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야 물럿거라! 물회 나가신다

<음식사냥 맛사냥 26> 어부들의 허기진 뱃속 든든하게 채워주던 '물회'

등록 2005.06.06 15:17수정 2005.06.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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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울진물회 드세요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울진물회 드세요 ⓒ 이종찬

날씨가 점점 무더워진다. 조그만 일에도 쉬이 짜증이 난다. 게다가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속이 자꾸만 쓰리다. 차가운 물을 꿀꺽꿀꺽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에 찌들린 쓰린 속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무언가 더부룩한 속을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씻어내리는 그런 음식은 없을까.

바로 이럴 때, 권하고 싶은 음식이 물회다. 물회는 어부들이 푸르른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물고기를 곧바로 썰어 여러 가지 채소와 고추장을 얹은 뒤 물을 부어 먹었던 음식이다. 그러므로 물회는 바닷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쉬이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워낙 도로가 잘 뚫려 있어, 이른 새벽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물고기를 곧장 물차로 운반한다. 그런 까닭에 도심 한가운데서도 살아 퍼덕이는 싱싱한 물고기를 쉬이 맛 볼 수 있다. 굳이 물회를 먹기 위해 따로 짬을 내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까지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이다.

a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실비자연산횟집'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실비자연산횟집' ⓒ 이종찬


a 물회는 처음 어부들이 고깃배 위에서 끼니를 떼우기 위해 먹었다고 한다

물회는 처음 어부들이 고깃배 위에서 끼니를 떼우기 위해 먹었다고 한다 ⓒ 이종찬

"어부들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을 때 파도에 기우뚱거리는 고깃배 위에서 마땅히 뭘 해 먹을 수가 있었겠니껴? 물회는 어부들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끼니를 떼우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음식이니더."

물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항물회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울진물회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아니, 어쩌면 요즈음에는 포항물회보다 울진물회가 더 널리 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울진이 고향인 남효선(47) 시인은 "물회는 고기가 싱싱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며, 제대로 된 물회를 먹으려면 바다 또한 싱싱한 곳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그동안 물회로 널리 알려진 포항이 공업단지 등으로 바다가 시들시들해지면서, 울진물회가 포항물회의 명성을 앞지르고 있다는 그 말이기도 하다. 남 시인은 "예전에는 울진이 교통이 불편했던 탓에 일반인들에게 대게는 영덕, 물회는 포항으로 인식되게 된 것 같다"고 가늠한다.

남 시인은 "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물회는 오랜 숙취로 인한 속풀이도 할 수 있고,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바닷가 사람들의 음식"이라고 못박는다. 이어 "이곳 사람들은 속풀이, 하면 대부분 해장국보다 물회를 찾는다"며, 오죽했으면 서울로 간 친구 아버지가 싱싱한 횟감을 구할 수 없어 매일 아침마다 얼음물에 채소를 집어넣고 고추장을 풀어 속풀이를 했겠느냐고 반문한다.


a 물회는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물회는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 이종찬


a 도다리와 오징어를 썰어넣은 물회

도다리와 오징어를 썰어넣은 물회 ⓒ 이종찬

"서울사람들은 물회를 여름철에만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사시사철 즐겨먹니더.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철에는 오징어물회를 먹고, 붉은 새우가 많이 잡히는 철에는 새우물회를 먹니더. 그러니까 물회의 제맛은 싱싱한 해물과 고추장 맛에 있다 이 말이니더."

지난 2일(목) 아침 10시. 간밤에 제법 많이 마신 술로 인해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찾은 '실비자연산횟집'(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187-1). 검푸르게 넘실대는 수평선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낡고 허름한 횟집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추원도씨가 "오늘은 도다리하고 오징어가 떼깔이 좋니더"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추씨에게 "이 집이 울진에서도 자연산만을 고집하는 유명한 횟집이라면서요?"라고 묻자 "기왕이면 같은 가격 주고 자연산을 먹는 게 낫지 않겠니껴?"라며 약간 생뚱맞은 표정을 짓는다. 마치 지금껏 속고만 살아왔느냐, 그렇게 이 집을 못 믿겠다면 그냥 자리에서 일어서도 좋다는 그런 투다.

