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이사, 이사... '전세대란' 맛보기 맵네

아이들의 거처를 다시 옮기며... 앞으로 닥칠 집 문제 더 걱정

등록 2011.03.03 17:58수정 2011.03.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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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년 전인 2009년 3월 3일, 이 지면에 '서울시민 되지못한 자괴감에 위축되지만…'이라는 글을 썼다. '두 아이, 서울서 대학 생활하게 되니 더 미안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그 글을 찾아 읽어보며 한숨을 지었다.

2년 세월이 바람같이 흘렀음에, 또 일찍이 서울시민이 되지 못한 자괴감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또 한 번의 아이들 이사 문제가 마무리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며 기약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지니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 등으로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22일 아이들 이삿짐 옮기는 일을 했고, 떠나온 집의 보증금 일부를 28일 반환받아 새로 들어간 집의 보증금을 해결했고, 떠나온 집의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제한 잔액을 어제(2일) 돌려받음으로써 이사와 관련하는 모든 일은 일단락되었다.

a 떠나온 집 내부 내 아이들이 지난 2년 동안 생활했던 합정동의 사글세 집 거실 풍경

떠나온 집 내부 내 아이들이 지난 2년 동안 생활했던 합정동의 사글세 집 거실 풍경 ⓒ 지요하


아이들이 2년 동안 살았던 합정동의 반지하 11평 집, 방 두 개와 거실이 있는 그 집은 내게도 조금은 정이 들었지 싶다. 지하철 합정역과 상수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덕에 손쉽게 2호선과 6호선을 이용하며, 나도 자주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화장실 하수구가 막혀 억류하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했지만, 거실 바닥에서 검붉은 물이 장판 틈새로 흘러나오는 문제는 계속 진행 중인 집이었다. 큰비라도 올라치면 침수 걱정도 해야 하는 반지하 주택에서 걱정 없는 '밝고 건조한' 집으로 옮겨 살았으면 하는 것이 아이들의 소망이었다.


게다가 아들 녀석은 고시공부를 계획하면서 혼자 생활하기를 원했다. 3월 말로 월드컵공원 공익근무를 마치면서 병역의무를 완수하게 되는 아들 녀석은 2학기 복학 이전의 공백 기간을 이용하여 고시공부에 전념하고자 했다. TV도 없고, 혼자 적막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했다. 그래서 신림동 고시촌의 한 원룸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재 휴학 중인 딸아이는 2학기에 복학해야 함으로 1학기 동안은 집에 내려와 있기로 했다. 2학기 복학을 할 때 학교 기숙사 입주 신청을 하되, 기숙사 입주가 되지 않으면 전에 두 해 동안 생활했던 상도동의 큰 이모 댁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짐 일부는 상도동 큰 이모 집으로 옮기고, 짐 일부는 태안집으로 가져왔다.


아들 녀석은 휴가 기간에 이삿짐 옮기는 일을 하고 집에 내려와 한 이틀 쉬었다가 지난달 24일 저녁부터 신림동의 새 원룸에 입주해서 현재 공익근무 마지막 달 출근을 하고 있다. 제대 후에는 곧바로 인근 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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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 살았던 합정동의 반지하 주택은 보증금 1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나가게 되면서 집 주인은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집을 부탁하며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으로 내놓았다. 언뜻 요즘의 '전세대란'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보증금과 월세를 과하게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보증금과 월세로 처리되는 반지하 작은 주택을 얻어 아이들을 살게 한 경험뿐이지만, 요즘의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조금은 실감되는 기분이었다.     

a 떠나온 집 외부 내 아이들이 2년 동안 살았던 합정동 사글세 집의 바깥 모습. 나도 자주 들락거려 꽤나 정이 들었지 싶다.

떠나온 집 외부 내 아이들이 2년 동안 살았던 합정동 사글세 집의 바깥 모습. 나도 자주 들락거려 꽤나 정이 들었지 싶다. ⓒ 지요하


아들 녀석이 옮겨간 원룸은 2년 전에 지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5층 건물의 4층이다. 깨끗하고 쾌적하고 밝은 공간이다. 출입문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와 가스레인지가 구비되어 있고, 세탁기와 정수기는 공용이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보증금은 1000만 원이고. 월세 38만 원에 관리비 5만 원이 추가된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시내버스로 두 정거장이니 걸어서 지하철역을 갈 수도 있고, 역 주변의 유흥가에서 벗어난 것도 좋은 점이다. 또 발걸음으로 5분 거리 안에 고시학원들이 있으니 그 또한 다행이다.

