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도 '명승부'가 있을까?

등록 2002.07.29 12:28수정 2002.07.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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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축구 잔치이자 한국인의 대축제였던 월드컵 대회가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한 달이 지나고 있는 시점임에도 월드컵 기간 내내 온 국민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던 감격과 흥분의 열기는 지금도 우리의 내면에서 좋은 기운을 발산해내고 있다.


가장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변화'의 한 가지는 국내 프로 축구 잔치인 'K리그'의 용약(勇躍)하는 모습이다. 경기장마다 연일 대 성황을 이루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월드컵이 우리에게 안겨 준 눈부신 '계기의 꽃'을 실감할 수 있다.

축구장을 메우는 관중들은 지금 월드컵의 '여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계기의 힘찬 너울을 타고 우리 민족의 삶에서 더욱 강건한 고동과 저력이 분출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모든 관중들의 가슴에 함박 어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수들과 관중들이 서로 뜨겁게 화답하고 부응하며 멋진 교감을 이루고 있는 K리그의 그 모습과 열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힘찬 계기의 물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밑바탕에는 우리 민족의 모든 가능성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바람이 내재해 있기에….

한 달 전의 월드컵 대회를 돌아보면 지금도 내 가슴엔 기쁨이 차오르며 절로 미소가 그려지곤 한다. 참으로 즐거운 기억이고 여운이다. 엄청난 감격의 '실체'로 말미암은 이 명확한 기억과 여운은 오래 가슴에 남아 내게 지속적으로 싱그럽고 감미로운 기분을 안겨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믿고 기대한다.

월드컵 기간 중에 내게는 월드컵과 관련하는 특별한 일이 두 번 있었다. 신문에 '관전평'을 쓴 일이었다. 지방지 <대전일보>로부터 '긴급 청탁'을 받고 한 일인데, 대 폴란드 전과 대 이탈리아 전에 대한 관전평이 그것이었다.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글을 마무리지어 메일로 보내주는 작업은 간단치가 않았다. 두 번 모두 야간 경기여서, 밤 11시까지 원고를 전송해야 하니 쫓기는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대 폴란드 전은 전·후반 경기로 끝이 나서 어려움이 덜했지만, 이탈리아와의 16강 전 경기는 연장 후반 종료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그리고 너무도 극적인 명승부를 연출한 경기여서 나는 거의 얼이 빠진 상태로 그 일을 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 원고지 7매 분량의 글을 아무리 자판기를 두드려 쓴다고 해도 경기가 끝난 후에 써서 약속 시간 안에 전송을 해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원고를 미리 대충 써놓는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충 써놓은 원고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조별 예선 리그 첫 경기였던 대 폴란드 전에 대한 글은 미리 대충 써놓은 원고를 많이 뜯어고칠 필요도 없었다. 보충 보완하는 정도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전반전에 한 골, 후반전에 한 골을 넣어 2 : 0으로 이기는 것으로 원고를 쓴 내 예상과 바람이 보기 좋게 적중을 했으니….

그래서 골을 넣은 정확한 시간과 전반전의 황선홍, 후반전의 유상철, 그리고 전반전 골을 어시스트한 이을룡의 이름만 글 속에 집어넣으면 거의 마무리되는 작업이었다. 또 그래서 비교적 여유 있게 글을 전송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8강 진출을 다투는 이탈리아와의 16강 전 경기에 대한 글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우리가 후반전에 한 골을 넣어 1:0으로 이기는 것으로 원고를 대충 써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무래도 글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상황으로 경기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점점 시간은 흐르고,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나는 후반전 시간이 15분쯤 남은 시점에서 미리 대충 썼던 글을 그대로 두고, 또 하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터키에게 1:0으로 져서 16강 전에서 분루를 삼킨 일본 얘기를 하고, 전반전 5분에 얻은 행운의 페널티킥을 안정환이 실축한 가슴 아픈 얘기를 썼다. 결국 이탈리아에게 1:0으로 분패하는 것으로, 그리고 16강에 오른 것을 위안 삼는 것으로 글을 끌어가려니 안타깝고 허탈한 마음이 한량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차마 글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텔레비전을 보자니 경기 종료 3분을 남겨놓은 그 절박한 시각에 설기현이 일을 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 순간 내 눈을 의심하면서도, 가족들과 얼싸안고 환호를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즉시 새로 쓰던 글을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경기 결과를 보기도 전에 그 글을 지워버린 것은, 꼭 이길 것만 같은 '예감'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그 글을 지워버리던 순간의 일종의 쾌감과 더욱 간절해진 8강 진출 소망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부터 나는 컴퓨터 앞을 물러나서 텔레비전을 정면에 놓고 경기를 보았다. 그리고 연장 후반 종료 4분 전에 터진 안정환의 기적 같은 골든골을 본 순간에는 내 나이도 잊고 초등학생 아들 녀석과 함께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아내의 기쁜 채근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컴퓨터 앉아 경기 전에 미리 대충 써놓았던 글을 일부 수정하고 보완한 다음, 참으로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신문사에 전송을 해줄 수가 있었다. 경기가 연장으로 가면서 내게 두 번이나 전화를 했던 담당 기자도 똑같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원고를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금도 대 이탈리아 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패색의 짙은 그늘 속에서 솟구쳐 올랐던 그 감격과 환희와 흥분을 진지하게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설기현의 동점골과 안정환의 골든골 모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 전 경기가 이번 월드컵 대회의 최고 명승부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패색 짙던 경기 종료 3분 전의 동점골, 연장 경기 종료 4분 전의 골든골은 그 경기가 참으로 명승부였음을 실감시켜준다.

