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이 여자의 '보따리'

[리뷰] 김수자 작가의' 숨결(To Breathe)' 전 국제갤러리 2관-3관에서 10월 10일까지

등록 2012.09.26 10:20수정 2012.09.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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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제갤러리 3관 전시장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수자 작가

국제갤러리 3관 전시장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수자 작가 ⓒ 김형순


국제갤러리 2관, 3관에서 10월 10일까지 김수자(1957-) 작가의 '숨결(To Breathe)' 전이 열린다. 그는 바느질을 스케치로, 이불보를 캔버스로, 보따리를 비디오로 보는 독특한 관점의 작가다. 이런 관점은 그의 장르에도 다각적으로 반영돼 이미지, 비디오, 오브제, 퍼포먼스, 설치미술, 다큐영상 등 그 폭이 넓고 깊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으로 2012년 6월 열린 그 권위를 자랑하는 '아트바젤' 중 영상이나 대형설치작품을 주로 다루는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에서 선보인 '실의 궤적' 시리즈 중 1편과 2편이 소개된다.


1957년 대구에서 출생한 김수자 작가는 홍익대와 파리국립미술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백남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작가로 서울과 파리, 뉴욕과 베를린을 주 무대로 활동해왔다. 그의 명성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다.

'보따리'로 21세기 노마드 정신 구현

a  김수자 I '김수자 보따리: 섬(Kimsooja Bottari: The Island)' Site specific 8 Bottari installation at Palazzo Fortuni Venice 2011. Courtesy Axel Vervoordt Foundation and Raffaella Cortese Gallery, Milan. Photos by Jean-Pierre Gabriel. Courtesy of Kimsooja Studio. 섬처럼 보이는 이 보따리 작업은 이우환의 작품도 연상시킨다

김수자 I '김수자 보따리: 섬(Kimsooja Bottari: The Island)' Site specific 8 Bottari installation at Palazzo Fortuni Venice 2011. Courtesy Axel Vervoordt Foundation and Raffaella Cortese Gallery, Milan. Photos by Jean-Pierre Gabriel. Courtesy of Kimsooja Studio. 섬처럼 보이는 이 보따리 작업은 이우환의 작품도 연상시킨다 ⓒ Kimsooja Studio


김수자 작가는 80년대에 처음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21세기미술에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다. 영어로도 그냥 보따리(Bottari)다. 요술방망이처럼 세상에 이처럼 용이하게 많은 걸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그렇게 보따리는 유목시대에 그 신속한 이동성과 유연성으로 우리의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보따리에 대한 그의 해석은 열려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TV도 보따리가 된다. TV는 실체가 있는 것을 실체가 없는 방식으로 싼 것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백남준의 직계후손이다.

그는 1997년부터 천 조각으로 꿰매 만든 이불보로 수백 개의 보따리를 만들어 트럭에 싣고 전국을 순회하는 퍼포먼스를 벌렸다. 이 순회는 유럽에까지 이어졌고 프랑스에서는 센 강, 바스티유 광장, 생 마르탱 운하, 성 베르나르 성당 등을 순회했다.


관념을 배제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몸 철학

a  김수자 I '바늘 여인(A Needle Woman)' 비디오작품. Performed and filmed in Paris 2009. Silent 25:00 min loop Commissioned by Nuit Blanche Paris 2009. Collection of Paris City Council, Courtesy of Kimsooja Studio

김수자 I '바늘 여인(A Needle Woman)' 비디오작품. Performed and filmed in Paris 2009. Silent 25:00 min loop Commissioned by Nuit Blanche Paris 2009. Collection of Paris City Council, Courtesy of Kimsooja Studio ⓒ Kimsooja Studio


김수자는 개념미술가지만 그렇다고 관념적이지는 않다. 그는 시대의 증언자로 유목민처럼 전 세계를 돌며 세상을 관찰한다. 그만큼 현장성에 충실하다는 뜻인데 그런 일상을 다큐영상에 담아 그만의 예술적 역량을 펼친다.


그는 자신의 몸을 카메라렌즈로 삼아 온 세계를 찍는다. 또한 남의 시선이 되어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걸 봐주고 들어주며 자비를 베푸는 관음보살 같다. 몸을 근간이듯 그의 예술에서 집과 옷이 또한 중요하다. 이번 신작도 직조와 건축이 그 주제이다.

몸 철학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이후 '플럭서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이 운동의 주동자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출현시킨 관념주의를 배격하고 몸을 중시한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1908-1961)는 "나는 나의 몸이다(Je suis mon corps)"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몸이 최고의 지성이라는 뜻이리라.

세계 곳곳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연대

a  김수자 I '뭄바이 빨래터(Mumbai-A Laundry Field)' Installation at Continua Gallery Beijing 2008 view project details Photos by Oak Taylor Smith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김수자 I '뭄바이 빨래터(Mumbai-A Laundry Field)' Installation at Continua Gallery Beijing 2008 view project details Photos by Oak Taylor Smith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 Kimsooja Studio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2관(2층)부터 작품을 감상해보자. '뭄바이 빨래터'는 김수자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담겨 있다. 그는 2007-2008년 인도의 슬럼가 뭄바이에 방문해서 본 풍경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

위 작품은 인도인이 출근하는 모습이다. 기차가 항상 만원이라 목숨을 걸고 기차 위를 올라가거나 짐짝처럼 매달려 가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새벽부터 분주한 슬럼가의 밑바닥 삶 속에서 손빨래를 해주며 먹고사는 이들을 여과 없이 노출시켜 관객에게 사유와 성찰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는 역시 작가다. 이런 처참한 장면을 보고도 거기에서 영감을 얻고 빈곤이 주는 풍성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한다. 여기서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들은 가난한지 등을 묻는다.

