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 그 아래서 만난 국밥집 아지매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91> 서울일기<7>

등록 2004.09.09 13:29수정 2004.09.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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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86년 초가을, 신림동 시장통 국밥집 그 아주머니는 서울 하늘에 뜬 달과 별이었다

1986년 초가을, 신림동 시장통 국밥집 그 아주머니는 서울 하늘에 뜬 달과 별이었다 ⓒ 이종찬

1986년. 그 해 여름은 섬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것 같은 인천 월미도에 갔다가 가까운 포장마차에서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한 병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둠살 짙게 깔린 월미도 앞바다 여기저기에서는 희미한 불빛만 자꾸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그해 여름이 못내 아쉽다는 듯.


밤 8시쯤 달셋방이 있는 신대방역에 내린 나는 잠시 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에도 고향에서 바라보던 그 별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만치 어둑한 고향의 들녘을 밤새 노랗게 달구던 달무리도 보였다. 신대방역 둑길에서는 귀뚜라미와 온갖 풀벌레들이 목청껏 소리 지르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때 나는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뜨지 않는 줄 알았다. 달도 뜨지 않는 줄 알았다. 꺼멓게 죽은 물이 고약한 내음을 퍼뜨리며 흘러내리는 서울의 도랑가에는 귀뚜라미나 풀벌레들이 살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저 사람만이 밥그릇 싸움을 하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줄 알았다. 지구촌의 유일한 독재자가 되어.

근데, 그게 아니었다. 서울의 밤하늘에도 내 고향처럼 별이 뜨고, 달이 뜨고,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그 별과 달은 내 고향에서 바라보는 별과 달처럼 그렇게 노랗게 빛나지는 않았다.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도 내 고향에서 듣던 그 맑고 투명한 소리는 아니었다.

서울의 밤하늘에 떠 있는 그 별과 달은 썩은 동태 눈깔처럼 희끄무레하고 겁에 질린 아이의 얼굴처럼 파리했다. 서울의 둑길에서 합창을 하고 있는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는 악을 쓰는 것만 같았다. 최루탄을 뒤집어 쓰고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지면서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재야 인사들과 대학생들의 함성 소리처럼.

갑자기 담배가 몹시 피우고 싶었다. 근데 담배갑 속에는 담배가 하나도 없었다. 천천히 둑길 주변을 살폈다. 저만치 제법 긴 꽁초가 서너개 보였다. 나는 다시 둑길 주변을 재빠르게 살폈다. 저만치 남녀 한쌍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산보를 나온 듯한 사람들이 띄엄 띄엄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만 지나면… 저 사람만 지나면…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그 한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또 한 사람이 저만치 걸어오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체면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여기 내가 잠시 앉아서 담배꽁초를 하나 줍는다고 해서 저들이 내가 무얼 줍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것도 희미한 수박등 아래서 말이야.

나는 또 한 사람이 내 앞을 지나치자마자 그 담배꽁초를 얼른 주워 들었다. 근데 그 담배꽁초는 마치 다리미질을 한 것처럼 납작했다. 방금 지나간 사람이 무심코 밟아 버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둑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은근슬쩍 피해 그 담배꽁초를 대충 다듬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담배꽁초는 독했다. 나는 그 지독하게 쓴 담배꽁초를 빠끔거리며 신림역 근처에 있는 시장통 국밥집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 국밥집은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 여인숙 생활을 하며 달셋방을 구하러 다닐 때 가끔 들르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그 국밥집은 내가 서울에 올라온 뒤 처음이자 꼭 하나뿐인 단골집이었던 셈이다.

"총각! 어서 와. 그래. 취직자리는 구했고?"
"네. 내일부터 대림동 근처에 있는 조그만 공장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근데, 월급도 너무 적고,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12시간 1, 2교대를 해야 한답니다."
"똥 눌 때 급하지 똥 누고 나면 언제 그랬냐 하더니만 총각이 꼭 그 짝이네. 그래. 어디 첫 술에 배 부른 게 있나. 그저 두눈 꼬옥 감고 열심히 다녀 봐요."


순대와 족발, 막걸리를 함께 파는 그 국밥집 아주머니는 내가 간혹 갈 때마다 내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다. 오십대 초반 남짓하게 보이던 그 아주머니는 내가 막걸리를 시킬 때마다 늘상 족발 약간과 소고기 국밥의 국물을 공짜로 내놓곤 했다. 그리고 "나도 한 잔 줘"하면서 기꺼이 내 술동무가 되어 주었다.

"근데,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담배값이 떨어졌다고? 그거야 끊으면 되고."
"그게 아니라 월급 탈 때까지 외상 좀 했으면 어떨까 해서요?"
"외상? 외상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을 몰라. 그러지 말고 술이 고프거나 배가 고프거나 하면 언제든지 와서 그냥 먹어. 나중에 엉뚱한 소리 안 할 테니까."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총각이 내 아들 같아서 그래."


눈물이 핑 돌았다. 망망대해에서 거친 파도에 떠밀리며 덧없이 떠다니다가 갑자기 큰 배를 만난 것만 같았다. 세상에.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저 아주머니께서 나를 자식처럼 이렇게 따스하게 맞이해 주신단 말인가. 그래. 이제 됐다. 이제 내 마음의 노를 얻었으니 열심히 휘저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랬다. 내가 아둥바둥거리며 연약한 뿌리라도 내리려고 하는 서울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곳,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곳만이 아니었다. 아까 바라본 서울의 하늘에서도 희끄무레하긴 하지만 별이 뜨고 달이 뜨고 귀뚜라미와 풀벌레가 살아가듯이 서울도 서로 사람끼리 정을 나누며 살아갈 만한 그런 곳이었다.

그날, 나는 밤 10시를 훨씬 넘긴 뒤에서야 달셋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께서 쇼핑백에 정성스레 담아주신 여러 가지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찬장에 넣기 위해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그 쇼핑백 안에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담배 한보루와 조그만 쪽지가 하나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총각!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생각하고 열심히 다녀. 자고로 큰 뜻을 품은 사람에게는 시련이 많다고 했어. 그리고 술이 고프거나 배가 고프면 돈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지 와서 먹어. 내 집이라 생각하고." - 국밥집 아줌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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