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때 묻지 않은 곳이 어디 있어?"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신양해수욕장

등록 2005.04.01 10:57수정 2005.04.0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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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제주도에 때 묻지 않은 곳이 어디 있어?"

남녘의 해변에 서 있으니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사람마다 휴양지의 의미는 각기 다르겠지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휴양지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휴가차 제주에 들린 친구는 "제주도에서 가장 때 묻지 않은 곳을 데려다 달라"고 주문했다. '때 묻지 않은 곳'.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낀 때는 보지 못하면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나서는 교활함과 이율배반적인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제주도에 때 묻지 않은 곳이 어디 있어?"

그러면서도 친구에게 가장 아름다운 곳을 추천하고 싶었던 나는 손바닥 지도를 펼쳐 보며 때 묻지 않은 휴양지를 찾느라고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도 위에 점 하나가 그려진 아주 작은 해변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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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포구가 아름다운 마을 신양리

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 신양해수욕장. 포구가 아름다운 마을로 이름 붙여진 신양리 마을을 기억해내곤 동쪽으로 차를 돌렸다. 봄 바다는 동쪽으로 갈수록 더욱 짙은 코발트색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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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신양리 마을 어귀에 접어들자 겨울을 지켜왔던 키 작은 유채꽃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사람들은 대부분 해수욕장을 여름에 찾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해질 무렵 찾아간 신양해수욕장은 어느 휴양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해변의 이미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시간마다 화면이 바뀌어 지는 동영상을 보는 듯, 쪽빛 바다는 코발트색으로, 코발트 색이 다시 비취빛으로 물들어가는 요술. 봄마다는 시간에 따라 요술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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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백사장에 떠 있는 초승달


오후 6시가 넘어서자 저무는 해를 받아 그 묘미가 더해간다. 제주도 동쪽 마을의 길모퉁이 해변, 온천지가 바다뿐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에게 바다는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달은 저물어가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신양해수욕장 백사장엔 초승달이 떠 있었다. 반원형의 백사장은 초저녁 서쪽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바다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모래사장 역시 바다 위에 타원형을 그리며 초승달을 만들었다. 특히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까지 내 마음에 초승달을 비춰 준다.

초승달, 해도 지지 않은 서쪽 하늘에 눈썹처럼 떠 있는 초승달을 본 사람이라면 신양해수욕장의 풍경을 그려 볼 수 있을 게다. 너무나 맑고 고요해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해변, 해질녘 해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까지 고요해진다.

저무는 3월의 해는 여우 꼬리만큼 짧았다. 연하고 고운 모래사장을 걸어 보니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간다. 마치 눈 속을 걷는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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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날마다 해가 뜨는 성산 일출봉이 "풍덩-" 바다 속에 드러누워 있다. 성산 일출봉이 날마다 해가 뜨는 곳이라면, 신양해수욕장은 날마다 해가 지는 곳이라고나 할까. 해질녘 해변의 아름다음에 흠뻑 취해보는 순간, 저녁 해는 벌써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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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요술을 부리는 해안선 ,수평선, 그리고 지평선. 저만큼 떠 있는 수평선 위에 하느님은 구름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온종일 하늘을 지키던 구름도 고단한지 동쪽 바다 끝에서 휴식의 이부자리를 폈다.

뭉게구름은 해를 집어 삼키고 저녁 노을을 잉태했다. 저녁 노을은 3월의 마지막 해를 안주 삼아 바다를 삼켜 버리고 술 취한 듯 상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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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바다 건너 구름나라에는 봄이 찾아 왔을까?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을 탓하며 움츠린 목을 길게 빼 보지만 아직 바람은 훈풍이 아니다. 마을 방파제 끝에 희미하게 서 있는 등대는 바다를 지키랴, 신양리 마을을 지키랴 정신이 없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이 아늑하다.

신양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라야 300m나 될까? 백사장을 끝까지 한 바퀴 다 돌아도 저녁 해가 지지 않을 해변. 백사장의 어깨 넓이 또한 100m 달리기를 하면 금방이라도 테이프를 끊을 것 같이 협소하다.

파도가 몰리고 온 바다 생물들이 백사장에 그림을 그렸다. 심심한 백사장은 바다 속의 전설을 듣고 있다가 대답을 하는 듯 모래알을 뿌려준다. 알몸을 드러낸 모래사장 위로 철새들의 유희가 시작된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덧붙이는 글 | 신양리 마을은 포구가 아름다운 마을이며, 섭지코지 길 모퉁이에 신양해수욕장이 있다. 아주 작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주변 관광지로는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혼인지 등이 있으며,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동회선 일주도로 12번국도)→구좌→성산 고성→신양해수욕장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덧붙이는 글 신양리 마을은 포구가 아름다운 마을이며, 섭지코지 길 모퉁이에 신양해수욕장이 있다. 아주 작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주변 관광지로는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혼인지 등이 있으며,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동회선 일주도로 12번국도)→구좌→성산 고성→신양해수욕장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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