나는 그 명승부를 오늘 다시 기억하면서 문득 내 인생을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도 명승부가 있을까? 괜한 자문을 해 본다. 조금은 엉뚱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의문이지만, 그 공연한 의문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를 느낀다. 그것은 필경 내 인생의 부실과 비애를 반추하는 것일 테지만, 나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사절할 수 있는 용기도 배짱도 없다.

과연 내 인생에도 그런 명승부가 있을 수 있을까? 막연하게나마 어떤 극적인 상황을 희구하는 마음이야 늘 내 가슴속을 비집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고 의식할수록 비애 또한 커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어느덧 내 인생도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오십대 중반은 자기 인생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의 길이를 의식하며 살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미 오래 전에 인생 코스의 중간 지점을 지나서 후반전의 중반쯤을 달리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후반전의 중반쯤을 달리고 있는 인생 주자들에게는 골인 지점의 윤곽이나 명암이 어느 정도는 얼비치기도 한다. 또 그와 반비례하여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도 한껏 커지기 마련이다.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면 나 역시 자랑스러움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크다. 일찍이 운명의 길임을 알고 내 인생 길을 나름껏 열심히 달려오긴 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잘 달리지를 못했다. 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잡은 착오도 있었고, 참으로 굴곡도 많았으며, 암울한 터널들도 있었다. 그래도 내 깜냥껏 최선을 다해 악전고투하며 달려왔지만, 참으로 성과가 부실함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내 인생의 짙은 '패색'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후반전의 중반 이후일 수밖에 없는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그 남은 시간 안에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내 생애의 마지막 불꽃같은 열정으로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다. 성과에 대한 자신감뿐만 아니라 내 노력에 대한 자신감도 쇠약해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내 심정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 인생의 극적인 명승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패색이 짙은 경기 종료 직전에 동점골이 터지고 이어서 결승골이 터지는 극적인 역전승 ―그 명승부에 대한 소망은 지금 분명히 내 가슴 속에 촛불처럼 켜져서 깜박이고 있다. 어찌 보면 막연한 희망의 촛불일 것도 같다. 그리고 그 깜박이는 내 가슴속 촛불의 영상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애처로움을 자아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후반전 중반 이후의 남은 시간 동안 그 촛불을 잘 간직하며 살고 싶다. 결코 그 촛불을 스스로 꺼뜨리지 않고, 끝까지 사력을 다하여 내 가슴을 밝혀 주는 '생명'의 촛불로 만들어가고 싶다.

그 촛불은 내 내면의 촛불일 뿐이다. 새벽마다 내 어머니 앞에서 심지를 태우는 '기도상(祈禱床)'의 촛불로부터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촛불이 이 세상에서의 현실적인 명승부만을 소망하는 것이라면 그 생명력은 결코 길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감히 내 인생의 명승부를 소망한다. 하지만 그것을 내 현세적 삶에 국한시키고 싶지 않다. 그것을 현세적 삶에 국한시킨다면 그 의미와 가치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 현세적 삶을 초극하는, 저 초월의 세계를 소원하는 것일 때 그것은 진정한 명승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내 가슴 속의 촛불은 끊임없이 겸허와 허무를 밝혀주는 촛불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내 인생의 진정한 명승부를 진심으로 소원한다면, 내 가슴 속의 촛불은 끝내 겸허와 허무의 촛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달려온 길을 뒤돌아볼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지나온 길의 길이를 늘려가며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달려온 길을 뒤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만, 그것은 곧바로 슬픔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리움이 크면 클수록 자칫 후회도 무성해지고,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은 곧잘 허무를 동반한다. 그리움은 허무를 낳고, 허무는 진실과 정직을 포태하기도 한다.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와 회한들이 진실과 정직을 포태하고, 숱한 그리움과 슬픔들이 겸허와 허무를 낳는 가운데서, 나는 내 인생의 진정한 명승부를 소망하는 촛불을 가슴에 안고, 그 촛불이 밝혀 주는 길을 따라 후반전 중반 이후의 내 인생 길을 한결 조심스러우면서도 힘차게 밟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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