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지' 싣고 떠나는 차도 무사하지 못했지

막걸리 차만 알던 시골 아이들, 혼례 때 택시 처음 보고 벌이는 소동

등록 2005.01.31 07:46수정 2005.01.3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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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흥겨운 잔치 준비에 바빴던 아낙들.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군요. 돼지잡으러 갔답니다.

흥겨운 잔치 준비에 바빴던 아낙들.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군요. 돼지잡으러 갔답니다. ⓒ 김용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한 그루 심어놓고 나 몰라라 하지 않고 3년 동안은 해마다 쑥쑥 커가는 나무를 잘랐다. 어서어서 커도 낭랑18세 되려면 얼마 남지 않아 모자랄 판에 자랄 만하면 싹둑 베어버린다. 사람 키 세 배나 되던 아까운 나무를 어쩌려고 여러 줄기가 나와도 쏙쏙 따버리기만 한다.


“아부지, 왜 아까운 나무를 고로코롬 다 짤라분다요?”
“이따구 것은 못써.”
“왜라우? 젤 잘 큰 놈까장 없애불면 글다가 나무가 죽을 것인디라우. 글다 누나 시집 못가겠네.”
“오동나무는 삼년 동안 이렇게 잘라주지 않으면 나무 가운데 구멍이 너무 커서 장롱을 맨들기 힘들단다. 속이 꽉 찬 놈이라야 혀.”

해마다 봄에는 잘라주니 나뭇가지가 곧바로 위로 서고 밑동에서 양분을 한껏 빨아들여 1년만에 지붕 높이까지 올라갔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잎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줄기가 굵어졌다. 아들을 낳으면 논뙈기를 나눠주려고 물텅굴 큰 배미는 큰아들 놈, 갯답 두 마지기는 둘째 녀석 몫으로 떼어 놓는다.

a 눈이 적당히 내리면 객이 더 많습니다. 들일, 산일 하지 않아도 되니 옆마을에서도 부조돈 들고 요기라도 할 겸 몰려오는 거지요.

눈이 적당히 내리면 객이 더 많습니다. 들일, 산일 하지 않아도 되니 옆마을에서도 부조돈 들고 요기라도 할 겸 몰려오는 거지요. ⓒ 김규환

큰애기(시집갈 혼기가 찬 아가씨), 장정이 되어도 혼례를 지금처럼 예식장에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날 잡아서 아무 때나 할 수도 없었다. 농림어업 종사자가 50.5%나 되었던 1971년 농사꾼들은 봄, 가을 농번기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여름엔 김매느라 결혼을 하고 싶어도 크나큰 불상사가 있기 전에는 식을 올리지 못했다.

딱 한철 겨울인 11월 말부터 2월 말까지가 그리 한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일곱 열아홉 처녀총각들은 짝을 지어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어른들은 이때를 넘기지 않고 여의려고 안달이었다. 연애질 하느라 밤새 쏘다니면, 애가 타고 속이 쪼그라드는 건 부모다.

간혹 이때를 놓치면 이듬해 동짓달이나 기약할 수 있으니 청춘남녀들 불장난이 심해지다 보면 같은 마을에서 어른들이 낯짝을 들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함은 물론 오가던 혼담도 쑥 들어가던 시절이다.


중신어미 드나들던 때는 얼굴 한번 보지 않고 폐물이 오가면서 삼돌이 장가가고 순이 시집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추석 때 사방 삼십 리 이내에서 짝을 골라 읍내, 면소재지 다방에서 맞선을 보고 사주에 궁합까지 맞춰보고는 지어준 짝 두 말 않고 신접살림을 차렸던 사람들이 우리의 형과 누이였다.

자유연애는 조선중기 허난설헌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한말 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던져도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이농이 심화되고 산업화가 본 궤도에 올랐던 시기에 비로소 도시에 인구가 급격히 늘자 선남선녀 거리낌 없이 만났으니 30년이 채 안된 사이 풍속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함 사시오.”
“함이요 함.”

a 꼬막 삶는 양에 따라 집안 손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남도는 장꽝(장독대)에 명절이나 대사 한번 치르면 꼬막 껍데기 즐비했습니다.

꼬막 삶는 양에 따라 집안 손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남도는 장꽝(장독대)에 명절이나 대사 한번 치르면 꼬막 껍데기 즐비했습니다. ⓒ 김규환

시집으로 곱게 기른 딸을 보내려는 신부 집은 한 달 전부터 바쁘다. 마침 눈이 왔다. 예단을 맞추고 이불 따위 혼수에 음식 장만까지 모든 일을 접고서 준비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라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치르려고 해도 왁자지껄 못된 신랑 친구들이 들이닥치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패물이 담긴 함이 들어와야 혼인이 성사가 되니 한번은 꼭 치러야할 관문으로 치고 무사히 치르기를 빌며 함진아비와 일당을 가까스로 술과 갖은 술책으로 달래 집안에 모셔온다. 한바탕 왁자지껄 떠들고 나면 혼례 분위기 무르익는다.

