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진열된 뱀술통... 살아 있는 거 아냐?

[일본 가는 길 102] 오키나와 나하 고쿠사이도리 기행

등록 2013.06.12 21:18수정 2013.06.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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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제주도를 지나 태평양의 바다 위를 한 시간 남짓 날았다. 비행기는 일본 서남단에 자리한 오키나와(沖繩)를 향하고 있었다. 비행기 아래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겠지만 비행기 차창 밖에는 눈이 시리도록 진한 푸른 하늘 아래에 뭉게구름이 잔뜩 쌓여 있다. 비행기 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저 낮은 구름 아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 비행기는 조용히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오키나와 수도인 나하(那覇)의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할 정도로 시골공항같이 아담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만난 오키나와의 공기는 시원했다. 날씨는 우려했던 것만큼 덥지는 않고 오히려 서울보다 시원했다. 아마도 바닷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아내는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수평선이 아름다운 바닷가가 지나자 나하 시내가 나오기 시작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본 나하 시내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다. 다른 일본 도시와 비슷하면서도 묘한 남국의 정취를 풍기고 있다. 최근에 일본여행을 많이 경험한 아내는 이제 일본의 도시가 편안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우리는 '나하의 명동'이라는 고쿠사이도리(國際通り)에 자리한 숙소에 짐을 풀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a 고쿠사이도리 태평양 전쟁 이후에 복구된 기적의 1마일이다.

고쿠사이도리 태평양 전쟁 이후에 복구된 기적의 1마일이다. ⓒ 노시경


고쿠사이도리는 이름 그대로 '국제'적인 거리이며 오키나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오키나와에 여행 온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들를 수밖에 없는 거리이다. 현청(県庁) 앞에서 아사토(安里)까지 동서로 이어지는 이 다운타운에는 기념품 가게, 특산물 가게, 전통 먹거리 가게, 옷가게, 백화점 등이 밀집해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미군과의 지상전이 벌어지면서 오키나와는 초토화 되었고 당시 이 일대도 폐허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 이 일대는 완전히 다 타버린 들판이었다. 전후 미국이 지배하면서 이 거리 일대를 대대적으로 복구하였고, 이 1.6km의 거리는 '기적의 1마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거리에는 화려한 원색의 꽃무늬 셔츠와 원피스를 입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외국 여행자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 거리는 독특한 이국적 풍취를 풍기는데, 서울의 이태원과 너무나 닮아 있다. 고쿠사이도리나 이태원이나 미군을 상대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거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키나와 부흥을 이끈 거리이기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거리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a 시사 악령을 막아주는 시사가 술을 한잔 하고 있다.

시사 악령을 막아주는 시사가 술을 한잔 하고 있다. ⓒ 노시경


고쿠사이도리는 가볍게 산책만 해도 오키나와의 다양한 특산물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자세와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시사(シーサー)'는 이 거리의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전설의 동물 '시사'는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같이 마을을 위협하는 악령을 막아주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겉모습이 사자같이 생긴 '시사'는 일본어로 사자를 말하는 '시시'의 오키나와식 방언이다. 최근에는 '시사'의 얼굴을 귀여운 만화 캐릭터같이 만들어서 파는 가게들이 많은데 고쿠사이도리에는 이 '시사' 캐릭터 천지이다. 술집이 많은 고쿠사이도리이기에 술집 앞에 자리를 잡은 '시사'는 술을 한잔 하고 있다.

a 오키나와 전통식당 오키나와 전통무용을 즐기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오키나와 전통식당 오키나와 전통무용을 즐기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 노시경


가게들의 광고판을 보면 저녁에 생음악과 오키나와 민속무용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는 전통식당도 많다. 미국의 영향으로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들도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고쿠사이도리를 걷다가 나와 아내가 가장 놀란 것은 거리에 자랑스럽게 진열된 수많은 뱀술, 하부주(ハブ酒)이다. 오키나와 쌀로 만든 증류주인 아와모리(泡盛)를 파는 가게 안을 보면 몸통이 굵직한 뱀들이 투명한 술통에 담겨서 사람들을 보고 있다. 마치 실험실의 알코올 속에 오키나와에서 많이 자라는 뱀을 표본 처리해 놓은 것같이 보인다.

a 뱀술 고쿠사이도리에는 오키나와 전통의 뱀술을 파는 가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뱀술 고쿠사이도리에는 오키나와 전통의 뱀술을 파는 가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 노시경


뱀술이 너무나 많이 진열되어 있는데다가 술 속에 담긴 이 뱀들은 모두 살아 있는 듯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싱싱한 뱀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자극적인 연출이다. 정력을 챙기는 뱀술 마니아들이 보면 상당히 좋아할 만한 모습이다. 오키나와에도 뱀술 애호가들이 많은 것을 보면 몸에 좋다는 것은 가리지 않고 먹는 습성이 우리와 매우 닮아 보인다.

a 소바가게 밀가루로 만드는 오키나와 소바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소바가게 밀가루로 만드는 오키나와 소바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 노시경


우리는 오키나와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기 전에 일본의 대표적인 장수촌 음식으로 이름을 날렸던 오키나와의 건강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나는 아내와 고쿠사이도리 한 중앙의 소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점심시간을 지난 시간이라서 식당을 찾은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유명한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를 먼저 먹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식당의 음식 사진에서 보니 '소바'라고 적힌 음식이 마치 우동처럼 보였다. 나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잠시 헷갈렸는데, 오키나와의 '소바'는 우리나라나 일본 본토에서 말하는 메밀로 만든 국수가 아니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오키나와에서는 메밀이 재배되지 않기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면을 끓여서 만든 국수요리를 '오키나와 소바'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본 본토 사람들은 이 소바는 소바가 아니라며 굳이 이 오키나와의 국수를 '오키나와 소바'라고 부른다. 일본 사람들도 오키나와 소바를 아주 독특한 지역 음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a 오키나와 소바 담백한 돼지고기와 밀가루면이 잘 어울린다.

