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보다 약간 더 나은 미국산 햄버거?

[서평] 하비 리벤스테인의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등록 2012.09.12 14:42수정 2012.09.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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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표지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표지 ⓒ 지식트리

'비타민D 부족하면 뇌경색 발병', '녹차가 기억력도 향상시킨다' 등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보면 수많은 음식에 관한 기사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내용이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 것들도 있다. 유기농 식품이 영양소 함유량에 있어 일반식품보다 나을 게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며칠 전 기사만 보더라도 그렇다.

유기농 식품이 몸에 좋다는 일반적 인식을 깬 이 기사에서 사람들은 도대체 뭐가 맞는지 혼란을 겪게 되고, 유기농 식품을 사던 사람들이라면 향후 식품을 선택할 때 선택에 변화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그 연구결과라는 것이 모두 정확한 것이냐' 혹은 '뉴스 기사가 연구결과를 정확하게 보도했느냐'라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단순한 아이디어 내지는 정보 제공에 그칠 수도 있지만, 사안이 심각할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결과가 정확한 것인지, 뉴스 기사가 연구결과를 정확하게 보도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정부당국의 대응정책이 적절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비 리벤스테인의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지식트리)에는 이처럼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음식에 관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음식을 두고 벌어지는 한 판의 전쟁과도 같은 이야기들, 즉 각종 연구나 언론기사, 정부정책 등이 어떻게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고 그것을 이용해 왔는지의 역사가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실제 그 공포라는 것이 알고 보면 대부분 전혀 사실무근이거나 적어도 지나치게 과장된 것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음식에 관한 공포가 조장되고 유포되었을까? 저자는 음식에 대한 공포의 이면에는 그러한 불안감을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거대 자본들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밝힌다. 식품에 관한 공포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와 그 연구결과를 왜곡한 언론보도, 그리고 이에 편승한 정부 당국과 거대 식품업체들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식품 공포가 미국 최고의 과학, 의학, 정부 전문가들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공식적으로 확산돼 온 공포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맥마스터대학 역사학 명예교수로 <식탁의 혁명> <풍요의 역설> 등을 집필한 하비 리벤스테인은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통해 거대 자본과 그 이해관계자들이 음식과 건강을 담보로 어떻게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며 이득을 챙겨왔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장티푸스의 원흉' 우유, 캠페인 통해 '완전식품'으로 거듭나다

단백질, 지방, 미네랄 등 모든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서 '완전식품'으로 불리는 우유. 그런데 우유는 원래 몸에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많은 사람들이 먹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우유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완전식품으로 인식되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도시민들이 마셨던 우유는 대부분 증류주 양조장의 자극적인 폐수를 먹고 자란 병약한 소에서 짜낸, 맛없는 상한 우유였다고 한다. 당연히 우유에 대한 선호도도 낮았다. 더구나 1880~90년대에 걸쳐 미국 전역에서 장티푸스가 기승을 부리자 우유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며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매년 수천 명에 달하는 영유아의 사망뿐 아니라 수 년간의 고통 속에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 폐결핵의 원인이 젖소의 우유 때문"이라고 보도했다.(본문 36쪽)

과학자들은 몇 가지 연구를 통해 장티푸스균이 우유 공급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결론지었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종 언론들은 이것을 확대재생산 하면서 우유를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심지어 공중보건 전문가들조차도 우유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세한 것이다.

그후 저온살균 처리가 개발되면서 우유는 비로소 세균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벗게 된다. 저온살균 처리 시설이 의무화되면서 우유업체들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다. 포스터, 홍보물, 연극, 노래는 물론 '건강요정'이라는 스토리 메이킹을 통해 드디어 우유는 '완전식품'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완전식품으로 변신한 우유를 위해 심지어 우유업체들은 뉴욕시장까지 설득해 '우유주간'을 선포하고 이 기간 동안 시장과 시 보건위원들은 매일 점심시간에 1리터의 우유를 마시는 시범까지 보여 우유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킨다. 마치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청와대에서 몸소 시식하는 우리네 대통령의 모습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도축장 찌꺼기를 햄버거용 패티로 만들어 원가절감

이처럼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가장 위험한 식품'에서 '완전식품'으로 탈바꿈한 우유와 달리, 2008년 촛불시위에 불을 붙이며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의 쇠고기는 또 다른 양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쇠고기를 갈구하는 민족'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쇠고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미국인들은 그 어떤 외부 환경이나 굴하지 않고 꿋꿋한 쇠고기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육가공업체의 막강한 로비력과 정부의 뒷받침으로 쇠고기에 관해 제기되는 그 어떤 불편한 진실도 쇠고기 소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 이야기이고, 미국인처럼 쇠고기에 환장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밝힌 미국산 쇠고기에 얽힌 실상을 알고 나면 더 이상 버거킹이나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평범한 소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청와대를 지키는 분들이나 식품업체 관계자들의 생각은 또 다르겠지만. 

미국에서 쇠고기에 관한 공포는 1898년 12월, 쿠바에서 육군 사령관을 지냈던 넬슨 마일스 장군의 내부 고발에서 시작된다. 마일스 장군은 쿠바 주둔 당시 자신의 부대에 공급된 쇠고기 중 상당수가 화학 약품 처리된 불량 쇠고기였다며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결과는 마일스 장군의 예상대로였다.

