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에 대한 또 하나의 고찰 ①

등록 2002.08.09 12:58수정 2002.08.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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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참전과 관련해서는 10여년 전에 쓴 책도 한 권 있고 해서, 그리고 별로 유쾌한 얘기도 아니고 해서 썩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오늘의 내 글로 말미암은 한바탕의 논쟁 상황을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1년여의 월남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배에서 내려 간단한 '귀국 환영식'을 마친 다음 곧 수십대의 GMC 트럭에 분승하여 부산 시내를 달릴 때의 풍경이 떠오르는군요. 우리들은 괜한 반가움에 열렬히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건만 시민들의 반응은 거의 무표정했지요. 그 순간 나는 부산 시민들의 표정이 우리가 월남에 도착했을 때 나트랑 시내를 통과하며 목격했던 월남 국민들의 무표정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에 야릇한 전율 같은 것을 느꼈지요.

부산의 00보충대에서 며칠 묵으며 검역을 받고 돈을 찾고 하는 동안 '정훈교육'을 많이 받았지요. 정훈교육은 귀국 장병들의 '입단속'을 위한 것인 듯했습니다. 정훈장교는 월남에서 보고들은 '사실'들을 집에 가서 절대로 발설하고 다니지 말라고 '엄명'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들이 월남에서 주로 '쑈'라고 부른 거짓 전과(戰果), 또는 뻥튀기 전과와 관련된 엄포인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월남에서의 '사실'들을 평생 동안 감추고 살 것을 엄명하면서 그는 그것에다가 '국익'과 '군인의 명예'를 결부시키곤 했지요.

나는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의 온갖 부정적인 사실들의 은폐가 어떻게 국익과, 또 군인의 명예와 관련되는지를 명확히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그 은폐가 영원 무궁토록 변함없을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할 수 있었지요.

정훈장교는 귀국 장병들을 즐겁게 하는 말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월남전에 갔다 온 사실이 평생의 명예가 될 것이다. 앞으로 결혼을 하는데 있어서 월남전 참전 경력은 가장 훌륭한 조건이 될 것이다." 등등….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동시대를 사는 아가씨들한테는 월남전 참전 경력이 매력 사항이 될지 모르지만, 자식들에게까지, 먼 훗날에까지 자랑스러운 일이 될지는 의문이라는 모호한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PX에서 술을 마시며 한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지요.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 자체가 온전히 미화될 수도 없고, 장렬함과 명명백백함을 거스르는 추악함과 음험함이 판을 친 전쟁은 우리들 일개 병사의 기억에도 끝내 좋지 않은 음영을 드리우게 되리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네는 남이 하지 않는 생각을 많이 해서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고달픈 일이 많을 거야."
이름은 예전에 잊었고, 얼굴만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 친구의 그 말이 내 뇌리에서 아프게 되새겨지는 요즘입니다.

지난번 「월남전 참전자들의 상반된 두 시각」이라는 글의 말미에 나는 잠시 일본을 끌어들였습니다. 아시아 각국을 침략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황군과 우리 한국군의 월남 파병을 비교하기 위해서 일본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지요. 일본 정부의(기성 세대의) 고의적인 역사 왜곡 태도와 한국 월남전 참전자들의 참전 미화 의지 사이의 상관성을 언급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일본의 기성 세대가, 또는 우익 세력이 일본의 과거 역사를 왜곡하고 분장하여 오늘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아무런 반성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들만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침략을 당한 다른 나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소아병적인 국수주의일 뿐이지요.

우리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비난하고 규탄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황군의 아들' 박정희의 기념관을 짓겠다고 설치는, 혼탁한 가치관의 미로를 부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가치관의 미로로부터 반성적 성찰 능력이 봉쇄되고, 월남전 참전을 전적으로 미화하고자 하는 의지도 파생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과거 월남전 참전을 미화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월남전 참전 역사를 전적으로 미화하고, 참전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에 앞서 베트남 국민들의 입장이나 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변할 수 없는 신념입니다.

베트남 국민들의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고려할 줄 아는 도량과 치열한 고뇌를 지닐 때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나 자신에게도 떳떳할 것입니다.

어느 분이 지적했듯이 군대라는 조직 속에서 일개 병사의 선택의 여지는 거의 용납되지 않습니다. 월남 파병은 국가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이고, 차출이든 지원이든 국가의 명령에 따라 월남에 간 사람들은 그것 자체로서 군인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거기에서 애국심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후손의 존경과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나 역시 그것을 부정할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입니다. 비록 국가의 결정과 명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개인이 월남전 참전의 의미와 가치를 포괄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인간의 품성을 좀더 올바르게 이끌어 가는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인간의 삶은 늘 과거를 조명하고 평가하고 거울 삼는 지혜 속에서 발전을 이룩해 왔습니다. 과거는 유리된 시간 속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의 관련 속에서 새롭게 속살을 드러내기도 하고, 진정한 가치의 세계를 제시해 주기도 합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지요.

