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정비공, 기타를 잡다

꿈을 찾고자 기타학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등록 2010.08.12 18:56수정 2010.08.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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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갖고 계시나요?

 

작년 12월. 서른 살의 마지막 자락에서 저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해보고 싶지만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도 싶었고, 귀도 뚫어보고 싶었습니다. 서른이란 나이가 저를 무척이나 감성적으로 만들더군요. 아직도 제 머리는 까맣고 귀 역시 바늘 한번 대보지 못했습니다. 막상 시도해보려니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실천한 게 있습니다.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기타연주입니다.


저는 서울의 한 자동차정비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기름을 만집니다. 일이 끝나면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모든 게 귀찮아지고 빨리 밥 먹고 자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일요일은 쉬기 때문에 보통 토요일에는 술자리를 갖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부터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찮게 인터넷 카페를 뒤지다 '통기타를 사랑하는 모임'을 발견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카페에 가입하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연주할 수 있는 곡, '이등병의 편지'뿐이지만

 

a  서른 살이었던 작년 12월, 그동안 꿈만 꾸었던 '기타 배우기'에 도전하다.

서른 살이었던 작년 12월, 그동안 꿈만 꾸었던 '기타 배우기'에 도전하다. ⓒ 이선영

서른 살이었던 작년 12월, 그동안 꿈만 꾸었던 '기타 배우기'에 도전하다. ⓒ 이선영

 

10회 10만 원. 기타 레슨으로는 저렴한 돈이지만 1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배웠습니다. 첫 모임 때는 30명이 넘게 모여서 분위기가 왁자지껄했는데 가면 갈수록 사람이 줄었습니다. 다들 기타 배우는 게 쉽지 않았나 봅니다.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마음만큼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맨 처음 기본코드를 배우고 빨리 변환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다음엔 어려운 하이코드를 배웁니다. 열 번의 교육을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마지막에는 품평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만 결핵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5명이 한 조를 짜서 공연을 하는데 저의 공백에도 무사히 곡을 마쳤다는 소식만 병원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아쉬웠지만 낙담하진 않았습니다.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려 기타학원을 알아봤습니다. 제일 싼 곳이 한 달에 9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기타학원이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아 매일 오후 8시가 넘어 퇴근하는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일요일에 문을 여는 학원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혼자 독학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노래의 코드를 반복해서 연습합니다. 잘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하다가 소리가 잘 나오게 되면 기분이 무지하게 좋습니다. 아직은 연주할 수 있는 곡이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뿐입니다. 현재는 김C의 '고백'을 연습중인데 하이 코드가 많아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비록 서툴고 실력이 미약하지만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저도 멋지게 기타연주를 할 수 있는 때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혹시 모르죠. 직장인 밴드로 작은 자리에서나마 사람들을 위해 기타연주를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많은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8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8.12 18:56ⓒ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8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꿈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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