전라도지역은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해질녘 혼례를 치르는데 전날 저녁부터 호되게 당해야 했다. 동네 청년들이 새신랑을 시렁가래에 거꾸로 매달아 발바닥 매타작을 하는데 긴긴 나날 밤을 즐겁게 보냈던 동네 처자를 생판 모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혼기가 찼다고 데려가니 즐겁고도 못내 서운한 분풀이가 시작된다.

“아구구 아야아야.”

북어 패듯 발바닥에 핏줄이 서도록 때리는 건 피돌기를 촉진하여 정력이 강해지라고 갖가지 구실을 붙여 광목으로 발모가지를 묶어놓고 물 뿌려가며 때리기를 두어 시간 하면서 술판이 이어진다. 바쁜 세상으로 바뀐 뒤에는 설과 추석 때 처가에 온 신랑을 한번 잡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재미도 오랫동안 끊이지 않아 청년들 마음을 설레게 했다.

초상집과 달리 준비된 행사 혼례는 한갓진 측면이 있었다. 미리 장을 봐서 상하지 않을 음식은 차근히 마련해 두고 때가 닥치면 집집마다 달걀 한 꾸러미와 쌀 한 됫박씩 들고 품앗이 하러 나서니 인심만 잃지 않는다면 그리 고된 일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밥상과 멍석 나르느라 바쁘다. 하루 전에 돼지 두 마리 잡느라 끓는 물과 칼을 들고 냇가로 출동했다. 동네잔치가 벌어지는데 돼지 멱따는 소리 “꽥꽥” 들리면 아이들도 덩달아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엄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쫄래쫄래 따라다닌다.

아이들이 명정(銘旌.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 따위를 쓴 조기)과 영정(影幀) 가마 따위를 들고 가면 100원짜리 한 장 구경하기 힘든 코흘리개들에게 상주들이 기분 좋으면 500원이나 1000원을 주던 초상집만은 못하지만 결혼식 때도 온 동네사람 모두 한 집으로 모여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으니 아이들도 신이 나 있다. 평소 먹지 못하는 음식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아니 좋을쏜가.

a 순대와 여러 부위를  썰어 그릇에 담아놓고 뜨끈한 국물만 퍼서 밥 말아서 먹는 맛이 그만입니다. 잔칫집 음식 중 최고의 맛입니다.

순대와 여러 부위를 썰어 그릇에 담아놓고 뜨끈한 국물만 퍼서 밥 말아서 먹는 맛이 그만입니다. 잔칫집 음식 중 최고의 맛입니다. ⓒ 김규환

열흘 쯤 지난 푹 삭힌 홍어는 당일 아침에 빙초산 듬뿍 쳐서 무채 썰고 미나리 듬뿍 다듬어 넣고 밤, 배 넣어 달짝지근하고 매움하고 칼칼하게 무치면 되고 꼬막은 제사 때와 달리 빡빡 잘 씻어 담가뒀다가 끓는 물 한두 양동이 부어 삶듯 말듯하고 잡채 곁들이고 과일만 깎아내면 잔칫상 훌륭하다.

동네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삶기 전 피창 순대와 내장을 삶아 김치 하나 놓고 밥 말아 먹으면 두어 끼 간단히 해결하고 노란 달걀 휘저어 전을 붙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옆 마을에선 부조(축의금)라도 달고 가려고 식을 올리기 전에 미리 와 멍석을 깔고 앉으면 청년 두엇이 한 조가 되어 멍석 위에 밥과 술상을 내간다.

“아따 홍애가 잘 무쳐졌구만.”
“꼬막도 잘 삶았당께라우. 까서 드셔보싯쇼.”
“자자 한잔 받드라고.”
“어어, 신랑 들어오네. 한번 보께라우?”
“키도 훤칠히 크고 갸름하게 생겼구만.”

마당 한 가득 사람들이 차 있는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산닭 보자기에 묶고 대병에 생나무 가지 꽂고 향 촛대 밝혀 혼례상을 마련한다. 사모관대 쓴 신랑이 기마(騎馬) 대신 차전놀이 하던 동체에 올라 대문을 통해 들어오면 주인이 맞는다.

