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알처럼 콕콕콕 박혀 있는 첫 사랑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96> 마귀할멈의 비단 주머니 '석류'

등록 2004.10.04 14:39수정 2004.10.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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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귀할멈의 루비 주머니라는 전설이 깃든 석류

마귀할멈의 루비 주머니라는 전설이 깃든 석류 ⓒ 이종찬

"빛나야! 해처럼 발갛게 매달린 저 열매가 뭔지 알아?"
"잘 모르겠어. 근데 저것도 먹는 거야?"
"그럼. 제게 바로 마귀할멈의 비단 주머니라고 부르는 석류란다. 저 석류도 익으면 밤송이처럼 벌어지면서 예쁜 씨앗이 드러나거든. 그 씨앗을 먹으면 네가 좋아하는 '새콤달콤'이라는 과자보다 훨씬 더 새콤달콤해."
"나도 한번 먹어봤음 좋겠다. 근데 왜 하필이면 석류를 마귀할멈의 비단주머니라고 불러?"


아주 오랜 옛날, 인도의 어느 마을에 보석을 너무나 좋아하는 마귀할멈이 한 명 살고 있었단다. 그 마귀할멈은 보석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마을의 어린이를 잡아다가 보석과 바꿔치기하곤 했지.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게 했어. 아이들 또한 밖에 나갈 때면 부모님의 손을 꼬옥 잡고 다녀야 했고….

"그럼 아이들끼리 서로 만나 놀 수도 없었겠네."
"그럼. 어른들도 한창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지키느라 일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
"그래서?"
"참다못한 마을사람들이 부처님께 하소연을 했어. 제발 보석에 눈 먼 마귀할멈이 아이들을 잡아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이야."

마을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마귀할멈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마귀할멈 몰래 딸 하나를 감추어 버렸어. 그러자 마귀할멈은 더욱 난폭해지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마귀할멈은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고 불며 야단법석을 피우는 거야. 마을사람들에 대한 해코지는 말 할 것도 없고….

그때 부처님이 마귀할멈을 만났어. 그리고 마귀할멈에게 이렇게 말했어. "너는 천 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겨우 딸아이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무엇이 슬퍼다고 마을사람들을 그리도 괴롭히느냐?"고…. 그러자 마귀할멈은 부처님께 화를 벌컥 내면서 "당신은 위아래 없이 가장 자비스러운 부처님인데, 어찌 그리 물으십니까?"하고 따졌지.

a 석류가 익어가는 가을, 첫사랑의 그 사람에게 긴 편지를 쓰자

석류가 익어가는 가을, 첫사랑의 그 사람에게 긴 편지를 쓰자 ⓒ 이종찬

a 석류는 고혈압, 동맥경화, 부스럼병에 아주 좋다고 한다

석류는 고혈압, 동맥경화, 부스럼병에 아주 좋다고 한다 ⓒ 이종찬


마귀할멈은 대뜸 부처님에게 "내 슬픔조차도 헤아리지 못하는 그런 부처님은 필요 없으니 어서 물러가십시오"라고 했어. 그러자 부처님께서 마귀할멈에게 내기를 걸었지. "내가 네게 루비를 마음껏 가져가게 할 테니 네가 잡아간 마을아이들을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겠느냐? 또한 그렇게 하면 네 자식도 찾아주마"라고.


"그때 마귀할멈이 뭐랬어?"
"당연히 마귀할멈은 좋아라 했지."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귀할멈을 데리고 빨간 루비가 산더미처럼 가득 쌓인 창고로 데려갔지. 그리고 커다란 자루 하나를 마귀할멈에게 주면서 루비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 담아가라고 했어. 마귀할멈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빨간 루비를 자루 가득 담았지."

하지만 마귀할멈은 루비가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었어. 욕심을 너무 많이 냈기 때문이지. 마귀할멈은 그 자루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며 용을 썼지. 그때 잃어버렸던 딸아이가 마귀할멈 앞에 나타난 거야. 하지만 마귀할멈은 루비를 가지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딸아이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루비 자루에 매달려 한껏 용을 쓰던 마귀할멈은 마침내 루비를 창고 밖으로 조금씩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그만 루비가 가득 담긴 자루에 스스로 깔려버리고 말았지. 뒤늦게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이 그 곳으로 달려왔을 때에는 마귀할멈이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그래서?"
"그게 끝이야."
"근데 왜 저 나무를 마귀할멈의 루비 주머니라고 불러?"
"마귀할멈이 죽고 난 그 자리에서 저 나무가 자라났거든. 그리고 저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벌어지면 그때 마귀할멈이 가지고 가려했던 그 루비처럼 아름다운 씨앗이 촘촘히 박혀 있었거든."
"친구들한테도 얼른 알려줘야지~."

비음산(486m, 창원시 사파동) 기슭 곳곳에 띄엄띄엄 서 있는 석류나무에서 빨간 석류가 보석처럼 주렁주렁 영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루비처럼 아름다운 속내를 발갛게 터트리는 석류는 보이지 않는다.

석류! 그래. 그 석류, 란 말만 떠올려도 나는 어린 날 그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첨벙 빠지고 만다. 그리고 금세 입속에 침이 가득 고이기 시작한다. 그때 볼우물을 예쁘게 지으며 내 입 속에 석류 알을 쏘옥 쏘옥 넣어주던 그 가시나의 고사리 손,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살았던 그 가시나의 석류 속처럼 발간 입술이 가물가물 다가온다.

