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상원의원의 딸,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리뷰] 돈 윈슬로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을 읽고

등록 2012.02.10 15:14수정 2012.02.10 15:31
0
원고료로 응원
a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겉표지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겉표지 ⓒ 황금가지

▲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겉표지 ⓒ 황금가지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제목에서 느껴지는 작품의 분위기는 왠지 어둡고 싸늘할 것만 같다.

 

'지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렇다. 천정에서 기분 나쁜 차가운 물방울이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고, 바닥에는 정체모를 절지동물들이 기어다닌다. 햇볕이 들지않아 어두운 지하에 서늘한 바람까지 불어온다면 설상가상이다.

 

이런 예상과는 달리, 이 작품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밝은 편이다.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범죄소설의 분위기가 밝아봐야 얼마나 밝겠냐마는, 이 작품에서는 기특하게도 살인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장면도 몇 군데 되지않고 그나마도 비교적 수위가 낮다. 작품 속에서 탐정이 다루고 있는 사건도 심각한 편이 아니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도 마치 선문답 같다. 작가 돈 윈슬로는 비교적 가벼우면서 재미있는 범죄소설을 쓰겠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이다.

 

주인공인 23살의 대학원생 닐 캐리는 뉴욕에 살면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어디론가 떠났고 어머니는 마약에 빠져 들어서 닐을 돌보지 않았다. 닐은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서 소매치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소매치기 출신의 대학원생 탐정

 

그러던 어느날 닐은 술집에서 지갑을 훔치다가 그 지갑 주인에게 잡히는 신세가 된다. 지갑 주인인 그레이엄은 닐을 데리고 경찰서로 가는 대신에 그를 고용한다. 이때부터 닐은 '가문의 친구들'이라 부르는 조직의 일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 조직은 공공의 법 제도로 해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문제들로 곤란에 처한 친구들을 위해서 일한다. 만약 누군가 은밀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가문의 친구들을 찾아가거나 긴밀히 소식을 전하면 된다. 그레이엄은 바로 그 조직의 사설탐정이었고 닐은 그의 조수가 된 셈이다.

 

그레이엄과 닐은 서로를 '아들'과 '아빠'라고 부르면서 함께 일을 해나간다. 둘 다 반쯤은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겉모습만은 유쾌하고 냉소적이면서 거침이 없다. 그레이엄이 닐에게 "개헤엄 치듯이 내려가면 돼"라고 말하면, 닐은 "난 수영도 못 하고 개도 안 키워요"라고 대답한다. 이런 유대관계 속에서 10년이 넘게 함께 일을 해온 것이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닐은 색다른 임무를 맡게 된다. 유명한 상원의원의 딸이 실종되었는데 그녀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17세 소녀인 앨리는 3개월 전에 행방불명되었고 얼마전에 런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상원의원은 자신의 평판이 나빠질까봐 차마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가문의 친구들'에게 연락해온 것이다.

 

닐은 이 의뢰를 맡지 않으려고 하지만, 조직에서 그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포함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닐은 런던으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가망없는 수색을 혼자서 시작한다. 닐에게 주어진 시간은 8주, 닐은 어떻게 앨리를 찾아서 뉴욕으로 돌아올까?

 

실종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

 

닐은 일종의 탐정이지만 그렇다고 머리회전이 특별히 빠른 것도,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매치기 생활에서 터득한 잔머리와 탁월한 입심이 있다. 끈적끈적한 런던의 날씨 속에서 하루종일 앨리를 찾아서 돌아다닐 정도의 끈기도 있다. 나름대로의 통찰력도 가지고 있다.

 

닐은 앨리가 이미 죽었거나 또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는 우리가 아는 아이들을 거두어 가서, 심할 경우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다른 아이로 만들어 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닐은 런던의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면서 '서늘한 바람'을 떠올린다. 살인적인 열기를 내뿜는 런던의 지하철에서, 서늘한 바람이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있는 추억일 뿐이다. 앨리의 과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이 서늘한 바람도 다시는 불어오지 않는다.

 

이 작품은 '닐 캐리 시리즈'의 첫번째 편이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답게 닐은 책과 술을 좋아한다. 혼자있을 때면 닐은 책에 빠져들곤 한다. 혼자이지만 책이 있기에 별로 외로울 것도 없다.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혼자이더라도 괜찮다.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처럼 재미있는 범죄소설이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돈 윈슬로 지음 / 전행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돈 윈슬로 지음, 전행선 옮김,
황금가지, 2011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닐 캐리 #돈 윈슬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