일개 병사의 선택의 여지가 거의 용납되지 않는 군대에서도 나는 차출이 아닌 지원으로 월남에 갔던 사람입니다. 사유의 폭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20대 초반 시절의 선택이었지만, 지원을 세 번이나 거듭하여 월남에 갔던 사람으로서, 그만큼 나는 파월에 따른 고뇌도 크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내가 세 번이나 지원을 거듭하여 월남에 간 사정과 재미있는(?) 관련 일화들은 이미 일년 전에 인터넷 웹상에 발표한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기억」의 머리 부분에 소상히 기술했으므로 오늘 다시 소개하는 일은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내게 파월 지원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용병 운운하는 것이냐, 용병 운운이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일갈을 했고, 또 어떤 이는 전투 수당을 바라고 월남에 갔으니 용병은 용병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만, 사실 나는 월남전에 지원을 했기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잠시 언급이 있었습니다만, 월남에서 1년 넘게 피같이 아껴 모은 돈 30만원으로 내 누님은 혼수를 장만하고 시집을 갈 수 있었습니다. 너무 사사로운 얘기여서 겸연쩍긴 합니다만, 내 누님은 지금도 그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동생이 월남에 가서 목숨 걸고 벌어온 돈으로 자신이 시집을 갔다는 사실에서 누님은 거의 죄의식과도 같은 미안한 감정도 지녔던 듯싶습니다. 내가 '언걸 먹은' 죄로 큰 곤경 속에서 어렵게 살 때 누님에게서 도움을 참 많이 받았지요. 지금도 (내가 모시고 사는 노모를 핑계 대고) 내게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주고 있는 누님에게는 기본적인 혈육의 정 외에 동생에 대한 과거의 고마움과 미안함도 담뿍 어려 있는 듯싶습니다.

아무튼 30여 년 전의 그 일을 생각하면 흐뭇함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 옴을 느낍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히 뿌듯하고 대견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오로지 흐뭇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오는, 확연하지 않은 일종의 허탈감과 아픔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종종 내가 월남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 누님의 혼사는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곤 했지요. 30여년 전 우리 집의 '가난'을 상기하면 내가 월남에 간 사실이, 더 나아가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월남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 누님은 시집을 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정에는 늘 고개를 젓곤 했습니다. 물론 우리 집의 혼사는 훨씬 더 힘이 들었을 테지만, 어떤 방법 어떤 형태로든 누님의 혼사는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배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월남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 누님은 그때 시집을 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 스스로 여러 가능성과 희망을 무시하거나 삭제해 버리는 짓이라는 생각을 나는 명료히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월남에서 귀국한 후 부산을 떠나 집으로 올 때는 대전까지 경부고속도로를 탔지요. 경부고속도로가 파월 장병들의 목숨 값, 피땀 값으로 건설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절로 뿌듯해지는 마음이더군요. 하지만 역시 오로지 흐뭇한 마음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오는 막연한 슬픔 같은 것을 그때도 나는 느꼈던 거지요.

많은 월남전 참전자들이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과 관련하여 자부심을 갖습니다. 우리 월남전 참전자들이, 다시 말해 우리 나라의 월남전 참전이 국가 경제 발전의 중요한 동인(動因)이 된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결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참전자들의 그 자부심을 이해하고 또 챙겨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월남전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경부고속도로도 놓을 수 없었고,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은 절대로 동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패배적인 가정에까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월남참전군인회'의 간부이신 분이 차트를 보여 주며 60년대 중반 시절의 우리 나라의 경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만, 월남전 참전이 당시의 국제 정세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경제 사정과도 관련하여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이 우리 경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논법에는 동의할 수 없는 거지요.

더 나아가,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우리 나라는 절대로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다는 논법―박정희 숭배론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나는 옳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과 연관하여 박정희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 나라의 경제는 절대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또 하나의 엄청난 패배적 사고방식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를 영웅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리 국민의 역량과 가능성은 축소되어 버리고 열등함이 부각되어 버리는 현상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는 거지요.

얘기가 잠시 넓게 불거졌습니다만, 나는 지금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여러 가지 감회를 갖게 됩니다. 월남전의 참혹한 실상을 떠올리게도 되고, 괜히 피비린내를 맡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월남 파병을 결정했던 박정희 정권이 미국 정부로부터 오는 장병들의 전투수당에서 '마진'을 너무 많이 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국가 차원의 '피의 수출'이라는 용어도 떠올리게 되고, 성격이야 어떻든 '용병'이라는 단어도 떠오르곤 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월남전 참전이 국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참전자들의 자부심을 인정하자니 또 문득 일본을 돌아보게 되곤 합니다. 일본의 경제 발전은 50년대 초 한국전쟁 덕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들이야 이웃 나라의 불행 덕에 호사를 누리게 되었건 어쨌건, 미안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일이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그들이 떡 쪄놓고 하늘에 빈 것도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이웃 나라의 불행 덕에 호사를 누리게 된 그들이 얄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놈 하나 없으니 더더욱….

우리는 일본과 처지가 다르지 싶습니다. 일본은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웃 나라의 불행을 즐기며 억수로 돈을 벌었지만, 우리는 월남 땅에서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1만5천여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월남 땅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월남전 덕에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습니다. 남의 나라의 전쟁 덕에 경제 발전의 기틀을 닦을 수가 있었습니다.

참전의 불가피성 여부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 역시 남의 나라의 불행 덕에 큰 경제적 이득을 취한 사실은 썩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듯싶습니다. 설령 그것이 애국심에 기반한 개인의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는 있을지언정 집단적 자부심으로 나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지 싶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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