뽀오얀 백합국물과 얼큰한 매운탕이 덧붙혀 나오는 횟밥(8천원)을 시켜먹을까. 아니면 시원한 국물맛이 끝내주는 생대구탕(7천원)이나 생복국을 시켜먹을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남 시인이 "속풀이는 뭐니뭐니 해도 물회"라며, 생대구탕이나 생복국은 울진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 않느냐며 은근히 물회에 쐐기를 박는다.

a 공기밥은 처음부터  말아먹어도 되고 물회를 건져먹은 뒤 말아먹어도 된다

공기밥은 처음부터 말아먹어도 되고 물회를 건져먹은 뒤 말아먹어도 된다 ⓒ 이종찬


a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건져먹는 물회의 맛!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건져먹는 물회의 맛! ⓒ 이종찬

"물회는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오니더. 이곳 울진에서도 물회를 시키면 대부분 얼음과 과일, 채소 등이 따로따로 나온다 아이니껴. 식성에 따라 넣어먹어라는 그 얘기니더. 하지만 이 집은 물회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아예 횟감 위에 과일과 여러 가지 채소를 얹어서 내니더."

한동안 남 시인에게 이 집 물회 예찬을 듣고 있을 때 식탁 위에 공기밥 한 그릇과 함께 김치, 다시마나물, 무말랭이, 콩나물무침이 놓인다. 이어 커다란 국그릇에 넉넉하게 담긴 물회 한 접시가 놓이고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커다란 물통, 시뻘건 고추장이 차례대로 식탁 위에 줄을 선다.

언뜻 회비빔밥처럼 보이는 물회. 물회가 푸짐하게 담긴 국그릇에는 오징어와 도다리, 얇게 썬 배와 무, 보라색 양배추, 당근, 땅콩, 김가루, 볶은 참깨가루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다. 얼음물을 붓지 않고 그냥 이대로 고추장만 듬뿍 얹어 그대로 쓰윽쓱 비벼먹어도 맛이 참 좋을 것만 같다.

그때 남 시인이 내 앞에 놓인 물회 그릇에 고추장을 듬뿍 떠서 올리더니 얼음물을 듬뿍 붓고 얼음 몇 조각을 얹어준다. 이제 휘휘 저어 먹기만 하면 된다는 투다. 속으로 그럼 공기밥은? 하며 잠시 망설이자 남 시인이 "처음부터 밥을 말아먹어도 되고, 물회를 건져 먹은 뒤 공기밥을 말아먹어도 되니더" 한다. 물회를 먹는 순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식성에 따라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a 시뻘건 물회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새콤달콤하면서도 금세 속이 후련해진다

시뻘건 물회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새콤달콤하면서도 금세 속이 후련해진다 ⓒ 이종찬

밥은 나중에 말기로 하고, 우선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는다. 캬 소리를 내며 벌겋게 변한 물회 국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자 새콤달콤한 맛과 함께 순식간에 입 천장이 얼얼해진다. 고추장과 어우러진 얼음물이 독특한 시원한 맛을 낸다. 어릴 적 시원한 우물물에 사카린을 넣은 뒤 간장을 조금 타면 느껴지는 그 독특한 맛처럼.

소주 한 잔 다시 입에 털어넣고 채 썬 과일과 채소 속에서 숨박꼭질을 하고 있는 도다리와 오징어를 건져 먹는 그 맛도 정말 일품이다. 아삭아삭 씹히는 과일과 채소 사이에서 쫄깃쫄깃 고소하게 씹히는 도다리와 오징어의 기막힌 맛! 첫 사랑의 그 여자와 눈빛을 마주치며 나눠먹었던 솜사탕의 맛도 이보다 더 깊은 맛은 나지 않았으리라.

틈틈이 떠먹는 물회의 새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도 끝내준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물회를 모두 건져 먹고 난 뒤 참깨가 동동 떠다니는 시뻘건 국물에 공기밥을 통째 말아 후루룩거리며 먹는 그 맛도 간밤 숙취에 시달린 쓰린 속을 후련하게 씻어내린다. 시원한 물회를 먹으며 가끔씩 바라보는 검푸른 바다! 그 수평선은 세상사 온갖 시름을 몽땅 일직선으로 풀어버린다.

"물회는 먹을 때도 시원하지만 다 먹고 나서도 마치 속을 물로 씻어낸 것처럼 시원하게 풀린다 아이니껴. 시원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뜨거운 해장국을 먹은 것처럼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음식은 물회뿐이니더."

a 물회를 먹고 바라보는 검푸른 바다는 세상 시름을 다 털어준다

물회를 먹고 바라보는 검푸른 바다는 세상 시름을 다 털어준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호산-부구터미널-느린 걸음 2~3분-실비자연산횟집(054-782-0356)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호산-부구터미널-느린 걸음 2~3분-실비자연산횟집(054-782-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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