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도 내 안으로 떠나는 여행이더군요"

[인터뷰] 인도에서 10년 간 여행을 하고 온 작가 주종원

등록 2013.11.10 14:44수정 2013.11.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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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자라서 결국 떠났습니다. 네팔과 인도를 떠돌다가 젊은 시절 한때 갠지스 강이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정착했습니다. '라가카페'라는 여행자 쉼터를 만들어 그 곳을 베이스 캠프 삼아 시간 나는대로 동남아, 터키를 두루 다녔습니다. 길을 찾아 길을 떠났다가 길 위에 잠시 집을 짓고 머물렀던 셈이지요. 그렇게 10년을 떠돌았습니다. 도중에 여행가이드북 <프렌즈 터키>와 <프렌즈 인도-네팔>편을 펴내며 여행작가가 됐습니다. 지난 11월 초, 지금은 춘천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있는 주종원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 기자 말


a 인도 바라나시의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바라나시에서의 아이들은 참으로 순수했다. 
사진 제공: 주종원

인도 바라나시의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바라나시에서의 아이들은 참으로 순수했다. 사진 제공: 주종원 ⓒ 김재용


최근에는 유랑형이 아닌 정주형 여행 책들이 주목받고 있다. 힐링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여행을 힐링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상적인 여행 에세이 대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 에세이나, 세계 일주 대신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책들이 인기를 끈다. 여행을 통해 삶의 변화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다.

주종원 작가는 전형적인 정주형 여행자이다. 그래서 그가 펴내는 책은 여행 에세이보다 정통 가이드북이다. 그 책에는 해당 지역에 가기 위한 실제적인 여행 준비와 현지에 도착해서 시내까지 가는 방법, 숙박지, 맛집, 시내관광과 교통편, 유적지 정보, 현지에서 지켜야할 문화와 여행자로서 주의사항 등을 상세히 담았다. 독자들은 그의 가이드북을 보면 그 곳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깊이 여행하고 싶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낯선 환경에서 혼자가 되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는데, 여행을 다니며 제가 경험한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가이드북을 쓰게 되면서 여행작가가 되어버렸네요."

여행하며 글도 쓰니 낭만적이고 편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야 하고, 모든 유적지를 일일이 대중교통으로 방문해야 하고 밤에는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해야 하니까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죠. "


그의 여행은 두 발로 구석구석 현장을 누비고, 때론 정착해서 사는 여행이었다. 삶과 경험이 일치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내면은 풍요로웠다.

강원도 토박이, 인도로 떠나다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서 농사짓고 여행 경험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 강릉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았으니 그는 강원도 '감자바우'인 셈이다. 여행을 위해 외국으로 다닌 것 외에는 강원도를 떠나는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여행이 너무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세계지도를 펴 놓고 가고 싶은 나라를 꼽아 보았다. 그렇게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음 속에 그렸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어디론가 떠나는 게 좋았어요. 혼자 있는 게 좋았고 길을 나서서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산수에는 영 소질이 없었는데 국어를 그렇게 좋아했다. 시와 소설같은 문학도 좋았고 문법시간도 재미있었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망설임없이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서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오랜 꿈을 이룬 거지요. 남들은 힘들고 불편하다고 하는 인도가 저는 좋았고 졸업하고 인도 전문 여행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

처음엔 좋았다. 자신의 여행 경험을 살려서 인도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인도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몇년 여행사에 다니다 보니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행이고 뭐고 직장인으로 그저 그렇게 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네팔로 떠났습니다. 일 저지른 거지요(웃음)."

a  여행가이드 작가인 주종원.

여행가이드 작가인 주종원. ⓒ 주종원


육 개월여 네팔과 인도를 떠돌다가 젊은 시절 한때를 인도에서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정착했다. 현지 대학교에 등록하고 인도어를 배웠다. '라가카페'라는 여행자 쉼터도 만들었다.

"라면과 김밥을 팔고 여행정보를 제공하고 제 힘 닿는 한 여행자들의 불편을 해결해 주려고 했죠. 라가카페에 살면서 시간 나는 대로 동남아, 터키를 두루 다녔고요."

터키 가이드북 초판 취재 여행 때였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시골에 있는 유적지를 찾아 먼 거리를 걷다가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적지를 관리하시는 분이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제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차와 음식을 내 주시더군요. 일도 잘 풀리지 않아 너무나 고생스러웠는데 눈물 나도록 감사했습니다."

그저 스쳐가는 이방인일 뿐인데 가족 같은 정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래킹을 할 때 여행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다리와 배낭에 의지해 웅장한 설산을 걸으며 '길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전교조 운동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해직됐다. 따르던 선생님들이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게 이해할 수 없었고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그 일을 겪으며 사회현실에 좀 일찍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면서 낭만도 물론 즐겼지만 그 나라의 사회와 현실에 더 관심이 갔다.

"현지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현실에도 관심도 많았어요. 특히 터키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과도 연관돼 있더라고요. 근데 그게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놀라웠어요. 한 번은 버스를 탔는데 어떤 연세가 높은 어르신이 저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제 손을 덥석 잡으면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6·25때 참전하셨던 분이더라고요."

자기 친구들이 한국에 묻혀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그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터키인들은 한국을 다른 나라와 달리 생각해요. 자신들이 피를 흘린 땅이고 형제의 나라라고 인식을 하는데 우리는 터키를 그만큼 생각하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전문여행가에서 초보농사꾼으로 정착

그렇게 떠돌다보니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났다. 떠돌 만큼 떠돌았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지금은 틈틈이 여행 관련 글을 쓰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도 꼭 해보고 싶은 꿈이었거든요. 내 손으로 작물을 심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통 즐겁지 않아요."

비바람을 피해서도 안 되고 힘을 아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고단함의 숫자보다는 즐거움의 숫자가 더 많다. 그러나 그는 아직 초보 농사꾼이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고 배워야 할 게 산더미 같아요.(웃음)"

정착했다고 여행을 아예 졸업한 건 아니라고 한다. 여건이 닿는 대로 여행은 계속 다니고 싶고, 특별한 여행팀을 만들어 인솔하며 사람들에게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여행도 계속하고 농사도 열심히 지어서 땅과 사람을 함께 살리는 좋은 농부가 되고도 싶고요. 꿈이 너무 과한가요?(웃음). 그런데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도 내 안으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이더군요."

자신의 가이드북을 보고 여행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받을 때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구나 싶다.

"여행이나 농사나 제가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첫 여행을 떠났을 때의 설렘과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기대감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새롭게 설계하고 싶네요."
#여행 #여행기 #여행작가 #인도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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