대승적 차원의 휴머니즘

a  김수자 I '보따리-알파해변(Bottari-Alfa Beach)'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6:18 loop silent 2001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김수자 I '보따리-알파해변(Bottari-Alfa Beach)'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6:18 loop silent 2001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 Kukje Gallery


이번에는 2관(2층)과 비슷한 맥락의 2관(1층) 작품을 보자. 2001년에 발표한 이 작품의 제목은 '보따리-알파해변'이다. 이는 노예무역으로 유명한 나이지리아 알파해변을 찍은 것으로 관객에게 야만적 서구역사의 치부를 그대로 폭로한다.

하늘과 바다를 뒤집어놓은 건 역시 현대문명의 전도된 가치를 보여주면서 서구인이 간과한 역사의 과오를 꼬집는다. 김 작가는 여기서 보는 수평선을 가장 슬픈 선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대승적이다.

그는 이를 질책하거나 이에 분노하기보단 이런 영상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인간의 대한 존엄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더 큰 공감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여기에 그 어떤 비관주의나 냉소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노동이 축제가 되는 신령한 영상미 연출

a  김수자 I '실의 궤적-1편(Thread Routes-Chapter 1)'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9:31 minutes sound 2010 페루의 전통적 실 짜기를 보여주는 장면

김수자 I '실의 궤적-1편(Thread Routes-Chapter 1)'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9:31 minutes sound 2010 페루의 전통적 실 짜기를 보여주는 장면 ⓒ 김형순


이번엔 3관으로 옮겨가보자. '실의 궤적 1편-2편'이라는 제목이 붙은 16mm 필름으로 만든 신작이다. 이 영상은 오랜 각고 끝에 실타래와 건물에 인간의 혼을 불어넣어 직조와 건축을 완성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에 인류학적 관점과 장소 특정적 요소도 가미되어 퍽 인상적이다.

위 작품은 페루 쿠스코에 위치한 성스러운 계곡에서부터 마추픽추와 타킬레 섬마을에 이루는 산악지역에서 행해지는 전통적 실 짜기를 보여준 것으로 단순한 몸짓이 반복됨에도 지루하지 않고 신령한 영상미를 연출한다. 노동과 놀이의 구별이 없어 일이 축제가 되니 힘든 일상도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직조도 건축도 일종의 통합적 꿰매기

a  김수자 I '실의 궤적-2편(Thread Routes-Chapter 2)'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3:40 minutes sound 2011 영상 중 레이스를 짜는 장면

김수자 I '실의 궤적-2편(Thread Routes-Chapter 2)'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3:40 minutes sound 2011 영상 중 레이스를 짜는 장면 ⓒ 김형순


a  김수자 I '실의 궤적-2편(Thread Routes-Chapter 2)'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3:40 minutes sound 2011 영상 중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장면

김수자 I '실의 궤적-2편(Thread Routes-Chapter 2)'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3:40 minutes sound 2011 영상 중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장면 ⓒ 김형순


위 첫 장면은 벨기에 등에서 레이스를 짜는 전반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서 유명 성당과 궁전 등 건축물이 나오는데 이 영상을 보면 건축이란 레이스 짜기와 다르지 않다. 에펠탑이 철로 꿰맨 것이듯 건축도 결국은 돌 등 재료를 한데 엮어 꿰맨 것이다.

다만 레이스 뜨기는 여성적이고 건축은 남성적일 뿐이다. 그리고 건축양식과 직조무늬에서 유사성을 보여 흥미롭다. 여기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봉합의 행위는 작가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로 다른 문화의 융합하고 보다 바람직한 인류공존을 염원이 있음을 보인다.

보따리, 세계미술의 화두로 재탄생하다

a  김수자 I '실의 궤적-2편(Thread Routes-Chapter 2)'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3:40 minutes sound 2011 영상 중 김수자의 화두인 보따리와 꿰매기를 연상시키는 장면

김수자 I '실의 궤적-2편(Thread Routes-Chapter 2)'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Duration 23:40 minutes sound 2011 영상 중 김수자의 화두인 보따리와 꿰매기를 연상시키는 장면 ⓒ 김형순


김수자 작가는 초기부터 최근까지 세상의 상처를 바늘로 꿰매고 이를 보따리에 싸 생명의 '숨결(To Breathe)'을 넣어주는 게 그의 일관된 주제다.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바늘은 상처도 주지만 치유의 도구가 되는 양면성이 있다"며 "자신의 작업이 치유의 의례, 생명을 주는 숨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결론으로 그는 지구촌 곳곳에서 돌아다니며 보게 되는 난민, 분쟁, 이념의 충돌 등 우리시대의 쟁점을 한데 꿰매어 이를 치유하고 그런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며 동서의 소통과 화합을 시도한다. 이런 미학은 그의 보따리에 실려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런 힘은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80년대 어머니와 이불을 함께 꿰매다가 바늘 끝이 이불보에 닿는 순간 짜릿하게 느낀 우주적 에너지"에서 얻은 것이리라. 보따리가 이렇게 세계를 감동시키는 예술적 화두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덧붙이는 글 작가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 김수자 홈페이지 www.kimsooja.com (kimsooja studio)
국제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59-1 www.kukjegallery.com 02)735-8449
#김수자 #보따리 #노마드 #몸 철학 #글로벌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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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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