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라는 거울에 비친 일본

<김현종의 영국이야기 4>

등록 2000.11.20 17:20수정 2000.12.1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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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런던에서 열린 로이터 프로그램과 일본 다이와 재단의 합동 세미나에 다녀왔다. 일본은 역시 일본이다. 영국에 살면서도 곳곳에서 일본을 느낄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을 예로 들자면, 일본학 강좌가 따로 있고 닛산자동차가 세운 닛산 연구소가 있다. 다 돈의 힘이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아직 영국 내에 독자적 연구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

세미나 연사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BBC 토쿄지국장을 지낸 P씨. 일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일본관은 다음과 같다.

"일본인은 정보와 함께 산다. 일본인의 신문 구독률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중국이 인구 1천명당 신문 23부를 발행하고 미국이 238부를 발행하는데 반해 일본은 576부를 발행한다. 요미우리는 조석간을 합쳐 1천 4백만부를 발행한다. 이밖에 92개의 시사주간지, 텔레비전, 인터넷, 심지어 이동전화까지 정보매체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감시 기능이 약하다. 비리, 부정의 감시(watch-dog) 기능이 약하다. 그저 짖는 개(barking dog)일 뿐이다. 다나카 금맥 파동을 예로 들면, 주간지인 문예춘추가 이를 터뜨렸다. 유수의 방송과 신문은 따라가기만 했다. 대신 일본 언론은 또한 수상의 동정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린다. 나머지 정치인의 동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의 언론계는 대단히 폐쇄적이다. 일본에 있는 영국특파원은 1백여명 선이다. 그러나 많은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기자는 들러리일 뿐이다. 질문하면 공식적인 대답만 돌아온다. 대부분 기자회견은 질문 없이 끝나기 일쑤다. 실질적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기자클럽이다. 기자클럽이 정보를 독점하고 기사의 방향을 좌우한다. 담합이 일본 언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도 있다. 예컨대 방송사 간에 보도 필름을 빌려주는 일도 드물다. 또 모든 일본 신문이 한날 한시에 쉰다. 진정한 경쟁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 언론은 윤리적 문제도 있다. 오키나와 부근 산호초 사진을 합성해 실었다가 말썽이 난 적이 있다. 연말이면 거의 모든 방송의 송년 프로그램에서 똑같은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우스운 장면이다. 어느 해 연말 토쿄 한 복판에서 차에 탄 채 여기저기 방송사에 출연하러 다니는 연예인들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일본 정치는 또한 부패가 심하다. 계보 정치와 자금수수가 공공연하다. 요즘은 수그러들었다지만 기본은 그대로라고 본다."

일본은 코미디 국가인가


P씨의 강연은 일본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면서도 좀 웃기는 별종 국가로 묘사하고 있었다. 사물을 재미있게 소개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듣는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난감한 점이 있었다.

일본을 변호할 마음은 없지만 일부 부분은 한국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내가 무슨 일본 편들어줄 일 있나"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토론이 끝날 무렵 사회자이자 로이터 프로그램의 감독인 H씨가 슬쩍 자극했다. "할 말이 없냐"고.

나는 대략 이런 취지로 말했다. "한국 사람은 일본의 이웃나라 사람으로서 또 일본에 36년동안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 사람으로서 일본을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영국 사람이 독일이나 프랑스를 아는 것과 비슷하다. 독일은 2차대전 때 메서수미츠 비행기로 영국을 공습했다. 이런 걸 기억하는 영국사람이라면, 전쟁이 끝났다지만 어떻게 독일에 무관심하겠는가. 한국사람들도 같은 이치다.

연사의 말은 대부분 옳다. 그러나 일본은 결코 그렇게 웃기는 나라가 아니다. 상대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지만 간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한 내 심정을 얘기하라면 일본은 끔찍한 나라(terrible country)다.

한가지 예만 들겠다. 시오노 나나미라는 일본 여자가 있다. 25년째 로마에 살면서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서양이야기만 20권 정도 썼다. 일본과 한국에서 1백만권씩 팔리는 베스트 셀러다. 이처럼 연구하는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연사가 아까 일본 신문은 한날 똑같이 쉬기 때문에 진정한 경쟁이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이를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관점의 차이다. 내 경험으로는 그날은 하루 휴전하는 날이다.

