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86

남한산성 - 핏빛 돼지

등록 2005.06.07 17:02수정 2005.06.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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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나를 따라 오라!"

병사들이 안정을 되찾자 마부대는 자신이 데리고 온 기병들을 데리고 산을 둘러 나갔다. 장판수는 전열에 서서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밀려드는 청의 병사들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나마 그 사이 뒤에서 전열을 정비한 조선군이 활을 쏘아 방패의 엄호를 받지 못하는 청병들을 꺼꾸러뜨리기 시작했다. 이 바람에 장판수와 맞닥뜨린 청의 병사들이 잠시 혼란에 빠졌다.


"모두 뒤로 달리라우! 어서!"

장판수의 고함소리와 함께 육박전을 벌이던 조선군은 청의 병사들을 놓아두고 정신없이 진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청군은 활을 쏘며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길 양편에 둘로 나뉘어 서 있던 조선 포수들이 전열에서 침착하게 이들을 노려보며 화약을 재어 넣고 총구를 겨누었다.

"쏴라!"

앞에선 군관의 고함소리에 포수들은 일제히 총을 쏘았고 또 다시 청병들은 조선군의 진열을 돌파하지 못한 채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청의 보병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방패와 사수들을 앞세워 활을 쏘아 응사했다. 조선군 또한 다시 나올 여유가 없다보니 잠시 동안 치열한 육박전은 멈추었다.

"그만 쏘아라! 적의 화살은 언덕 위까지 닿지 않는다!"


홍명구의 명령에 잠시 총소리가 멈추자 그 틈을 타 청의 기병이 말 위에서 활을 쏘며 달려들었다. 그때를 노리고 풀숲에 숨어있던 갈고리 창을 든 조선 보병이 달려들어 이리저리 창을 엇걸었다. 갈고리에 베이고 걸린 청의 기병은 잇단 낙마하며 진격이 저지당했고 그 위로 각기 자신의 병사들을 구하려는 청과 조선군의 화살이 우수수 떨어진 후 육박전이 재개되었다. 그 사이 마부대는 자신이 이끄는 정예병을 이끌고 언덕위로 돌아가 부하들에게 말에서 내려 모두 방패를 들것을 명했다.

"방패가 너무 부족합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미쳐 가져오지 않은 이들이 많습니다."


부장의 말에 마부대는 말위에 얹힌 모포를 끌러내어 던져주었다.

"방패가 없는 이는 모포를 둘러 몸을 감싸라. 이곳을 내려가면 바로 조선군의 진영이다! 총탄과 화살이 빗발칠 터이니 이를 막아내며 저곳을 뚫어야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빨리 가려는 말의 성질로 인해 자칫하면 제풀에 낙마하는 이들이 속출할 것을 염려한 마부대가 짜낸 계책이었다. 청의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혹은 등나무로 엮은 방패를 들고 혹은 모포를 감은 채 무기를 들었다.

"기를 들어 전열의 우리 부대에 신호를 보내어라!"

언덕위에서 깃발이 나부끼자 화살을 쏘며 소극적으로 임하던 청병들까지 북과 징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포수와 사수들은 각기 화약과 화살을 준비해 정신없이 청군을 향해 난사했다.

"이때다! 모두 조선군의 진영을 향해 돌진하라! 어물거려서는 아니 된다!"

마부대의 명령에 뒤쪽에 있던 청군이 내리막길을 따라 미친 듯이 조선군의 진지로 쳐 내려갔다. 후방에서 교대되어 어수선하게 분산 되어있던 조선 포수들은 그 광경을 보고 혼비백산 하여 흩어졌고 일부는 간헐적으로 화살을 쏘았으나 청군의 방패와 모포에 막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적이 뒤로 돌아 왔습니다!"
"후방에 병마사가 있지 않은가! 병사들을 정돈해 대비하고 있지 않았더냐!"

뒤가 어수선 해지자 전열에 있던 조선군이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모든 청병들은 조선군의 진지와 부딪혀 치열한 육박전을 벌이게 되었다. 홍명구는 다시 한 번 유림을 찾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홍명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병마사께서 병사들과 함께 진지를 이탈했습니다!"
"뭐라!"

홍명구의 탄식과도 같은 대답과 함께 전열의 조선군 포수와 궁수들은 마침내 모조리 와해되어 버렸고 청의 병사들은 활을 쏘아대며 버티고 있는 조선군 천 여 명을 에워싼 채 서서히 조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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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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