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서 억새에 취하고, 옛 담장에서 파란 눈의 하멜을 보다

전남 장흥군 천관산 억새 산행과 강진군 병영마을 옛 담장 길 산책

등록 2010.10.16 14:33수정 2010.10.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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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기저기 가을을 쏟고 있는 천관산 억새들이 기암괴석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여기저기 가을을 쏟고 있는 천관산 억새들이 기암괴석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 김연옥


하늘을 찌를 듯 비죽비죽 솟아 있는 봉우리들의 형상이 마치 오채의 구슬꿰미를 늘어뜨린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천관산(天冠山, 723m).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지제산(支提山), 천풍산(天風山), 신산(神山)으로 불렸다.

지난 9일, 절묘하게 생긴 기암괴석들과 은빛 억새로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천관산으로 산 드림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행을 나섰다. 아침 6시 50분께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장천재 주차장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10시 35분께. 우리는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금강굴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조선 후기 학자인 존재(存齋) 위백규가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장천재(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에 이르렀다. 본디 장천암이란 암자가 있었던 곳으로 장흥 위씨들이 여기에 이 건물을 세웠다. 위백규 선생은 천문, 지리에 밝고 역(易)에도 정통했던 분으로 그의 저서 가운데 천관산에 대해 기록한 <지제지(支提志)>가 있어 눈길을 끈다.

a  장흥 장천재와 태고송

장흥 장천재와 태고송 ⓒ 김연옥


장천재(長川齋) 앞에는 참으로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높이가 20m, 나무 둘레는 2.8m이다. 조선 태종 때부터 있었던 나무로 태고송이라 부른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노송이 우는 소리로 날씨를 예측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도 이상스레 힘들지는 않았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웅장하면서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우리들 눈앞에 신비스럽게 펼쳐졌다. 신선이 노닐다 갈 것 같은 그 장엄한 풍경에 내 가슴은 이미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천관산은 억새 산행으로 이름난 곳이지만 우람하게 보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기묘하게 생겼는데도 몹시 아름답게 느껴지는 바위 풍경 또한 전국의 많은 산객들이 꾸준히 천관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a  신선이 노닐다 갈 것 같은 장엄한 풍경에 내 가슴은 이미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신선이 노닐다 갈 것 같은 장엄한 풍경에 내 가슴은 이미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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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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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옥


금강굴은 이곳에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다. 석굴 입구는 좁은 편이다. 그저 밋밋해 보여서 그런지 산객 대부분이 흘끗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2년 전에 왔을 때엔 바가지가 놓여 있어 고여 있는 물을 떠서 한두 모금 마셔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낮 12시 40분께 대장봉 환희대(歡喜臺)에 도착했다. 누구든 이곳에 오르는 사람은 기쁨을 맛본다는 뜻을 품고 있다. 환희대에서 천관산 주봉인 연대봉(烟臺峯)으로 가는 길에 뻗어 있는 드넓은 억새밭을 내려다보면 '환희'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서는 산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즐거움도 있으니 이것 또한 기쁜 일이 아닐까.

아직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았지만, 가을 햇살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은빛 억새밭 사이로 나는 걸어갔다. 굼실굼실 흔들리는 억새 물결 따라 가을이 졸린 듯 누워 있었다. 바람과 노닥노닥하며 여기저기 가을을 쏟고 있는 천관산 억새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a  대장봉 환희대에서 연대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다본 풍경.

대장봉 환희대에서 연대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다본 풍경. ⓒ 김연옥


a  천관산 억새밭 사이로 걸어가는 등산객들. 

천관산 억새밭 사이로 걸어가는 등산객들.  ⓒ 김연옥


a  천관산 주봉인 연대봉(723m) 정상에서.

천관산 주봉인 연대봉(723m) 정상에서. ⓒ 김연옥


연대봉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나를 누가 불렀다. 일행 네 분이 점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가운데 끼여 점심을 같이 했다.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데 같은 산악회 버스를 타고 왔다고 챙겨 주는 마음씨가 참 곱다.

연대봉 정상에 이른 시간이 오후 1시 30분께. 많은 산객들로 북적댔다. 본디 이름은 옥정봉이었으나 고려 의종 때 봉화대를 설치해 통신수단으로 이용한 후부터 연대봉으로 불렸다 한다. 정상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천관문학관(전남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을 볼 수 있었던 불영봉, 포봉을 거쳐 천관산문학공원으로 내려가니 천관문학관이 나왔다.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a  '하멜식 담쌓기'라 부르는,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돌을 쌓은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하멜식 담쌓기'라 부르는,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돌을 쌓은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 김연옥


천관산 산행을 끝내고 우리는 병영마을 옛 담장(등록문화재 제264호, 전남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 성동리, 박동리, 동성리 등)을 보러 갔다. 장흥 천관문학관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은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돌을 독특하게 쌓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하멜식 담쌓기'라 부르고 있다.

헨드릭 하멜은 우리나라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인 <하멜표류기>를 썼던 네덜란드 선원이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하멜 일행은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에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는데, 14년 동안의 억류 생활 중 효종 7년(1656)부터 현종 4년(1663)까지 7년 간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에 소속되어 강진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들은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잡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a  병영마을 한골목의 담장 높이는 2m 정도로 여느 돌담이나 토석담보다 높다.

병영마을 한골목의 담장 높이는 2m 정도로 여느 돌담이나 토석담보다 높다. ⓒ 김연옥


1.5km에 이르는 병영마을 옛 담장 길은 전라병영성이 축성된 후 마을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다. 골목이 크고 길다 하여 '한골목'이라 불렀다. 그런데 담장 높이가 2m 정도로 여느 돌담보다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골목은 병마절도사가 수인산성(修仁山城, 전남기념물 제59호)을 순시할 때 지나다니던 길로 병사들이 주로 말을 타고 오가곤 했기 때문에 집 안이 훤히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돌담과 토석담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돌담에 기대어 좋아하는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싶은 오후, 나는 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한골목을 걸으며 모처럼 옛 정취에 흠뻑 젖었다. 정말이지, 가을은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다. 햇살도, 옛 담장도, 억새가 흔들리는 천관산도 가을이라 더욱 눈부시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 제2순환도로→화순(외곽도로)→국도 29호→ 이양삼거리→장평 봉림삼거리→ 유치→ 장흥→ 국도 23호→ 관산→ 장천재
*인천→서해안고속도로 목포→ 국도 2호→ 강진→ 장흥 순지 I.C→ 국도 23호→ 관산→ 장천재
*부산→남해고속도로 순천→ 국도 2호→ 보성→ 장흥 순지 I.C→ 국도 23호→ 관산→ 장천재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서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 제2순환도로→화순(외곽도로)→국도 29호→ 이양삼거리→장평 봉림삼거리→ 유치→ 장흥→ 국도 23호→ 관산→ 장천재
*인천→서해안고속도로 목포→ 국도 2호→ 강진→ 장흥 순지 I.C→ 국도 23호→ 관산→ 장천재
*부산→남해고속도로 순천→ 국도 2호→ 보성→ 장흥 순지 I.C→ 국도 23호→ 관산→ 장천재
#천관산억새 #하멜식담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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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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