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했다. 지난 16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1월 둘째 주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 대비 5%p 폭락한 35%이다. 이는 박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이다. 부정적 평가는 전주 대비 4%p 상승한 55%를 기록했다.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20%p 앞선다.
지난해 연말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하락하던 대통령 지지율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으로 반등하는 듯 싶더니 다시 급락했다.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50대와 TK에서도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박 대통령은 어쩌다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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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고리 3인방...무한 신뢰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문고리 3인방'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 <한겨레> 1월 13일자 1면 ⓒ 한겨레pdf
<갤럽>의 조사는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12일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작년과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져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이 회견에서 그나마 눈길을 끈 것은 '문고리 3인방'에 보여준 대통령의 무한 신뢰였다. 박 대통령은 '과학적 수사기법' 운운하며 이들에게서 흠집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무난히 끝나는 듯 보였던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다음날 각 언론에 게재된 한 장의 사진으로 커다란 후폭풍을 맞게 된다. 바로 김무성 수첩에 기록된 '(청와대) 문건 파동의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파문이 확대되자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 청와대 홍보수석실 음종환 선임행정관(2급)은 14일 사표를 제출했다. 음 전 행정관의 'K, Y 배후설' 발언논란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세 가지 대목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세 가지는 박근혜 정부의 '권력서열'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권력서열 찾기①] 유승민 의원은 왜 안봉근에게 전화를 했나
음 전 행정관이 거론한 'K, Y' 이름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달한 사람은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었다. 이준석이 'K, Y 배후설'을 김 대표에게 전달한 시기는 지난 1월 6일이었다. 'Y'로 언급된 유승민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황당하고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이후 유 의원이 전화를 건 인물이다. 그는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 비서관에게 전화해 사실확인을 요청했다. 지난해 12월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서 청와대는 내부 감찰을 진행했다.
유 의원이 그 결과가 궁금했다면 감찰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이나 민정비서관에게 연락을 하면 됐다. 아니면 음 전 행정관의 상관인 홍보수석에게 연락해 항의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유 의원은 안봉근 비서관에게 전화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음 전 행정관이 'K, Y 배후설' 발언을 할 때 함께 있었던 이동빈 행정관이 청와대 제2부속비관실 소속임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 행정관의 상관인 안 비서관에게 확인하려 했을 수 있지만, 유 의원이 안 비서관에게 연락을 했다는 대목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 비서관에게 대답을 듣는다면 민정수석에게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안 비서관 외 유 의원이 민정수석 등 다른 청와대 관계자에게 확인했다는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권력서열 찾기②] '박근혜 키드' 이준석은 왜 김무성에게 'K,Y' 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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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건파동의 배후? 굳은 표정의 김무성 음종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이 청와대 문건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를 주재하며 이완구 원내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이재오 의원. ⓒ 남소연
'K,Y 배후설'은 12월 18일 술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이 한 말을 1월 6일 이준석이 김무성 대표에게 전함으로써 세상에 공개됐다. 이 20일 동안의 간극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연히 김무성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전달한 것인가.
이준석이 'K,Y 배후설'을 처음 들었던 12월 18일은 '정윤회 문건'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정점을 향하던 때였다. 그 며칠 전인 12월 13일은 청와대 문건을 2차 유포한 혐의로 조사받던 최아무개 경위가 '청와대 회유 의혹' 등을 유서에서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김무성, 유승민' 이름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때였다.
12월 15일 <JTBC>는 '정윤회 문건' 관련해 청와대가 한아무개 경위를 회유했다고 보도했다. 한아무개 경위는 최 경위와 함께 청와대 문건을 유포한 혐의를 받던 인물이었다. 언론에서 청와대 회유 의혹을 정조준하고 나선 순간이었다. 바로 이 무렵인 12월 18일 이준석이 'K,Y 배후설'을 듣게 된다. 지금도 놀랍고, 그 당시로서도 놀라운 뉴스였을텐데 이준석은 침묵한다.
그후 1월 5일 검찰은 '정윤회 문건'은 허위라며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연말, 연초로 이어지면서 추가 의혹제기가 없었고, 검찰 수사결과도 예상대로 발표됐기 때문에 잠잠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1월 6일 이준석은 김무성 대표를 만나 'K, Y 배후설'을 전한다. 이 시점상 괴리는 단순히 우연일 뿐인가.
