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농사 쉽다? 대~단한 '농사의 달인' 나셨다, 그죠?

[내 맘대로 점수주기]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록 2011.05.24 08:19수정 2011.05.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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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자질 검증을 벼렸던 여야의 청문위원들이 그동안 준비해 왔던 나름의 '한 방'을 공개했습니다. 물론 위력이 셌던 것들도 있었지만 미미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의 활약상에 평점을 매기 듯 이날 의원들의 활약상을 평가해봤습니다. 물론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기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한 가지 밝혀 둘 점은 의원들의 활약에 변별력이 크지 않아 평가에 애를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장관 후보자들을 두둔하기에 바빴던 정권 초기와는 다르게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날 청문회에서는 서 후보자에게 날카로운 검증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인데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인사청문회였습니다. 일단 한번 보시죠. 반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10점을 만점으로 했습니다.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 : 6점]
서 후보 고개 숙이는 답변 이끌어

a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의혹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직불금을 받은 것은 정당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의혹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직불금을 받은 것은 정당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했다. ⓒ 남소연

출전 순서에 행운이 따랐습니다. 두 번째 질의에 나선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은 첫 질의자였던 정해걸 한나라당 의원이 밋밋한 질의로 일관하는 바람에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쌀 직불금 부당 수령 문제를 사실상 처음으로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기회를 잘 살린 셈이 됐는데요.

그는 서 후보자가 농민 소득 보전을 목적으로 한 쌀 직불금 제도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다른 고위공직자들처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석연치 않게 직불금을 받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제도의 설계자가 그 허점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서 후보자는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사과까지는 받아내지 못했지만 '문제 될 게 없다'던 종전 입장을 바꾸게 한 '날카로운' 질의였습니다. 


[김우남 민주당 의원 : 8점]  '유령 농지원부' 의혹 제기

김우남 민주당 의원은 서규용 후보자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과 '8년간 자경'을 이유로 양도세를 감면 사실을 발빠르게 찾아내 이번 청문회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만 합니다. 김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도 실질적인 경작은 형님이 했지만 본인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농지원부' 작성 사실을 집중 추궁했습니다.

a  김우남 민주당 의원이 23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을 제기하며 후보자의 주소지였던 집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김우남 민주당 의원이 23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을 제기하며 후보자의 주소지였던 집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김 의원은 또 2007년 당시 한국농어민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며 8000만 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던 서 후보자가 60만 원 정도였던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것에 대해선 "양도소득세를 피하려고 받은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 후보자가 "농지원부 신청은 내가 하지 않았다,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면서 '유령이 신청한 농지원부' 신세가 됐고 논란은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조차 답답해 하면서 야당의 공세에 가세했기 때문이죠. 이같은 검증 자료를 준비한 보좌진들의 노력도 제대로 평가받아야할 부분입니다.

[김성수 한나라당 의원 : 5점] 참신한 퀴즈쇼

인사청문회장에서 갑자기 퀴즈가 시작됐습니다. 문제 출제자는 김성수 의원이었습니다. 서 후보자가 직접 농사를 지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즉석 테스트 성격이었는데요. 논을 갈 때 몇 마력 트랙터를 썼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이양기는 몇조식을 썼는지, 제초제는 얼마를 뿌렸는지 등 쉴 새 없이 문제를 냈습니다. 서 후보자도 막힘없이 답변을 했습니다. 서 후보자는 51마력 트랙터를 썼는데 그 정도 사양이면 1200평 논을 3~4시간 정도면 다 갈 수 있다네요.

이양기는 4조식을 썼고 한나절이면 모심기가 끝난다고 하더군요. 제초제는 한 마지기(200평)에 3kg을 두번 정도 뿌렸고 벼 베기도 직접 콤바인을 몰고 했다고 합니다. 답변이 틀리지 않았는지 출제자의 특별한 이의 제기는 없었습니다. 덕분에 쌀농사에 문외한이던 저도 공부(?) 좀 했습니다.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나름 참신한 '퀴즈쇼'였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서 후보자가 "쌀농사는 기계화 돼서 쉽다", "주말에만 해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다는 점입니다. "피땀 흘려 짓는다는 농사를 쉽게 봐서는 안된다"는 질타가 이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매를 사서 맞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습니다.

[성윤환 한나라당 의원 : 6점] '보조금 지원' 문제 따져  

성윤환 의원은 야당 의원들보다 더 매섭게 서 후보자를 몰아부쳤습니다. 서 후보자가 민간단체인 한국김치협회 고문, 충북농업연구원 원장, 로컬푸드운동본부 대표 등을 맡은 이후 이 단체들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국고가 지원된 사실을 지적한 것인데요.

그러면서 성 의원은 "국회의원이나 군수 출마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보자가 지역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고 단체에 가입하거나 만든 것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해당 단체가 보조금을 타내는 과정에서 서 후보자가 부당하게 전관의 지위를 이용한 사실까지 밝혀 낸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질의가 돋보였습니다.

[강봉균 민주당 의원 : 7점] FTA 정책 검증 돋보여

a  강봉균 의원.

강봉균 의원. ⓒ 남소연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평가할 때 흔히들 도덕성 검증에만 치중하고 정책 검증은 빈약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책 질의가 나오더라도 쌀 직불금 부당 수령 같은 예민한 이슈에 묻히는 경우가 많아 정책 검증에 나선 의원들은 언론에 얼굴을 내밀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좀 가산점을 줬습니다.

강봉균 의원은 한-미 FTA 재협상 결과물의 이익불균형, 미국산 쇠고기 추가 수입 요구, 쌀 수급 안정을 위한 대북 쌀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후보자의 인식을 묻는 검증에 나섰는데요.