오키나와 소바 담백한 돼지고기와 밀가루면이 잘 어울린다. ⓒ 노시경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 소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여 일본 본토의 우동, 소바(메밀국수), 라멘이 잘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오키나와 소바를 주문했다. 일본 본토 어디에서 먹은 것보다도 풍족스러울 정도의 많은 양이 그릇 안에 담겨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그렇듯 우선 국물 맛을 먼저 맛보았다. 맑은 육수에는 가다랑어인 가쓰오(かつお)와 돼지 사골인 돈코츠(どんこつ)를 섞어 만든 맛이다. 면발의 모습은 칼국수같이 생겼는데 라면같이 약간 꼬불꼬불하기도 하다. 먹어본 면발의 맛도 칼국수와 비슷하다. 면은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기보다는 잘게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면발 위에는 양념을 하여 큼지막하게 썰은 연한 돼지고기 한 점과 어묵 고명이 투박하게 얹혀 있다. 간단한 고명이지만 오키나와 소바의 유서 깊은 역사를 보여주는 고명이다. 오키나와 소바는 면 위에 얹은 고명에 따라 맛이 조금씩 바뀐다.

여러 번 삶은 돼지고기는 옛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를 가능하게 했던 고기 중의 하나인데 육질 자체가 아주 부드럽고 고소하다. 오키나와 전통의 아주 간단한 국수이지만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의 비율이 잘 어울린 훌륭한 장수 음식이다.

a 야끼소바 계속 먹으면 중독될 만큼 맛있는 튀김국수이다.

야끼소바 계속 먹으면 중독될 만큼 맛있는 튀김국수이다. ⓒ 노시경


야끼소바(焼きそば)는 일본의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볶음 우동이다. 삶은 국수와 어울린 고야(ゴーヤ) 등 다양한 야채에서는 쓴 맛이 나고 고기의 맛은 달달하다. 아내는 대중적인 야끼소바의 맛이 오키나와 소바보다 더 맛있다며 음식 선택에 성공했다고 좋아한다.

야끼소바는 처음에 먹으면 이게 무슨 맛인가 하다가도 자꾸 먹으면 그 맛에 중독되고 잘 질리지 않는 소바이다. 아무리 오키나와에서 유명하다는 오키나와 소바도 아내의 개인적 입맛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a 블루씰 아이스크림 가게 오키나와에 적응한 미국식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블루씰 아이스크림 가게 오키나와에 적응한 미국식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 노시경


우리는 식사의 후식도 고쿠사이도리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물 가게에서 맛보기로 했다. 우리가 짐을 푼 숙소 바로 옆에 오키나와를 대표하고 오키나와 어디에도 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인 '블루씰(Blue Seal Ice Cream)'이 있었다. 우리는 식사 후에 배가 불렀지만 오키나와 특산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자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미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미국식 아이스크림을 오키나와식으로 만든 것이 이 블루씰 아이스크림이다.

a 블루씰 아이스크림 자색 고구마 아이스크림이 별미이다.

블루씰 아이스크림 자색 고구마 아이스크림이 별미이다. ⓒ 노시경


오키나와 특산 아이스크림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특히 자색 고구마인 베니이모(Beni-imo)와 망고, 사탕수수 아이스크림이 인기가 많다. 나는 오키나와 특산물을 대표하는 자색 고구마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맛이 진하면서도 심하게 달지는 않아서 질리지 않는다. 오키나와 여행을 하면서 계속 사먹을 수 있을 만한 맛인데 역시 유명세가 있는 먹거리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a 아이스크림 가게 오키나와의 여중생들이 한가하게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 오키나와의 여중생들이 한가하게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있다. ⓒ 노시경


가게 안에는 여중생으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두 학생이 낮 시간에 자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나와 아내는 꼭 수업시간 빼 먹고 이런 데 와서 노는 학생들이 있다며 웃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너무나 여유 있게 앉아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보니 몇 명의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가게 밖에서도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이 학생들이 일본 각지에서 나하로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온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웃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오키나와도 식후경이다. 고쿠사이도리의 맛집 기행을 계획대로 성공리에 마친 우리는 나하의 시내로 다시 나섰다. 고쿠사이 거리에는 온갖 다양한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오키나와의 거리를 즐기고 있었다. 고쿠사이도리는 일본 학생들의 모든 다양한 교복을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나하 시내의 고쿠사이도리를 걸었다. 아열대 지방의 따사로운 햇빛이 우리가 걷는 앞길을 계속 비추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5월 20~23일에 한 일본 오키나와 여행의 기록입니다.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일본여행 #오키나와 #나하 #고쿠사이도리 #오키나와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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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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