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자들의 상반된 두 시각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8.07 09:29수정 2002.08.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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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 하나.


지난 6월 29일 오후 아산시 온천동의 그랜드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방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며 틈틈이 열심히 글을 쓰는 김우영(金禹榮·45)이라는 작가가 시집, 수필집, 콩트집, 소설집 등 무려 다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발간하고 나서 충남 서천이 본거지인 문예지 <문예마을>과 출판사들의 도움으로 '사인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개최한 자리에서였다.

지방 문단에서 작게나마 한 몫을 하고 있는 나는 당연히 참석을 해야 했다. <충남소설가협회>라는 문학공동체의 대표인 나는 회원인 김우영 작가에게 우선 '기념패'를 드렸다. 그리고 제2부 '토론' 시간에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연단 위에 마련된 특별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토론의 주제는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꽤 무겁고도 복잡한 이 주제가 이 날 행사의 주요 항목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김우영 작가의 소설집 때문이었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단편 <라이따이한>이 지니고 있는 '문제성'을 나름대로 사회 일각에서나마 공론화하고 싶은 김우영 작가의 의지의 소산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라이따이한'이란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우영 작가의 단편 라이따이한은 제목 그대로 라이따이한의 출생 배경과 삶의 실상을, 다시 말해 그들의 처절한 슬픔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월남전 참전 경험을 갖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작품에서 매우 성실한 작가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작품 속에 고루 깔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그런 시각의 정당성을 나름대로 확인하고, '라이따이한'에 대한 일종의 채무감을 우리 사회에 좀더 확산시키기 위해서 그는 그런 작품을 썼고, 또 '사인회'라는 제법 규모 있는 행사를 열면서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 자리까지 마련한 것이었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은 해병대인 청룡부대 출신으로 현재 중소기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경제인, 육군 백마부대 출신으로 현직 면장인 공무원,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었다. 참고로, 나는 백마사단 도깨비연대 1중대의 소총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3명 모두 비전투부대에서 겸연쩍게 C레이션을 먹은 사람들이 아니었고, 전투부대의 행정병으로 편하게 놀고 지낸 사람들도 아니었다. 말단 소총중대의 전투병들이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전우'적인 친밀감 같은 것을 만들어 주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두 분이 2, 3년 연배인 데다가 파월 선배들이어서 그들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맨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는 청룡부대 출신인 중소기업체 사장님. 그는 처음부터 격앙된 목소리로 오랜 친분 관계인 김우영 작가의 단편 라이따이한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 이유를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세계 평화 유지'로 보았고, 따라서 자신의 파월을 큰 영예와 긍지로 알고 살았는데, 소설 라이따이한이 그것을 심대하게 훼손하는 것만 같아서 몹시 기분이 상했다는 이야기였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30만 명의 용사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느냐고 그는 일갈했다.

두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백마부대 출신 현직 면장님도 마찬가지. 그는 우선 월남의 정글에서 전사한 1만5천여 명의 영령들 앞에 한없는 송구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국토의 대동맥이며 산업 발전의 지름길인 경부고속도로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파월 장병들의 목숨 값과 피땀 값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는 등, 자신들이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그들은 소설 라이따이한속에 제시된 '용병(傭兵)'이라는 용어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자신들은 결코 용병이 아니었으며, 그런 시각은 파월 용사 전체에 대한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 모욕이라고 말했다.

이 용병이라는 용어는 일찍이 내가 사용한 적이 있다. 1992년에 출간된 졸작 장편 <회색정글>의 '서문'에서부터 나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나 자신이 용병이었음을 고백하고 실토했던 것이다. 소설 <회색정글>은 그야말로 용병의 실체와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이었고….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나는 파월 장병들이 올곧게 견지하고 있는 긍지와 자부심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과 심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 역시도 상대성이 있는 일이니, 나 혼자서 일방적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챙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굳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면, 그만큼 베트남에 대한 죄의식도 가져야 한다.

나는 파월 장병들에게서 일방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접할 적마다 일종의 불안감과 결코 옳은 처사가 아님을 느껴왔다. 저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연유하는 '자유와 평화의 십자군'이니, 박정희 숭배와 결부되기도 하는 '조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니'하는 조악한 표현들로 포장되곤 하는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접할 때마다 5, 60대 연령층의 강고한 '고정관념'의 폐해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성찰 능력의 빈약함도 느껴야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파월 당시 월남에서 받은 병장의 전투 수당 월 54달러를 벌기 위해 무려 세 번이나 자원하여 월남에 간 사실을 다시 한번 실토했다. 전투 수당을 피같이 아껴 모아서 1년 2개월 후에 30여 만원의 큰돈을 만들어 가지고 귀국한 사실, 그 돈으로 누님의 혼수를 장만하여 우리 집의 '개혼'을 성사시킨 사연을 공개했다.