4평 남짓의 원룸이라 평수는 전에 살았던 합정동 반지하 주택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혼자 생활하는 데는 불편이 없을 것 같다. 또 나와 딸아이가 지난주 월요일 여의도 '거리미사' 참례 관계로 서울에 갔을 때 잠을 자보았는데, 서너 명은 '오붓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 모두 흡족하게 여긴다. 더욱 반가운 것은 5층에서 사는 집 주인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다. 내년에 사제가 되실 분의 아버지인 집 주인은 나를 익히 알고 있는 분이기도 했다. 부인에게서 내 명함을 건네받은 순간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분"이라며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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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합정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이사를 할 때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청소까지 해놓았다. 주인이 나중에 와서 집을 살펴보고, 전화로 내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한 달 전쯤에 내가 전화로 이사 통보를 하고, 이사 열흘 전쯤에 보증금 반환 준비를 부탁할 때는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받아서 내 쪽에 반환을 할 수 있다는 뜻의 말을 집 주인이 해서, "내가 당신과 계약을 했지, 누군지도 모르는 다음 세입자와 계약을 했습니까? 계약 만기가 되면 당연히 집 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는 법이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거친 어세로 말을 한 적도 있다. 그런 과정이 있었지만 집 주인은 다음 세입자와 계약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게 기분 좋게 보증금을 반환해준 것이다.        

a 아들 녀석의 대학 새내기 시절 모습 서울 생활을 시작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들 녀석은 지난해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 현재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다.

아들 녀석의 대학 새내기 시절 모습 서울 생활을 시작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들 녀석은 지난해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 현재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다. ⓒ 지요하


아이들 이사 문제가 마무리된 지금, 비로소 차분해진 상태가 되었다. 한마디로 안정된 상황이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울적하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또 한 번의 아이들 이사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그것 역시 또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아이들의 이사 문제는 오랜 세월 내게도 과중한 짐이 될 것 같다. 우선 올해 여름방학에는 딸아이의 거처를 정해야 한다. 학교 기숙사로든 상도동 이모 댁으로든 거처를 옮겨야 하고, 학교 졸업과 동시에 다시 거처 문제를 안아야 한다.

아들 녀석도 신림동 고시촌 원룸에서 1~2년 생활한 후로는 학교 안의 고시 준비생들을 위한(시험을 쳐서 들어간다는) 기숙사로 들어가게 될지, 그냥 줄곧 신림동에서 신촌으로 통학을 할지, 대학생활 후에도 고시공부를 계속하게 될지, 모든 게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의 인생살이 가운데 이사를 해야 할 일이 많으리라는 사실이다.

'공부를 시켜주는 것으로 아비의 역할은 끝'이라는 말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지만, 재력이 없는 처지로서는 아이들에게 지레 미안하고 무안하다. 장래 아이들의 집 장만을 거들어 줄 능력이 내겐 없다. 건강치 못한 몸에 나이는 늘어가고 있으니, 아이들의 거처 옮기는 일에 손을 보태주는 것도 금세 한계가 올 것이다.

6년 전에 엄마 잃은 조카아이들을 데리고 살던 중 큰 녀석이 고교생이 되면서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 짐을 덜게 되었는데, 그 녀석도 내년에는 대학을 가야 한다. 그러면 조카 녀석의 거처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 문제를 일용직 기술근로자로 생활하는 동생에게 전적으로 맡겨도 될지, 내가 일정 부분 관여를 해야 할지, 현재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저 내게는 가지각색의 짐도 많고 일도 많다는 생각만 명료할 뿐….

시골에서 달랑 아파트 한 채 지니고 사는 가난한 처지로서는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의 거처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에 비애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당장에는 1000~2000만 원대의 보증금과 수십 만 원의 월세로 해결을 해나가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는 전세 문제에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전세대란'도 겪게 될 것이다. 아직은 보증금과 월세 수준이기 때문에 요즘의 '전세대란'을 직접적으로 겪지는 않지만, 미구에 나도 실감하게 될지 모른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전세대란에 따른 비명과 신음과 아우성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소이(所以)다.                  
#전세대란 #보증금 #월세 #원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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