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고 분해요!

여순사건현장을 찾은 중학생들의 역사바로알기

등록 2012.10.09 11:46수정 2012.10.0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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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수시내에서 만성리로 향하는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여순사건희생자 위령비가 나온다. 역사학자 주철희씨의 설명을 듣는 학생들..

여수시내에서 만성리로 향하는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여순사건희생자 위령비가 나온다. 역사학자 주철희씨의 설명을 듣는 학생들.. ⓒ 오문수


지난 6일. 여수넷통에서 주최한 '여수시내 중학생 대상 여순사건 역사 탐방' 행사가 열렸다. 진행은 현대사와 국가폭력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주철희씨가 맡았다.

중간고사를 목전에 앞둔 시기라 소수의 학생들만 참여했지만 참여 학생들의 열기는 누구보다 높았다. 여순사건의 최초 발상지에 도착한 학생들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따라 나섰다. 여순사건의 시발점인 14연대 주둔지를 찾은 학생들은 별 감흥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니 당연할 수밖에.

현장에는 높이 7~8미터 언덕아래 2미터 정도의 인공동굴이 보인다. 동굴은 일본군 무기고다. 일본제국주의 시대 일본군이 주둔했던 이곳은 주둔지 뒤편을 구봉산이 둘러싸고 있고 바다가 인접해 군대가 주둔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주철희씨가  학생들 앞에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여순사건의 개요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나라가 언제 독립했지?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했지?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차이는 뭘까?"라고 질문해도 잘 모른다. 아직 중학생이라서 일까?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던 선생님이 이데올로기에 대해 설명하니 이해가 잘 안될 수밖에. 주철희씨가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쉬운 내용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를 들은 후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진지를 직접 답사했다. 깜깜한 동굴내부는 U자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처럼 파여 있다. 금방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현장 분위기에 학생들이 심각해졌다.

a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비행장이 있었던 여수 신월동 해변. 파도에 부서지고 쓰레기가 널려 있어 안타깝다. 독도를 또 다시 넘보는 일본을 상기시키기 위해 후손들의 교육장으로 보전하면 어떨까?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비행장이 있었던 여수 신월동 해변. 파도에 부서지고 쓰레기가 널려 있어 안타깝다. 독도를 또 다시 넘보는 일본을 상기시키기 위해 후손들의 교육장으로 보전하면 어떨까? ⓒ 오문수


동굴진지 답사를 마친 일행이 두 번째 방문한 곳은 일제가 해변에 만들었다는 비행장이다. 무너지고 깨어진 비행장 시멘트 위에는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보전하고 길이 기념해야 하지만 아픈 역사도 역사다. 일제가 또 다시 독도를 넘보는 이때 후손들을 위해 교육현장으로 보전해야 하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고 떠난 이곳을 이어 받은 것은 국군 제14연대다. 64년 전인 1948년 10월 20일은 14연대 군인들에게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날이다.


제주로 출동하기 하루전인 10월 19일 밤 8시. 경찰타도, 제주도 출동거부, 남북통일 등의 슬로건을 내세운 반란군들은 장교들을 사살하고 시내로 진출한다. 군인들과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일부 시민들과 합세한 이들은 순천과 보성, 벌교로 진출하고 지리산으로 입산한다. 비극인 여순사건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a  오래되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간판을 보며 여순사건 당시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는 주철희씨와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오래되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간판을 보며 여순사건 당시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는 주철희씨와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오문수


여순사건이 진압된 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약 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반군들이 준 신발을 얻어 신었다는 죄목으로, 군용팬티를 입었다는 죄로, 머리가 짧았다는 죄로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즉결처분됐다.


학생들은 만성리로 가는 터널을 거쳐 여순사건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에서 묵념을 하고 형제묘로 향했다. 형제묘는 학살당한 후 시신을 알아볼 수 없자 유족들이 시신 125위를 합장하여 죽어서라도 함께 있으라고 이름 붙인 곳이다.  

"역사를 모르면 그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됩니다. 그래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해야합니다"라며 설명을 마친 주철희씨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동행했던 최귀숙씨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질곡에 빠져 헤매야죠? 왜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가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면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a  학살당한 후 시신을 알아볼 수 없자 유족들이 시신 125위를 합장하여 죽어서라도 함께 있으라고 이름 붙인 '형제묘'

학살당한 후 시신을 알아볼 수 없자 유족들이 시신 125위를 합장하여 죽어서라도 함께 있으라고 이름 붙인 '형제묘' ⓒ 오문수


탐방단으로 참가했던 학생들에게 소감을 들었다.

"평소 아무생각 없이 이 길을 다녔는데 이렇게 아픈 역사가 숨어 있었네요. 안타까워요. 무섭기도 하고 분해요. 내가 다니는 학교 바로 아래인 중앙초등학교에서 60년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

소풍차림으로 가볍게 탐방을 나온 학생들의 얼굴이 심각해지며 옷깃을 여민다. 과거의 역사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탐방을 통해 왜 역사공부가 중요한지를 알았다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미덥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현장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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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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