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에선 집사지만, 에코는 주연인 남자

[인터뷰] 단역 배우 서승원... 영화 <에코 백! 길에서 길을 묻다> 그리고 에코

등록 2013.03.02 12:08수정 2013.03.0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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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일 오후 9시 2분]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기 전 추진했던 것이 한반도 대운하였다. 물길을 이어 배가 다니면 대한민국이 부강해 진다는 것으로,  MB는 '충주는 항구다'라는 식으로 가는 곳 마다 내륙 항구를 주창했다. 2007년 대선직후 이재오 의원 등 MB측근들은 '이명박 당선이 곧 대운하 찬성'이라면서 정권 인수위원회에 대운하 테스크 포스 팀을 꾸려 그대로 밀어 붙이려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 시민들도 열의 일곱은 대운하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봤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물·하천센터 국장이었던 내게 자신이 한나라당 당원으로 대선에서 MB를 찍었지만, 대운하는 말도 안 되는 구상이라며 꼭 막아야 한다며 전화를 걸어온 이도 여럿 있었다. 그때 자신을 영화배우라고 소개하면서 대운하 반대 1인 시위라도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영상 제작 및 편집도 가능하다면서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한다. 그가 바로 영화배우 서승원 씨(41)이다.

a 영화 배우 서승원 출연작 왼쪽부터 깡패열전, 사마리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영화 배우 서승원 출연작 왼쪽부터 깡패열전, 사마리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깡패열전, 사마리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지난 2월 22일 세종문화회관 뒤편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환경단체 상근 활동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에서 에코적 삶을 사는 이들에게 삶의 길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만남을 요청했는데, 그는 흔쾌히 동의하면서 자리에 나왔다. 이 자리에는 한국 DMZ 생명평화 동산 김호영 이사도 함께했다. 나는 영화배우 서승원의 삶에 대해 듣고 싶었다. 알려진 배우가 아니면 기본적 생계유지도 어려운 한국 영화계의 현실에서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4대강, 비양도 케이블카, 강정 해군기지 등 사회 현실에 참여했던 그의 뜻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배우 서승원은 조연, 단역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고 있다. 그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마리아 (2004년)>를 시작으로 <달마야 서울 가자 (2004년)>, <왕의 남자 (2005)>, <아라 허동구 (2006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 <신기전 (2008년)>, <님은 먼 곳에  (2008)>,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09년)>, <친정엄마 (2010년)>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2011년)>와 <너라서 좋아 (2012년)> 등에도 출연했고, 애니메이션 <마당 나온 암탉 (2011년)>에서는 '부엉이'와 '대장오리' 등 성우 연기까지 했다.

그의 첫 작품인 <사마리아>에서 그는 여주인공 여진(곽지민 분)에게 추근대는 건달로 45초 동안 나온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 놈, 놈)>에서 그는 '나쁜 놈(이병헌 분)'의 마적 부하 3으로 만주벌판을 가로지르는 제국 열차 안에서 '좋은 놈 (정우성 분)'에게 총에 맞아 죽는 역할로 나온다. (정확히 15분~16분 사이에 등장한다) 이어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주인집 양반에게서 공길(이준기 분)을 빼앗아 도망치는 장생(감우성 분) 일행을 잡으려는 집사로 등장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 그를 알아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로서 빠지지 않는 외모를 감추는 분장 탓도 있지만, 대부분 잠깐 나오는 조연이 많기에 말이다. 그에게 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물었다. 그는 "영화가 제일 즐거웠어요" 라면서 답했다. "전문대 야간을 7년 만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때우다 해외 영화제에 한국 영화 소식을 전하는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 일하게 됐어요. 그 때가 서른 살이었는데,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배우 일자리를 알아 봤죠"라고 한다. 대여섯 살에 TV에서 나온 영화 대사를 따라할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사마리아> 출연료로 20만 원을 받았고, 1분 넘게 등장한 <놈, 놈, 놈>에서는 출연료로 30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수애가 월남전 위문공연 가수 써니로 분해 남편을 찾아 간다는 내용의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그는 수애 옆에서 춤추는 역을 맡았다. 그 때 출연료는 보름 동안 태국을 여행한 비용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놈, 놈, 놈> 같은 거금의 출연료는 고작 1년~2년에 1편정도 뿐이고, 6~7년을 하루 1만 원을 받고 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생계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드라마 출연료가 1회당 20만 원 정도라고 하지만, 그 역시 단역이라 출연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 열정은 지치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처럼 좋은 영화는 출연료 만 원만 해도 찍고 싶어요"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의 영화 열정은 직접 영화까지 만들게 했다. 2010년 감독, 촬영, 음악, 편집, 주연까지 맡아 35분짜리 단편 독립 영화 <깡패열전>가 바로 그의 작품. 영화의 흥행여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5년 전 4대강 반대 1인 시위였고, 두 번째는 광화문에서 벌인 제주 해군기지 반대 1인 시위였다. 1인 시위를 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시선 처리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일반인은 보통 굳은 얼굴로 특정 지점을 바라보면서 서 있기 마련인데, 배우의 1인 시위는 확실히 달랐다. 자신 있는 표정과 눈빛, 몸짓에 지나는 이들이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었다.

