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91

2부 - 끝나지 않은 싸움

등록 2005.06.14 17:04수정 2005.06.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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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싸움

“대체 우리는 어찌 살라고!”
“아이고 아이고!”


인조가 청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는 의미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세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치른 후 남한산성에서 나와 초라하게 창경궁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주친 백성들은 모두 통곡을 하며 땅을 쳤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인조의 용포를 끌어당기며 곡을 하기도 했는데 말리는 이조차 없었다.

백성들의 통곡은 인조를 위한 통곡이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한탄이었다. 이를 보는 인조인양 속이 편할 리 없어 흐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나마 앞에 나서 통곡이라도 하는 이들은 순박한 이들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하기도 했다.

“멀쩡한 왕을 몰아내더니 하늘이 죄를 내린 것이지!”
“그래도 말은 타고 가는 구먼! 백성들은 피난 다니느라 발이 다 부르텄는데”

인조는 인정(人定 : 밤 12시 전후) 때가 되어서야 창경궁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참혹한 전갈을 받았다.

“도성의 여염집은 모조리 불에 타 버렸고 길거리에는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놓여 있습니다. 한양에는 몽고병들이 모여 있는데 그 기세가 흉흉하옵니다.”


도승지의 말에 인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몽고병들이 남아 있는 것인가?”
“애초 청병이 우리 땅으로 올 때 많은 몽고병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몽고의 식량이 부족해 그들이 변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한 겨울을 우리 땅에서 진치고 있을 거라 하였습니다. 그들이 노략질을 좋아하고 사람 죽이기를 쉬이 여기니 큰 근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슨 말인가!”


인조는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지금으로서는 청에게 어느 무엇도 요구할 처지가 아니었다. 청의 부대가 돌아가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볼모로 잡아가는 대신 몽고병들을 남겨두었다는 것은 자칫하면 조정의 존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인조는 날이 밝는 즉시 궁으로 찾아온 용골대와 마부대를 만나 몽고병들을 내보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정 그렇다면 몽고인들을 도성 밖으로 내 보내겠소. 내일 황제 폐하께서 심양으로 돌아가시니 전송을 나오시오.”

용골대는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고 인조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도성 밖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는 조치였다.

“뭐냐 이거! 이까짓 것들! 불을 질러 없애버려라!”

도성 밖으로 나간 몽고병들은 오히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아무 곳이나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했다. 남병사 영장(營將) 한기영은 40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풀숲에 몸을 숨기고서는 그 광경을 치를 떨며 바라보았다.

“네 놈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미 전쟁은 조선의 패배로 끝났지만 전투조차 치르지 못한 숱한 병사들은 그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뒤늦게 남한산성 인근까지 진출했다가 삼전도의 항복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더 이상의 진군을 그친 남병사 서우신과 북병사 이항 휘하의 군사들은 진지에 머물러 있으라는 지휘관의 명에도 불구하고 횡포를 부리는 몽고병들과 충돌하곤 했다.

“저 놈들은 분명히 말을 몰고 이 길로 들어올 것이다. 그때 내가 신호를 보내면 일제히 화살을 쏜다.”

한기영은 마른 침을 삼키며 병사들과 함께 몽고병들이 자신들이 매복한 길목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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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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