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도 대권 경쟁을 시작하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할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정치인들의 대권병이 국민에게 식상함을 안겨주고 있고, 경제사정도 어려운 이 때에 대권 경쟁을 재촉하다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야당에게 요구되는 변화의 활력은 내부의 대권 경쟁으로부터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 장성민 의원, 야 대선구도 예측(연합뉴스 황정욱 기자)
이미 집권당인 민주당에서는 차기 대권후보 경쟁이 사실상 시작되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자임하고 나섰고, 김근태 최고위원도 대권후보 경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노무현 장관도 일찌감치 차기 대권 경쟁에 뛰어들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어,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인사가 계속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점에 집권당 내 주요 인사들이 너무 일찍 대권 경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이러한 추세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듯하다.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의 모습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이회창 총재가 '대안부재론'을 등에 업고 사실상 유일한 대권후보로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총재의 당운영에 비판적 자세를 보여온 박근혜 부총재만이 이 총재와의 결별을 통한 독자출마설로 가끔씩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이다.
언제부터인가 한나라당 내에는 차기 대권후보는 이회창 총재라는 불문율이 자리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총재는 그동안 몇 차례의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당내 기반을 확고히 굳혔다. 지지 대의원 숫자면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이총재의 당운영이나 노선에 불만을 가진 한나라당 내 인사들의 경우도 차기 대권후보가 이 총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야당 후보로는 이총재를 상수로 놓고 조사를 실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재미없는 게임이다. 사실 '대안부재론'처럼 매력 없는 논리가 어디 있겠는가. 특정 인물이 뛰어나서 후보가 된다기보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명색이 원내 제1당의 대권후보론으로는 너무도 소극적인 논리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야당치고는 너무 활력이 없고 지루하기만 하다. 차기 수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당의 노선과 정책을 둘러싼 토론이 더욱 본격화 되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야당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무엇이고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수용하고 걸러내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같은 토론이나 논쟁은 모두 당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리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래 가지고는 야당이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즐기며, "이대로만 가면 가만히 있어도 정권은 우리에게 온다"는 무사안일의 자세는 '원내 제1당'이 취할 바가 아니다.
지금 야당에는 분명 변화의 활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 한나라당 내에서도 차기 대권후보 자격을 놓고 이회창 총재에 대한 도전과 경쟁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한나라당 내에도 '차기'에 도전해 볼만한 인물들은 분명 여럿 존재한다. 그들이 소신과 노선에 따라 당당히 나서 한판 경쟁을 벌인다면 한나라당 내의 경선판도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야당 내에 이 총재의 노선과 같은 생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민들이 이 총재의 노선만이 야당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여 강경노선이 있으면 대여 온건노선도 있고, 대북 냉전론이 있으면 대북 화해론도 있고, 보수론자가 있으면 개혁론자도 있는 것이 정당이다.
한나라당은 차기 대권후보를 선출함에 있어서 마땅히 그 동안의 당노선에 대한 평가를 내림과 아울러 앞으로에 대한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부터 그에 관한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한 과정 없이 소극적인 대안부재론 속에서 이루어지는 후보선출은 국민을 소외자로 내몰 뿐이다.
중요한 점은 국민에게도 야당의 후보 선출에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당 내부의 세력관계를 넘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후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여야에게 공히 적용될 수 있다.
누가 과연 21세기 한국을 이끌 비전을 갖고 있으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인가를 가리기 위해서는 야당의 대권후보 경쟁도 차라리 일찍 시작되는 것이 낫다. 그래야 국민의 의사도 확인되고 그 결과가 당내 대의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국민 속의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과 함께 후보를 선택하고 검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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