'K,Y 배후설'은 그동안 설명되지 않았던 내용, 즉 박 대통령이 왜 지난 연말 김 대표 등을 배제하고 일부만을 불러서 '친박모임'을 주도했고, 왜 서청원 의원이 박세일씨 당직 임명과 관련해 김 대표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으며, 지난 연말 송년모임에서 친박계가 '김 대표의 전당대회 득표율은 29%' 운운하면서 노골적으로 비판했는지 등을 설명해준다.
각종 언론에 등장하며 청년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는 이준석이 김 대표와 친박, 청와대 사이의 불편한 기류를 읽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서 이슈로서 힘을 상실해 가고 있던 정윤회 관련 배후설을 뒤늦게 김 대표에게 전달한 것일까.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키드'로 맹활약한 정무감각 등을 고려할 때 'K, Y 배후설' 전달 시점에 여러 의구심이 든다.
[권력서열 찾기③] 음종환 발언과 정윤회 발언... 두 발언의 싱크율
지난해 12월 10일 검찰에 출석한 정윤회씨는 두 가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하나는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군지 다 밝혀지리라 생각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사 후 귀가하는 자리에서 "(불장난 배후를 묻는 질문에) 수사결과를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정씨가 출석한 당시 검찰에서는 조응천, 박관천 등 두 사람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검찰에 출석한 정씨는 '배후'가 있는 듯한 발언을 했고, 두고 보면 알 것이라며 수사 결과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보수언론에서도 그의 답변태도에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씨의 발언이 있은 후 일주일 가량 지난 시점에 음 전 행정관의 '문건 파동의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발언이 이준석을 통해 김 대표에게 전달된다.
김 대표 수첩에 기록된 발언이 음 전 행정관이 한 게 맞다면 앞서 정씨의 발언과 싱크율은 얼마로 해석할 수 있을까. 전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던 바로 그 때 정윤회는 '불장난한 사람과 불장난에 춤춘 사람'을 언급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 엄 전 행정관은 정윤회가 언급한 그 사건과 관련해 배후인물로 'K(김무성),Y(유승민)'을 언급했다고 이준석이 전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수사결과를 아는 듯 '두고 보라'는 동일한 표현의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음 전 행정관은 자신의 발언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1월 1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렇게 얘기할 만큼 허접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제가 좋아하는 김무성 대표와 존경하는 유승민 의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켜 사표를 냈다"라고 'K,Y 배후설'로 전해진 세간의 의혹을 부인했다.
폭락한 지지율, 반전의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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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 수첩 여파... 대통령 지지율 급락 청와대 행정관의 여당 대표에 대한 배후설 논란과 '문고리 권력'에 대한 대통령의 고집 등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인 35%로 급락했다. <한겨레> 1월 17일 6면 ⓒ 한겨레pdf
술 먹고 K, Y를 언급한 행정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이를 당 대표에게 전달한 정치 지망생, 관련 내용을 기술한 수첩을 기자에게 노출시킨 당 대표… 3박자가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뤄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폭락시켰다.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낸 박 대통령 발언도 시너지를 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보는 시선에는 한 편의 희극을 보는 듯하다. 국민들은 해법을 알고 있다. 정윤회씨가 전화한 이재만 총무비서관, 유승민 의원이 전화한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오아무개 행정관을 통해 유출된 자료를 전달한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들 '문고리 3인방'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라는 것이다. 권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 이들 3인방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때가 없지 않은가.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12일 박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들을 표현한 단어는 "(문고리 3인방이) 묵묵히 고생하면서, 자기 맡은 일을 하고,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면 누가 제 옆에서 일할 수 있겠는가"였다. 대통령 지지율이 35%가 아니라, 15%까지 대폭락한다 해도 '문고리'가 청와대에서 '내쳐질'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무성 수첩'은 정권의 생생한 '권력서열'을 노출시켰다. 3선의 유승민 의원은 다른 사람도 아닌 제2부속비서관 안봉근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 확인을 요청한다. 정치 지망생 이준석은 'K, Y 배후설'을 들은 지 20일이 지난 시점에 친박과 극한 대립관계를 보이던 김무성 대표에게 내용을 전한다. 그리고 김 대표 수첩의 내용이 음 전 행정관 발언이라면 그것은 정윤회씨의 검찰 출두 당시 발언과 매우 유사하다.
청와대 내에서는 안봉근으로 대표되는 '문고리 권력'이, 친박과 김무성 대표 사이에서는 오랜 고민 끝에 김 대표가, 청와대와 정윤회씨 사이에서는 정씨가 주도하는 모양새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것이 김 대표의 수첩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현 정권의 권력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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