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안에 있다고 다 내 것일까

'강화나들길'을 걷다가 얻은 내 것과 너의 것

등록 2012.10.23 10:02수정 2012.10.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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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다. 들 한가운데로 난 길에는 햇빛을 피할 마땅한 곳도 하나 없다. 그러니 부지런히 걸어서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아무리 길이 좋아 나선 걸음이지만 이 햇살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그래서 해를 가리기 위해 양산을 펴서 들고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카프로 얼굴을 칭칭 가린 이도 있다. 챙이 넓은 큼직한 모자를 눌러쓴 이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마스크까지 하고 있다. '강화나들길'을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다.

예닐곱 명이 같이 길을 걷는데도 서너 무리로 나누어져 걷는다. 제 혼자 앞서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정담을 나누며 걷는 이도 있다. 또 셋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이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걷는 속도가 달라서 이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홀로 또는 무리를 지어 걷는 것이다.

a  '강화나들길'을 걷는 사람들. 
홀로 또는 친구와 함께 걷노라면 길은 어느새 내 속으로 들어와 있다.

'강화나들길'을 걷는 사람들. 홀로 또는 친구와 함께 걷노라면 길은 어느새 내 속으로 들어와 있다. ⓒ 문희일


차바퀴에 깔려 죽은 뱀, 길섶으로 옮겨주다

앞서 걸어가던 이가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이의 눈길이 가있는 곳을 따라가 보니 길바닥에 뱀이 한 마리 죽어 있었다. 엄지손가락 정도 굵기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뱀이었다. 들판 속에 난 농로라서 차가 잘 다니지도 않는데, 어떡하다 횡액을 당했을까.

그냥 놔두면 지나가는 차바퀴에 계속 깔릴 것이다. 그렇다고 길 밖으로 옮겨주자니 마땅히 뱀을 집어서 올릴 도구도 없다. 근처를 살피던 일행 중 한 명이 나뭇잎을 몇 장 따서 뱀을 감싸 들어올린다. 그런데 뱀 비늘이 미끄러워서 그런지 그만 뱀이 미끄러져 내렸다. 이미 죽은 뱀인데도 섬찍했다. 뱀을 옮겨주려고 했던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이는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고 살며시 뱀을 잡아 올려서 길 가 한쪽으로 옮겨주었다.


가을이 되면 잘 보이지 않던 뱀들이 더러 눈에 뜨인다. 짧아져만 가는 가을 해가 뱀을 그렇게 조심성이 없도록 만든 것일까. 서로 사는 영역이 달라 부딪힐 일이 별로 없는데 가을이 되면 시골에서는 뱀과 마주칠 때가 더러 있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느라 동분서주하다보니 뱀은 사람의 눈에 뜨이는 것이다.

가을이면 우리 집 잔디마당에도 뱀이 나타나고는 했다. 마당 한 쪽 끝에 있는 연못의 개구리들을 찾아서 뱀이 온 것일 터이다. 뱀이 보이면 내쫓기 바빴다. 긴 막대기로 뱀을 들어 올려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또 막대기로 땅을 탕탕 치면서 빨리 네가 사는 곳으로 가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면 뱀은 슬며시 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연못에서 사는 개구리들은 보기 좋은 그림의 일부라 생각하며 마음에 담아두면서 왜 뱀은 그렇게 야멸치게 내쫒은 걸까. 내 집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다 나와 상관이 있는 것인데 이처럼 좋고 나쁘고 패를 갈랐다. 연못이 내 것이라면 그 곳에 깃들어 사는 개구리도 나에게 속한 것일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뱀 또한 나와 상관이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뱀은 얼씬도 못하게 겁을 주면서 개구리는 그냥 두었으니. 뱀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개구리 역시 마찬가지 일 텐데 말이다.

a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강화나들길'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강화나들길' ⓒ 문희일


내 것이기도 하고 너의 것이기도 하다

잔디마당도 연못도 내 집 울타리 안에 있으니 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생물들도 다 내 것일 터이다. 새끼 때부터 키웠던 삽살개도 내 것이고 작년 봄에 부화를 한 토종닭들도 다 내 것일 터이다. 그러면 개구리며 거미 그리고 땅 속에 사는 지렁이도 내 것일까. 청하지 않았는데도 가을이면 찾아오는 뱀은 또 어떠할까. 모기며 파리는 또 어떠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까지 과연 다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울타리 안은 다 내 것이라고 여기며 산다. 그래서 담장을 쌓고 울타리를 친다. 그것도 모자라 문을 해달고 자물쇠까지 채우기도 한다. 울타리 안은 다 내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곳을 지나가는 바람도 내 것일 터이고 햇빛이며 비, 또 이슬과 냄새까지도 다 내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 곳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체들 역시 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물들을 그리 말할 수는 없다. 또 생물과 무생물 역시 그렇게 묶을 수는 없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이라고 할 것은 없다. 그저 잠시 소용이 닿아서 내가 이용하고 있을 뿐 원래 내 것은 없는 것이다.

잔디마당도 연못도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구리의 것이기도 하고 또 뱀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람이며 햇빛이며 구름이 놀다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당에서 또 뱀을 만나게 되면 이리 말해줘야겠다. '여기는 내가 사는 곳이지만 네가 와도 괜찮은 곳이야. 그렇지만 네가 사는 곳으로 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강화나들길 #나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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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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