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아 물럿거라, 장어국 납신다

<음식사냥 맛사냥 33>여름철 스태미너 음식으로 인기 짱 '장어국'

등록 2005.07.07 15:47수정 2005.07.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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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땀 많이 흘려 기운 없을 땐 장어국 한 그릇 드세요

땀 많이 흘려 기운 없을 땐 장어국 한 그릇 드세요 ⓒ 이종찬

초복(15일)이 다가오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복날, 하면 보신탕과 삼계탕을 보양식으로 즐겨 먹어왔다. 하지만 여름철 땀으로 빠져나간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음식으로는 보신탕과 삼계탕 말고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복날이라고 해서 굳이 보신탕과 삼계탕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철에는 어떤 음식을 보양식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을까. 복중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보신탕과 싸워 이길 만한 그런 음식이 있을까. 있다. 서로 웃통을 벗어던지고 링에 오르면 말복이 지날 때까지 싸워도 서로 승부가 나지 않을 만한 그런 음식, 그 음식이 바로 장어국이다.


장어를 포옥 삶아 체에 거른 뒤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고 만드는 장어국은 보신탕, 삼계탕과 더불어 여름철 대표적인 스태미너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했으면 예로부터 어린이들에게는 장어구이나 장어국을 자주 먹이지 말라고 했겠는가. 한창 성장하는 어린이가 장어로 만든 음식을 자주 먹으면 성적으로만 너무 조숙할 우려가 있다는 것.

a 장어국은 보신탕, 삼계탕과 더불어 여름철 대표적인 스태미너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장어국은 보신탕, 삼계탕과 더불어 여름철 대표적인 스태미너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 이종찬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장어는 "오장이 허약함을 보강하고, 성생활을 과로 하게 하여 폐결핵이 된 것을 다스리며, 허리와 다리를 따뜻하고 강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장어는 여성의 냉대하증과 음부 가려움증을 치료하며, 몸이 허약하여 죽어가던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특히 여름철 산란기를 앞둔 장어는 고단백 식품으로 알콜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서 술안주로도 아주 좋으며, 하혈이나 피부 미용에도 좋아 남녀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식품이라고 한다. 게다가 장어에는 노화를 방지해주는 비타민E와 암을 예방하는 비타민A도 풍부하다. 장어 100g에 들어 있는 비타민A는 계란 10개, 우유 5ℓ와 맞먹을 정도란다.

"푸름아! 퍼뜩 큰 냄비 하나 가지고 온나."
"왜요? 할머니."
"왜는 뭐가 왜야? 요즈음 너거 아빠가 땀도 많이 흘리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영 얼굴이 푸석푸석하게 보여서 장어국을 끓였지. 너거 아빠가 장어국 먹고 기운 좀 차리라고."


a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장어는 "오장이 허약함을 보강하고, 성생활을 과로하게 하여 폐결핵이 된 것을 다스리며, 허리와 다리를 따뜻하고 강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장어는 "오장이 허약함을 보강하고, 성생활을 과로하게 하여 폐결핵이 된 것을 다스리며, 허리와 다리를 따뜻하고 강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 이종찬

지난 일요일(3일) 저녁. 같은 집 안채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께서 큰딸 푸름이를 불러 갓 끓인 맛있는 장어국 한 냄비와 제피가루, 방아잎을 곁들여 주셨다. 평소에도 장모님께서 끓여주시는 추어탕이나 장어국을 아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장어국을 바라보자 금세 입에 침이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장어국과 추어탕을 참 맛깔스럽게 잘 끓이셨다. 식당에서 먹는, 시레기만 듬뿍 넣은 그런 장어국과 추어탕은 아예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장모님께서는 내가 아내와 결혼을 마악 했을 때에도 맏사위가 육고기나 생선보다 장어국과 추어탕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처가에 들를 때마다 장어국과 추어탕을 번갈아가며 끓여주셨다.

장모님께서는 장어국을 끓일 때 반드시 민물장어를 사용했다. 갯장어는 민물장어처럼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끔 추어탕을 끓일 때에도 양식은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며 반드시 자연산 미꾸라지를 고집하셨다. 그리고 장어국은 여름철에, 추어탕은 가을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며 겨울과 봄철에는 좀처럼 끓여주지 않으셨다.


a 장어 100g에 들어있는 비타민A는 계란 10개, 우유 5ℓ와 맞먹을 정도다.

장어 100g에 들어있는 비타민A는 계란 10개, 우유 5ℓ와 맞먹을 정도다. ⓒ 이종찬

장모님께서 장어국을 끓이는 방법은 꽤 까다로웠다. 먼저 살아 꿈틀대는 민물장어를 커다란 고무대야에 넣고 소금을 뿌린 뒤 호박잎으로 박박 문질렀다. 그렇게 해야 민물장어의 몸에 묻어 있는 끈적끈적한 진이 깨끗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그리고 가마솥에 살아 꿈틀거리는 민물장어를 넣고 찬물을 가득 부은 뒤 2~3시간 정도 푹 고았다.