월남에서 전투 수당을 받을 때마다 그 돈이 미국 정부로부터 오는 돈임을 상기하곤 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용병'임을 자각하곤 했다. 나는 그때 이미 월남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베트남에 대해 일종의 죄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베트남이라는 남의 나라 땅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죄의식을 갖게 만들었고, 내가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총기 사건으로 말미암아 평생 동안 걸머지고 살아야 할 죄의식을 갖게 되고 말았다.

내가 관련된 월남에서의 총기 사건 ―그로 말미암은 죄의식을 내 개인적인 사안으로 국한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온갖 크고 작은 유형 무형의 수많은 '사건'들을 표징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용병'이니, '죄의식'이니, '한국군의 만행'이니 하는 용어들에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말들이 포유하고 있는 뜻을, 수많은 관련 사항들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그런 반성적 성찰들에 즉각적으로 반감과 적의를 나타내는 행위들은 참으로 옳지 못하다.

<한겨레 21>의 보도와 관련하여 2년 전에 <파월전우회>에서 집단적으로 한겨레신문사에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직원들을 폭행한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어언 5, 60대 연령에 이른 파월 장병들이 오늘의 20대 청년들보다도 못한 유치한 의식 수준과 행태를 보여 준 것에 불과하다.

2년 전의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나는 우리 고장의 파월전우회 (후에 <월남참전군인회>로 이름이 바뀜) 모임에 일절 발을 끊고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동료 파월 전우들이 거의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방적인 긍지와 자부심에, 다시 말해 반성적 성찰을 철저히 거부하는 집단 심리와 행태들에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심정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발언들에 대해서 토론에 참가한 다른 두 분의 '선배'들은 불쾌한 감정을 갖는 것이 분명했다.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서는 내가 멱살을 잡힐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세 명의 토론 참가자가 한 번씩 발언을 했으므로 사회자가 시간 사정을 말하며 그만 정리를 하려고 하자, 맨 먼저 발언을 했던 중소기업체의 대표이신 분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고 했다.

그는 단호한 기색으로 말했다. 베트남 전쟁 참전 한국군이 '용병'일 수도 있고, '죄의식'이라는 말과 관련될 수 있는 부분적인 사항들이 있다손치더라도, 굳이 그것을 들추어내서 글로 기록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우리의 자녀들은 아버지 세대의 월남전 참전에 대해 함께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자자손손 이어지도록 해야지, 왜 우리 스스로 그것을 훼손하는가. 그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노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격앙되었기 때문에 내가 반론을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사회자는 불을 끄기 위해서인지 서둘러 토론을 종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발언을 마친 그 분과 또 한 분의 선배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서 곧 행사장을 떠났다.

나는 그 순간에 잠시 반론을 망설였던 것이 지금에도 몹시 아쉽게 느껴진다. 그 분과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언제 또 한번 만나게 되면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어떻게 보시느냐고….

모르면 몰라도 십중팔구 그 분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분노하며 일본을 맹 비난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전반적인 정서 기류이니까…. 만약 그 분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다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일본의(기성 세대의) 역사 교과서 왜곡 의지와 당신의 그런 월남전 참전 관련 시각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고 보시는지…. 월남전 참전에 관한 다양한 성찰을 거부하는, 다시 말해 베트남 국민들의 심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지니신 분으로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비난하고 규탄할 자격이 있다고 보시는지.

우리 기성 세대에게는 다양한 사고 체계가 참으로 필요하다. 오랜 세월 자신을 얽매고 있는 고정관념과 아집들의 타당성 여부를 스스로 깊이 검증하고 분별할 수 있는 성찰 능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고정관념과 아집들을 스스로 검증하고 판별할 수 있는 성찰 능력을 우리 기성 세대가 폭넓게 지니게 된다면 우리는 지역감정의 망령도 극복할 수 있고, 혼탁이 난무하는 정치판을 국민의 힘으로 정화시킬 수 있는 계기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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