부의 번호를 달리해서 구분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다보니 번호보다는 'A 아파트 사시는 분'이라는 소리가 먼저 나온 것이다. 다른 주민들 입장에서는 투표소도 아파트 단지 내에 있고, 줄도 사는 곳에 따라 따로 세우니 차별을 받는다 느끼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날 나는 서울 성북구 종암동 제2투표소 투표참관인으로 참석했다. 6·2지방선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가기도 했고, 6시간 동안 참관을 하면 수당 4만 원도 나온다 하니 돈 없는 대학생으로서는 꽤나 좋은 일이었다. 많은 동네 아주머니들도 투표참관인으로 참석했다.

 

오전 6시 투표가 시작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런데 선관위와 주민들 간의 마찰이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 성북구 종암동 제2투표소의 경우 위의 실랑이와는 별도로 투표소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투표소는 A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대연회실'에 설치됐는데 아파트 단지에 현수막도, 안내표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주민들이 찾는데 많이 애를 먹은 것이다. 나 역시 몇 동 근처라는 안내를 듣지 못했다면 찾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부랴부랴 매직으로 장소를 표시한 A4용지가 아파트 단지 곳곳에 붙었다.

 

신원확인을 하는 곳이 1곳, 기표소도 4개 밖에 없어서 투표를 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출근을 해야하는 주민들의 경우 기다리다 중간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투표 날에 출근을 하는 주민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 또한 충격이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투표시간은 출근을 해야하는 시민들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선관위 직원 실수로 투표소 찾아 온 동네 돌아다닌 할머니

 

선거를 관리하는 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 않았다. 한국외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참관인을 하던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선관위 직원의 실수로 어떤 할머니가 온 동네 투표소를 돌아서 다시 외대 투표소로 왔다고 했다. 선관위 직원이 선거인 명부에 할머니의 이름이 없다고 안내한 것. 그래서 이 할머니는 다른 투표소로 갔는데, 다른 투표소에도 이름이 없었다. 결국 다시 외대 투표소로 와 보니 할머니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심지어 공보물을 받지 못해 직접 발품을 팔아 투표소를 물어물어 찾아온 주민들도 있었다. 선관위직원이 아닌 동사무소 직원이나 구청직원을 차출하는 경우도 있어, 투표절차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실수도 나왔다.

 

투표나 개표참관인 시간에 대한 안내도 뒤죽박죽이었다. 개표참관을 위해 5시 30분까지 오라고 한 곳이 있는가 하면, 4시 30분까지 오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노량진과 이문동의 한 투표소에서는 이것 때문에 작은 실랑이가 있기도 했다. 오전 투표참관만(오전 5:30~12:00) 하고 가고자 했던 참관인들에게 해당 선관위에서 하루종일 참관인을 해야 한다고 한 것.

 

그런데 다른 투표소에서는 참관인들이 오전이나 오후(오전 11:30~ 오후 18:00)를 선택해 투표참관인을 하고 있었다. 각 투표소별로 내용이 달랐던 것이다. 이에 하루종일 참관을 해야한다고 공지받았던 참관인들은 선관위에 항의를 하고 나서야 투표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54.5% 투표율이라는 국민들의 높은 투표율에 비해 선관위의 준비는 허술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주민들이 투표장에서 등을 돌리게 된다. 소중한 주권행사의 기억이 투표장을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하고,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나쁜 기억으로 남을까 두렵다. 국민들이 투표를 많이 안 할 거라고, 국민들을 미리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 모두 투표를 한다는 생각으로 선관위가 만전의 준비를 다하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바란다.

2010.06.03 16:00ⓒ 2010 OhmyNews
#선거관리위원회 #지방선거 #투표참관인 #선관위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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