신랑이 착좌(着座)하여 동편에 서면 옷고름에 연지곤지 다 씻겨나도록 몰래 울었던 족두리만 드러난 신부가 두 시자(侍者) 부축을 받아 초례청에 든다. 절을 하고 합환주 나눠 마시는 긴 시간 혼례가 치러지고 마당엔 꼬막 껍데기 나뒹굴고 아이들은 지 세상이라고 쓸고 돌아다니며 주워 먹기 바쁘다.

나이든 아주머니들은 정지 앞에서 뭐가 그리 불쌍한지 눈물 닦는 모습도 보이고 몇몇 젊은 아주머니들은 아이들에게 떡 한 보자기를 싸주며 신방 문에 몰래 구멍을 뚫어두라는 부탁을 하는데 아이는 흔쾌히 들어준다. 첫날 밤 신랑이 신부 족두리를 내려줬는지, 둘이 껴안고 잠을 잤는지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콜콜 잠이 들었다.

이틀 후 하늘아래 뫼인 깡촌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조그만 차가 한대 들어와 대기하고 있었다. 논에 눈이 녹으려면 당당 멀었다.

“아그들아 요것이 뭣이다냐?”
“자가용!”
“참말이야?”
“그면 머시댜?”
“음~. 요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성아가 그란디 탁시라는 것이여. 탁시(TAXI)! 알것냐?”
"그쿠나.“

a 바닥이 돌뿐이니 가득 실은 이바지에 신랑신부 타고 일보러 나가는 동네 사람 한명 타면 차가 꺼져 바닥에 닿습니다. 아이들은 이 때를 노리고 뒤에 올라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간혹 나무나 볼펜으로 타이어 바람을 빼버리기도 했지요.

바닥이 돌뿐이니 가득 실은 이바지에 신랑신부 타고 일보러 나가는 동네 사람 한명 타면 차가 꺼져 바닥에 닿습니다. 아이들은 이 때를 노리고 뒤에 올라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간혹 나무나 볼펜으로 타이어 바람을 빼버리기도 했지요. ⓒ 김용철

마을 주막에 둥그런 막걸리 통 실어 나르던 세발 자동차는 봤지만 생전 처음 본 택시에 오색 종이테이프가 나풀거린다. 아이들은 택시 트렁크 위에 올라 쿵쾅쿵쾅 굴리며 논다. 우리도 학교에 가지 않은 지 오래라 회전 그네도 탈 수 없으니 이 때 뭐든 한번 타봐야 되는 것 아닌가.

“야~. 정말 호습다(그네나 말 따위를 탈 때 흔들거려 짜릿한 기분이 들 때 쓰는 순우리말).”
“글다 기사 아자씨 오실랑가 모른께 얼렁 내려와야. 얼렁!”
“째까만 더 타고.”

“이 놈들! 안 내려올텨?”

동네를 샅샅이 알고 있는 우리들은 회관으로 들어가 방을 통과하여 나무비늘 속에 잠시 숨어 있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한과와 과일 등 시댁으로 가져가 폐백으로 쓸 이바지를 몇 개 석작에 그득그득 담아 싣는다.

곧 떠날 모양이다. 악동들이 가만히 있을까 보냐. 부릉부릉 신랑신부 싣고 떠날 택시 뒤에 바짝 달라붙어 100여 미터를 잡고 따라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울퉁불퉁 돌부리가 튀어나온 비포장도로라 잘 달리지도 못한다. 풀풀 날리는 흙먼지에 아이들이 파묻혀버렸다.

“야-!”
“얼레리꼴레리 누구누구는 *뺑꼬틀었대~!”

*뺑꼬틀다: 남녀간 정을 통했다는 걸 아이들이 속되게 표현하던 말. 은어의 한 가지.

덧붙이는 글 | 혼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쓸까 합니다. 이 기사는 월간 <여행스케치> 3월호 "동무들의 악다구니"에 실릴 예정입니다.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삽화를 그린 김용철 님은 <강아지를 부탁해> <공포탈출일기> <아싸! 똥파리> <느낌표> <아이러브햄스터> 등 50여 권의 어린이 만화집을 냈고 최신작으로 <학교 짱의 22가지 행동>이 있다. 홍어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혼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쓸까 합니다. 이 기사는 월간 <여행스케치> 3월호 "동무들의 악다구니"에 실릴 예정입니다.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삽화를 그린 김용철 님은 <강아지를 부탁해> <공포탈출일기> <아싸! 똥파리> <느낌표> <아이러브햄스터> 등 50여 권의 어린이 만화집을 냈고 최신작으로 <학교 짱의 22가지 행동>이 있다. 홍어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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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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