정치적 부패는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에 일부 그런 문제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은 시간이 좀 걸린다. 영국도 선거구를 통째로 팔고 사는 수준의 부패 정치에서 현재의 민주주의 선진국이 되는데 4백년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해 달라."

그날 느낀 것은 동서양 간에 지리적 거리만큼 문화적 해석에도 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P씨의 얘기는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일본이나 한국이 그들 눈에 '다소 덜 떨어진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이는 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세계 질서와 사고의 기준은 서양이 세운 것이다.

업무에 대한 헌신성, 내부 경쟁의 열기는 한국이나 일본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후발 산업국가로서 세계에서 뒤처지지 않은 데에는 선발 국가들보다 뼈를 깎는 불면의 밤이 더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경쟁은 있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불충분하고, 그렇지만 거기 속한 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힘닿는 대로 합리적 개선을 시도하려 한다는 데까지 P씨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생선까스 맛은 영국과 한국이 똑같다

P씨의 강연을 들은 후 영국의 보편적 지식인인 그가 왜 일본을 우습게, 혹은 냉소적으로 보는 걸까 생각해 봤다. 두 나라 관계는 애증이 엇갈리는 선생과 제자 사이와 비슷해 보인다. 영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스승이었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의 지식층은 유럽 국가 중 같은 섬나라이자, 왕제를 잘 유지하고 있고, 세계 중심국가인 영국에 흥미를 느꼈다. 왕을 죽이고 공화정을 만든 프랑스, 이제 막 통일을 이룬 독일, 이태리보다는 배울 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법 제도는 영국이 불문법 국가로서 성문법을 갖고 있지 않기에 독일의 대륙법 체제를 배웠다. 양국의 이러한 관계는 청일전쟁 후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공동대응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이 영국의 서구 문화가 일본을 거쳐 일정 때 한국에까지 흘러왔다. 신사복의 상징인 세비로는 런던에 있는 양복점 골목 이름이고, 돈까스는 영국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를 일본 사람들이 받아들여 생선 대신 돼지고기를 튀긴 것이다. 생선까스 맛은 지금도 한국과 영국이 거의 비슷하다.

빨간 우체통으로 상징되는 우편제도, 1구 1인 선출의 소선거구제, 지금은 없어졌지만 50년대까지도 서울 시내를 달리던 전차, 창은 좁고 지붕은 높은 서양식 석조 건축물, 빨간 벽돌로 지은 뾰족한 가옥들이 대부분 일본을 거쳐 한국에 상륙한 서양의 문물이요, 영국의 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서 자기 길을 걸으면서 영국과 이해가 충돌하자 양국 관계는 악화되었다. 영국과 일본은 2차 대전 당시 말레이와 싱가포르, 미얀마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특히 말레이 함락 때에는 영국군 6만명이 포로가 됐다가 종전 때까지 3분의 2가 질병과 학대로 사망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2차 대전 당시 양국 군인들을 묘사하면서도 대립의 각을 상당히 무디게 다듬었다는 느낌을 준다. 야만적 일본에 대한 보통의 영국 사람들 정서는 지금도 남아 있다. 몇 년 전 일본 왕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 재향군인들이 버킹검 궁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결국 일본 왕은 사과 발언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여 발표해야 했다.

옥스퍼드에 살며 일본을 주제로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는데 두 사람 다 일본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했다. 한 사람은 부친이 2차 대전 당시 홍콩에 근무하다가 일본군에 의해 사망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 부친의 묘소가 있는 홍콩을 방문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한 사람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일본군의 만행을 줄줄이 꿰며 '잔인한 민족"이라고 표현했다.

P씨의 일본 혹평은 이런 정서를 반영한 것일까. 서양 사람으로서 동양 문화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보인 것인가. 그보다도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본 때문에 흘린 피와 고통은 영국이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편으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접국이다. 그러나 한국의 일본 이해는 아직 입체적이지 못하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일본 대중 문화에의 편승이 각각 강의 양쪽 둑에 멀찌감치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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