사람들은 쿠바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총탄에 맞아 죽은 미군보다 상한 쇠고기를 먹고 죽은 미군이 더 많다고 생각했으며, 마일스 장군 역시 그렇게 말했다. 업튼 싱클레어는 <정글>이란 소설과 각종 기고문을 통해 당시 도축장의 열악한 환경을 폭로한다. 

쥐와 쥐약 묻힌 빵, 그리고 쇠고기가 함께 뒤섞여 호퍼에 실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생고기는 거의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부패가 진행되면 쿠바에서처럼 이를 감추기 위해 붕사를 이용해 처리하곤 했다.(본문 85쪽)

싱클레어가 미국 전역에 공급되는 쇠고기 대부분을 가공 처리하던 시카고 도축장의 열악한 환경을 폭로한 대목이다. 그러나 마일스 장군이나 싱클레어의 이런 폭로에 사람들은 경악하긴 했지만 놀랍게도 미국에서 쇠고기 또는 다른 육류 소비가 크게 줄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당시 치위생사들은 "햄버거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것보다 약간 더 나은 것일 뿐"이라고 경고했으며, <뉴욕타임스>는 코니아일랜드에 공급되는 비엔나소시지가 호텔에서 나오는 고기 내장과 쓰레기 부산물들로 만들어진 '가장 부패한 음식'이라는 기사도 실었지만, 이 역시 쇠고기 소비량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먹어보고 문제 있으면 리콜'... 정말 편리한 발상 

문제는 싱클레어의 폭로 이후 약 백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쇠고기와 관련한 미국의 상황은 별로 나아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2001년 탐사 저널리스트 에릭 쉴로서가 <패스트푸드 제국 : 미국 음식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책을 통해 정부의 개입을 촉구했지만 오히려 더욱 막강해진 육가공 업체들의 강력하고도 조직적인 정치적 영향력만 확인했을 뿐이라고 한다.

2002년 발명가 엘든 로스는 애완동물의 사료와 오일을 만드는데 사용되던 도축장의 버려진 패티 찌꺼기를 분쇄육으로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해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다. 그의 회사 비프 프로덕트는 원심 분리기를 이용해 지방에서 단백질 잔여물을 분리하고, 이를 통해 생산된 분쇄육처럼 생긴 물질을 암모니아 가스로 처리해 0157:H7과 살모넬라 병원균을 제거했다. 이 제품은 60파운드 단위로 냉동 포장해 쇠고기 원가 절감 방안을 모색 중이던 학교 급식, 교도소, 카그릴, 맥도날드, 버거킹 및 많은 소매점으로 팔려나갔다.(본문 109쪽)

2007년 한 해 동안 0157:H7 대장균으로 인해 21회의 쇠고기 리콜이 단행됐지만 적발되지 않은 사례는 여전히 많았다. 전문가들은 2007년 2500만 파운드 이상의 오염된 쇠고기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2008년 2월, 자체 검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물 애호회에 등 떠밀린 농무부가 캘리포니아 사육장에서 생산된 쇠고기 잔여분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린 양이 무려 1억4300만 파운드에 달했다는 데 비하면 얼마되지 않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사육장은 2006년 2월부터 식품 공급망에 합류한 업체였는데, 동물 애호회가 이곳을 직접 방문해 질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는 이른바 '다우너 소'의 도축 과정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다우너 소'는 도축 직전 며칠을 박테리아에 피부를 노출시킨 채 배설물로 범벅이 된 사육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대장균 감염 위험이 매우 높았다. 당시 이 회사가 생산하는 3700만 톤의 분쇄육은 학교 급식용 햄버거, 타코, 칠리로 가공되었으며, 제너럴  밀스, 네슬레, 콘아그라, 하인즈 등 거의 대부분의 주요 식품업체들도 이 제품을 사용했다.(본문 108쪽)

현실이 이 지경임에도 미국은 쇠고기에 관해서 '이상없다 내지는 이상이 있으면 리콜한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일단 먹어보고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고, 문제가 있으면 리콜 조치하면 된다는 정말 편리한 발상 아닌가. 

2011년 1월, 미국은 양당 합의하에 FDA가 식품 생산과 관련해 리콜 명령과 관리 감독이라는 새로운 권한을 갖는다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쇠고기와 육류는 대폭 강화된 정부의 관리 감독을 교묘히 피해 여전히 FDA가 아닌 농무부의 친절한 보호를 받게 된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전국민적 촛불시위을 이명박 정부는 반미운동과 정치적 선동으로 몰고 갔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정치적 선동으로 몰고갔던 정부는 오늘도 미국이 전하는 '안전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국민에게 전달하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올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호주산을 앞지르며 국내시장 점유율 1위에 복귀했다고 한다. 청와대 시식회까지 연 이명박 정부의 노력이 이제서야 결실을 본 것일까? 그런데 정녕 이 쇠고기들이 안전할까? 정부가 발표하는 '안전하다'는 검사결과를 믿어도 좋은 것인지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씀, 김지향 옮김, 지식트리 펴냄, 2012년 8월, 1만4000원


덧붙이는 글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씀, 김지향 옮김, 지식트리 펴냄, 2012년 8월, 1만4000원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지식트리(조선북스), 2012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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