a 강정해군기지 반대 1인 시위 지난 2010년 배우 서승원 씨가 광화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장면

강정해군기지 반대 1인 시위 지난 2010년 배우 서승원 씨가 광화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장면 ⓒ 한숙영


그에게 환경은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보다 근본적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30여 년 전에 요크셔테리어종 강아지를 데려왔는데, 거의 제가 키우다 시피 했어요. 한 4~5년 같이 살다보니 개가 개로 보이지 않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환경에 대한 예민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어느 회사 광고에서 부탄가스를 1억 개 생산했다고 나오는데, 그 말은 그만큼 가스를 지구에서 뽑아냈다는 거잖아요. 당장 캔을 완전히 자연으로 돌리는 방법도 없는데 말이죠" 라고 하면서 "'자동차 수 십만 대 생산'이란 광고를 보니, 제 목에 칼이 바로 들어오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다른 생명들도 저만큼 존엄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라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눈물과 죽기 직전 사형수의 눈물은 다르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생명에 대한 그의 인식은 제주도의 개발 소식이 나올 때마다 그를 전정 긍긍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내의 고향이 제주도인 탓도 있는 듯 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보면 제주도는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지만, 세계적인 풍광을 가졌어요"라면서 "거기에는 천사들만 살고 있는 줄 알았어요"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는 제주 비양도 케이블카 설치 논란이 있었던 2010년에는 수원역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포토샵으로 케이블카가 설치돼 경관을 망쳐버린 비양도의 모습도 그려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광화문과 람스르 총회 현장 등에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a 비양도 케이블카 반대 2008년 배우 서승원 씨의 제주도 비양도 케이블카 반대 1인시위

비양도 케이블카 반대 2008년 배우 서승원 씨의 제주도 비양도 케이블카 반대 1인시위 ⓒ 서승원


그는 작년 조근현 감독의 영화 <26년>는 자신의 프로필을 4~5차례 낼 만큼 꼭 하고 싶었던 영화였다고 한다. 그가 좋아하는 장르여서 만은 아니다. 그는 "5·18을 생각하면 여전히 피가 끓어요"라면서 "5.18 노래 아시죠?"라며 내게 물으며 "5.18 광주민주항쟁과 제주 4.3사건을 우리 사회의 짐"이라 표현했다. 이어 MB 정권에서 일어난 용산사태, 제주 강정 등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지난 2월 배우 서승원은 SBS <물은 생명이다> 프로그램에서 영화배우이자 환경지킴이로 국립공원 무등산과 지리산 생태 기행에 참여했다. 그는 "무등산은 900미터 고지까지 버스가 들어오고, 미사일 기지, 케이블카 추진으로 생태계 훼손이 될 것으로 보여 갑갑해요"라고 말했다. 지리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댐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에 매우 황당해 했다. 그러면서 "지리산 댐을 추진하는 분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텐데, 조직에 들어가면 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지를 생각하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18개월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 서승원 배우는 아빠 노릇을 못하고 있다며 미안해한다. 그는 강정 기사를 볼 때마다 '욱' 하는 심정이 솟지만, 가족을 챙겨야 하는 상황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싸우는 이들에게 더더욱 미안해했다. 그런 그에게 "아이를 키우면 세상의 지혜가 보인다"는 김호영 이사의 말은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두 시간 동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영화 얘기를 할 때는 매우 밝았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 만들었다. 이어 에코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때는 매우 진지해졌다. 나는 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연이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는 배우가 대형 스크린에 자주 비췄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지난 MB 5년을 거치면서 어느새 우리 사회는 에코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나는 에코를 단지 '환경'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 상식이자, 이성, 그리고 생명, 생태가 포함된 것이 '에코'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승원 배우는 영화에서는 단역이지만,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에코적 관점에서는 결코 단역이 아님을 느낀다. 이런 이들이 많아 질 때 다시 에코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에코 백! 길에서 길을 묻다>는 지구인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내가' 또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여쭈고자 합니다. 에코 백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째는 'ECO Back'이란 의미입니다. MB 정부의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은 우리 사회이 상식과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법률을 생명을 파괴하는데 용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다시 돌리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ECO 白'입니다. 우리 주변의 에코를 이야기 하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ECO 百'으로 우리 주위의 에코人 100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의미입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러그에도 올립니다.
#서승원 #강정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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