내가 상남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아무튼 그해 가을 나는 새콤달콤한 그 석류 열매를 처음 먹어보았다. 그때 먹은 석류는 속은 붉었지만 노란 탱자맛과 비슷했다. 첫사랑은 새콤달콤한 맛이라고 하더니,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살았던 그 가시나가 내 입 속에 쏘옥 쏘옥 넣어주던 그 빨간 석류알 맛과 그 노란 탱자 맛이 그랬다.

그 가시나는 이상하게도 나만 보면 무얼 주지 못해 안달을 했다. 그 가시나의 눈에 내가 그리도 배고프게 보였을까. 어렴풋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 가시나의 집도 그리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하여튼 그해 도랑가 야트막한 둑에 선 미루나무가 황금빛 잎사귀를 투둑투둑 떨어뜨리고 있을 때 그 가시나가 내게 건네 준 것은 잘 익은 석류였다.

a 석류알은 잘 익은 탱자 속처럼 새콤달콤하다.

석류알은 잘 익은 탱자 속처럼 새콤달콤하다. ⓒ 이종찬

a 그 가시나의 볼처럼 빨갛게 빛나는 석류

그 가시나의 볼처럼 빨갛게 빛나는 석류 ⓒ 이종찬


그 석류는 그 가시나의 집에 있는 우물가 장독대 옆에 자라고 있는 오래된 석류나무에서 딴 것이었다. 빨간 잇몸을 드러내며 하얗게 웃던 그 가시나의 쪽 고른 이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던 그 석류 씨앗은 몹시 새콤달콤했다. 하지만 석류 속은 보기보다 먹을 게 별로 없었다. 그리고 많이 먹으면 시큼한 트림이 꺼억 하면서 올라오기도 했다.

"니 지금 먹는 그기 뭐꼬? 석류 아이가. 또 그 가시나가 주더나?"
"아~아입미더."
"내 참! 그 가시나 그것도. 기왕 주는 김에 좀 많이 따주모 울매나 좋노."
"와예?"
"너거 할배가 혈압이 쪼매 높다 아이가. 그라고 석류 그기 혈압 높은 데만 좋은 기 아이라 부스럼병에도 잘 듣고 너거들 뱃속에 있는 벌레까지도 싸그리 지긴다(죽인다) 아이가."

그 당시 우리 마을사람들은 발갛게 잘 익은 석류를 따다가 약으로 쓰거나 술을 담가 마셨다. 그리고 석류를 많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시집 갈 나이가 된 마을 누님들이 석류를 참 좋아했다. 게다가 아기를 낳으면 빨간 석류 열매가 예쁘게 수놓아진 이불을 덮어주곤 했다. 갓난아기에게 귀신이 붙지 못하게 한다며….

하지만 그때 나는 석류를 많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그 말은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살았던 그 가시나 집에도 오래된 석류나무가 있었고, 그 가시나를 가졌을 때에도 그 가시나의 어머니가 아들을 낳을 거라며 석류를 무척 많이 따먹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가시나의 아버지가 석류를 따는 꿈을 꾸었다고 했던가. 그리고 석류 따는 꿈을 꾸면 예쁘고 똑똑한 딸을 낳는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 가시나는 그 태몽처럼 딸로 태어났고 우리 마을에서 얼굴이 가장 예뻤다. 마음씨 또한 비단 주머니에 든 루비, 곧 석류알처럼 아름다운 빛이 났다. 나한테만 고운 마음씨를 내보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해 가을 나는 그 가시나와 함께 노란 잎이 흐득흐득 지는 미루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잘 익은 석류알을 참 많이도 나눠 먹었다. 니 한 알 내 한 알 하면서 새콤달콤한 석류알을 입에 머금고 우물거리다가 노란 석류알을 도랑물에 툭, 툭, 내뱉곤 했다. 석류 속처럼 발갛게 지는 노을을 나란히 바라보면서….

a 석류는 다산과 다복의 상징이다

석류는 다산과 다복의 상징이다 ⓒ 이종찬

a 석류를 많이 먹으면 아들을 낳고, 석류 따는 꿈을 꾸면 예쁘고 똑똑한 딸을 낳는다고 한다

석류를 많이 먹으면 아들을 낳고, 석류 따는 꿈을 꾸면 예쁘고 똑똑한 딸을 낳는다고 한다 ⓒ 이종찬


"아~"
"아~"
"와 한 알만 주노. 좀 전에 내가 니보다 더 멀리 안 뱉었나. 그라이 요번에는 두 알 도라.(줘)"
"내는 가시나고 니는 머스마 아이가."

나는 지금도 빨갛게 매달린 석류를 보면 첫사랑 이란 세 글자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 도랑가 야트막한 둑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누가누가 이기나 내기를 하면서 도랑물에 석류 씨앗을 툭, 툭 내뱉던 그 가시나가 내 첫 사랑일지도 모른다. 지금쯤 그 가시나도 빨간 석류를 바라보면서 그때 그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속내 깊숙이 첫사랑이란 그 세 글자를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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