한-미FTA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완대책 마련 없는 비준은 안된다고 대통령에게 진언하겠다"는 답변을 대북 쌀 지원도 "내부 거래니 지원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답변을 서 후보자로부터 이끌어 냈습니다.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 : 6점] "왜 끝까지 치사한 모양새냐" 직설 비판

강석호 의원은 정책에 관한 질의를 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면이 돋보였습니다. 보통 인사청문에 나온 후보자들의 경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의 답변으로 구렁이 담넘어 가듯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강 의원은 "한-미 FTA 보완 대책이 미흡하다"는 답변을 서 후보자가 내놓자 구체적으로 뭐가 미흡한지를 따져 물었습니다. 또 수산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홀대에 대한 개선 대책도 구체적으로 답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서 후보자는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장관에 임명이 되면 당장 6월 임시국회에서 한-EU FTA 후속 대책도 논의해야 하고 한-미 FTA 비준도 대비해야 하는 주무부처의 장관으로서는 준비가 미흡하다는 점이 그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주로 쌀 직불금 문제 등 도덕성 관련 질의에 초점을 맞춰 준비한 탓일까요?

강 의원은 또 쌀 직불금 부당 수령 문제에 대해서도 "처신을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해야지 계속 말싸움을 거니까 국민이 피곤해 한다, 왜 끝까지 치사한 모양새를 보이느냐"는 직설 비판을 내놓아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습니다.

[기타] 주도적 이슈 제기보다, 동료의원들 거드는 수준

이날 인사청문회 위원은 여야 모두 합쳐 18명입니다. 그 중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가 있는 진수희 장관을 빼고 17명이 이날 질의에 나섰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대체로 후보자의 도덕성과 정책 검증에 나름의 활약을 했습니다. 다만 주도적인 이슈 제기보다는 동료 의원이 제기한 쌀 직불금 문제,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 유령 농지원부 등의 문제를 거드는 선이었습니다. 하지만 낙제점은 없었습니다. 물론 아래 착한마음씨 상을 받을 의원들처럼 좀더 분발이 필요한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 : 착한 마음씨상] 주인 맞는 심정으로 임명 기다린다?

황영철 의원에게는 서 후보자를 대하는 마음이 '특별히' 착한 것 같아 특별상을 시상합니다. 황 의원은 다른 동료 의원들이 서 후보자에게 답변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는데요. 그는 오후 추가 질의 순서가 돌아오자 "많은 의혹을 제기했지만 질의 시간에 맞추느라 후보자에게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최인기 위원장에게 배려해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오전에는 쌀 직불금 관련 질의에 서 후보자가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신중했어야 했다"고 일부 잘못을 인정하자 "장관될 줄 알았으면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며 "국민들이 원하는 답변은 적법했다라는 것"이라고 답변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압권은 "주인을 맞는 심정으로 장관 임명을 기다리게 된다"는 황 의원의 말입니다. 국민을 대표해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의원의 역할을 잠시 잊은 것 같기는 하지만 앞으로 황 의원이 장관을 얼마나 깍듯이 대할지를 보여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단 황 의원이 착한마음씨 상을 받지 못할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이 2008년 11월 쌀 직불금 부당 수령으로 물러난 사례를 언급하며 "서 후보자가 2008년 당시 장관에 내정됐으면 인사청문회가 제대로 안됐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신성범 한나라당 의원 : 아차상] 훈훈한 장면 연출했지만...

신성범 의원은 아깝게 착한 마음씨상을 놓쳤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서 후보자의 실제 거주지가 서울이었기 때문에 경작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쌀 직불금 수령을 문제 삼을 때 신 의원은 "(농고를 나온) 후보자가 고등학교 때 실력을 살려서 한 것"이라며 "정치적 잣대를 대는 것은 과도하다"고 감싸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박정희 정권,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문민 정부 등 역대 정부의 농정을 평가하라는 난해한 질문을 던져 서 후보자를 난감하게 만든 점이 감점 요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총평] 서규용 후보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했지만...

서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다"고 강변했습니다. 쌀 직불금 수령과 양도세 감면 등 부당 이익을 취했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저도 놀랐고 의원들도 놀랐습니다.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았다"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최인기 위원장이 "존경하는 성인이나 종교지도자들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겸손한 자세를 보여달라"고 핀잔을 줬습니다.

a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며 웃고 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며 웃고 있다. ⓒ 남소연

지난 2008년엔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이 쌀 직불금 부당 수령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시 이 전 차관도 "편법탈법은 없었지만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해명으로 어떻게든 버티려고도 해봤지만 국민적 비난 여론을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서 후보자도 이날 청문회에서 "불법은 없었지만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고 했었죠. 어디서 많이 듣던 해명이었습니다. 쌀 직불금 부당 수령은 차관 자리에도 부적격 사유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 후보의 무신경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쌀 농사는 기계화 돼서 쉽다"는 발언도 문제입니다. 서 후보자를 '농사의 달인'이라 불려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이 밀려오는 FTA에 미래를 저당잡힌 신세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책을 책임져야할 부처의 수장으로서 적절한 발언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책 질의에 대한 답변도 농업 분야의 '29년 전문가'라는 평가를 무색하게 했습니다. 이날 서 후보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EU FTA 비준 관련 여야정 합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을 못했다"는 답변을 했다가 "그 정도는 공부를 해오셨어야 한다"는 지적을 듣기도 했습니다. 강봉균 의원은 "차관 그만 둔 지 10년이 되니 말하는 것이 정치인 비슷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답하라"며 서 후보자의 두루뭉술한 이야기에 유감을 나타냈습니다.

앞에서 낙제점은 없었다고 했지만 사실 서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유일한 낙제점을 받은 장본인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감싸기'를 포기한 이상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에도 난항이 예상됩니다.
#서규용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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