장어가 포옥 삶기는 동안 준비하는 재료도 참 많았다. 배추와 고사리, 토란대, 머위대, 숙주나물은 물론 붉은 고추, 매운 고추, 고춧가루, 대파, 부추, 마늘, 된장 등 일일이 헤아리기조차도 힘들 정도였다. 하긴 음식은 손맛과 정성이라고 했다. 장모님께서 그렇게 일일이 손으로 재료를 다듬고 정성을 들이니 그 어떤 음식이라도 맛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근데, 한 가지 참으로 신기한 일은 장모님께서 그렇게 재료를 거의 다 준비하는 시간이 가마솥에서 장어를 고우는 시간과 꼭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료를 모두 손질한 장모님께서는 푹 삶은 장어를 가마솥에서 건져내 체에 올려놓고 손으로 슬슬 문질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체에는 장어의 뼈만 남고 장어살은 뽀얀 국물이 우러난 가마솥 안으로 툭툭 떨어졌다.

a 매콤하고 톡 쏘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국그릇에 담긴 장어국에 빻은 마늘과 붉은 고추, 매운 고추, 제피가루, 방아잎을 조금 더 넣는 것이 좋다

매콤하고 톡 쏘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국그릇에 담긴 장어국에 빻은 마늘과 붉은 고추, 매운 고추, 제피가루, 방아잎을 조금 더 넣는 것이 좋다 ⓒ 이종찬

"장어국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많이 들어가야 깊은 맛이 나는기라. 식당에서 파는 장어국에는 시레기하고 숙주, 고사리만 잔뜩 들어 있더만. 그라이 아무리 좋은 장어를 사용한다캐도 별로 맛이 안 나지. 장어국에는 반드시 토란대와 머위대가 들어가야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있고 깊은 맛도 나는기라."

그랬다. 장모님께서 끓이시는 장어국에는 반드시 토란대와 머위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장어국에 양파를 넣으면 시원하고 매콤한 맛보다 단맛이 난다며 양파를 넣지 않고 부추를 넣으셨다. 나처럼 평소에도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혀끝을 톡 쏘는 매콤하고도 시원한 맛을 좋아하지, 음식에 단맛이 나는 것을 싫어한다며.

그날, 장모님께서 꼬박 반나절을 걸려 끓여주신 장어국은 어릴 때 내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그 장어국과 꼭 같은 깊은 맛이 배어 있었다. 나는 온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구수하고도 시원한 장어국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한 그릇은 국수를 말아먹고, 한 그릇은 밥을 말아 먹었다. 어찌나 그 맛이 기막히던지 두 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몰랐다.

a 오늘 저녁 장어국 한 그릇 어때요

오늘 저녁 장어국 한 그릇 어때요 ⓒ 이종찬

"아빠! 장어국이 그렇게 맛이 있어?"
"응. 장어국에 국수 한 그릇 말아먹고 나면 피로가 확 풀리고, 장어국에 밥을 말아먹고 나면 온몸에서 힘이 불끈불끈 솟는 것만 같아."
"그럼 장어국을 세 그릇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배가 볼록한 올챙이가 되겠지 뭐."
"아빠! 이제 그만 먹어. 나는 배불뚝이 아빠는 딱 질색이란 말이야."


여름철 보양식 장어국, 이렇게 끓여보세요
민물장어 사용해야 깔끔하고 깊은 맛 우러나

▲ 토란대, 머위대 등을 넣고 잘 끓인 장어국
ⓒ이종찬

재료/ 민물장어 혹은 바다장어. 배추, 토란대, 고사리, 머위대, 숙주, 대파, 양파, 붉은 고추, 매운 고추, 마늘, 고춧가루, 된장, 국간장, 제피가루, 방아잎

1. 장어를 소금으로 깨끗이 씻어 끈적거림을 없애고, 쓸개를 뺀 뒤 가마솥에 넣고 찬물을 부어 1시간 정도 푹 끓인다.

2. 푹 끓인 장어를 망에 넣고 꼭 짜면 살은 아래로 빠지고 뼈만 추려진다.

3. 끓는 물에 배추, 토란대, 고사리, 머위대, 숙주를 넣고 살짝 데치고, 대파와 붉은 고추, 매운 고추는 어슷썰기, 양파는 채썬다. 이때 고추의 씨는 모두 빼는 것이 좋다.

4. 망에 잘 걸러진 장어국물에 된장, 고춧가루를 풀고 센불에서 끓이다가 살짝 데친 배추, 토란대, 고사리, 머위대, 숙주를 넣고 다시 센불에서 팔팔 끓인다.

5. 국물에 든 야채가 완전히 물러졌다 싶으면 채썬 양파, 송송 썬 붉은 고추, 매운고추, 빻은 마늘, 제피가루를 넣은 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6. 잘 끓인 장어국을 국그릇에 담은 뒤 곱슬곱슬하게 지은 공기밥과 깍두기, 파김치, 송송 썬 매운 고추, 빻은 마늘, 방아잎, 제피가루와 함께 상에 차려낸다.

※맛 더하기/ 장어국이 팔팔 끓을 때 청주를 약간 뿌리는 것도 비린 맛을 없애주며, 시원하고 매콤한 맛을 즐기려면 양파를 빼고 송송 썬 부추를 넣은 것도 조리의 지혜.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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