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인들은 후원막국수를 좋아한다?

<음식사냥 맛사냥 38>여름철 맛의 황제 '후원막국수'

등록 2005.08.04 14:15수정 2005.08.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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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 짱 '후원쟁반막국수'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 짱 '후원쟁반막국수' ⓒ 이종찬

땡볕 더위 한꺼번에 식혀줄 음식은 없는가

땡볕이 바늘처럼 살을 콕콕 찌르는 7월 중순. 나는 손수건을 흠뻑 적신 채 서울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날이 하필 초복 날이어서 그런지 그 어느 날보다 모질게도 무더웠다. 닭고기나 개고기를 파는 식당 주변에는 줄을 길게 선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보양식이라도 먹으며 이 지독한 무더위를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가 보다.


복날, 보양식도 좋지만 좀 더 색다른 먹을거리는 없을까. 이 무더위를 한꺼번에 싹 가시게 만드는 그런 음식. 그때 문득 김학민형이 떠올랐다. 김학민형은 1980년대 초 한길사 초대 편집주간을 맡아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의 효시를 이룬 출판기획자이자 도서출판 학민사 대표를 맡고 있는 우리나라 출판민주화운동 1세대다.

하지만 김학민형은 나보다 훨씬 먼저 <한겨레 21> 등에 우리나라의 맛집을 다니며 취재한 '한국의 전통 맛집'을 연재했다. 그리고 지난 해 1월에는 김학민 음식 이야기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2004년 1월 20일, <오마이뉴스>)란 맛 기행 책까지 펴내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그야말로 맛의 달인이기도 하다.

"형님! 이 지독한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그런 음식은 없을까요? 삼계탕이나 보신탕 같은 그런 보양식 말고요."
"그으래. 그러면 지금 당장 강변역 테크노마트로 가 봐. 그곳에 가면 '후원쟁반막국수'라고 있어. 그 집에 가서 막국수나 메밀국수 한 그릇 먹고 나면 더위가 싹 가실 걸. 특히 신선한 채소로 만드는 양념 맛이 정말 일품이지."


a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 들머리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 들머리 ⓒ 이종찬


a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 ⓒ 이종찬

지난 7월 15일(금) 오후 3시. 시인 이승철(47), 출판업을 하고 있는 김규철(47) 선생과 함께 동서울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는 강변역으로 향했다. 2호선 지하철 안은 냉방이 아주 잘 돼 시원시원했지만 전철 밖으로 나오자 후끈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김학민형이 소개한 <후원쟁반막국수> 집을 떠올리자 어느새 입에서는 단침이 괴어올랐다.

지하철 2호선 강변역 앞에 자리 잡고 있는 테크노마트 지하 1층 테크노쇼핑몰에 들어서자 저만치 먹자거리가 보였다. 그때 이승철 시인이 "테크노마트와 더불어 태어난 이 먹자거리는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 거리에는 한국의 별미집을 한군데 모아놓았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값 또한 싸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


새로운 막국수 맛 만들기 나선 두 자매

테크노마트 먹자거리에 들어서자 수많은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중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집이 하나 눈에 띈다. '저 집에서 무얼 팔기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곳으로 다가가자 놀랍게도 그 식당이 바로 김학민형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던 그 <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이었다.


도대체 이 집 막국수가 무슨 특별한 맛이 나기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단 말인가. 그것도 젊은 연인들끼리. 사실, 그동안 나는 막국수 하면 흔히 나이 드신 어른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알았다. 그리고 막국수는 그저 배가 출출할 때 참으로 한 그릇 후루룩 후딱 먹어치우는 그런 가벼운 음식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근데, 이곳에 와서 눈으로 직접 살펴보니 그런 나의 통념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 8년 경력의 이 집은 1990년대 중반 테크노마트 신축과 함께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집이 처음 생길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리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단다. 왜냐하면 그 때, 그 때 바뀌는 주방장의 경력과 손맛에 따라, 또 주방장의 하루 기분에 따라 맛이 일정치 않고 달라졌기 때문이다.

a 새콤달콤한 비빔막국수

새콤달콤한 비빔막국수 ⓒ 이종찬


a 이 집에서 독특하게 개발한 막국수 양념을 만드는 재료

이 집에서 독특하게 개발한 막국수 양념을 만드는 재료 ⓒ 이종찬

그 때문에 이 집을 두 번째로 맡게 된 임은순(55세), 임은희(49세) 자매는 전국의 맛있다는 막국수집 기행부터 나섰다. 막국수의 고향이라는 춘천은 물론 여주 천서리 막국수촌과 양평 옥천리 막국수집 등 약 100여 곳을 다녔다. 그리고 맛이 괜찮다고 여겨지는 식당이 있으면 그 식당 주방장에게 맛의 비결을 묻기도 했고, 양념을 몰래 싸가지고 와서 성분 분석을 하기도 했단다.

게다가 지금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임은희 실장은 음식솜씨를 타고 났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조리를 얼핏 눈여겨보기만 해도 그 맛을 고스란히 만들어낼 정도의 눈썰미와 손맛을 가지고 있었다. 두 자매는 그렇게 <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만의 양념 개발에 들어갔고, 마침내 사과와 양파, 대파를 순국산 토종 고춧가루에 버무려 숙성한 독특한 양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두 자매는 새로운 양념 만드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 양념을 밑그림으로 하여 기존의 막국수집과의 차별을 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새콤달콤한 맛을 새롭게 만들어냈고, 그 맛에 싱싱한 상추와 양배추, 무김치, 오이, 당근, 참기름, 땅콩, 건포도 등과 삶은 계란 반쪽을 얹었다. 마침내 우리 조상들의 옛 맛을 되찾은 <후원쟁반막국수>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서울 미인들은 쟁반막국수를 좋아한다?

백문이불여일식(百聞而不如一食)이라고 했던가. 우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하게 나온 '비빔막국수'(4천원)부터 맛보았다. 첫 맛이 깔끔하고 새콤달콤하면서도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국수 가락이 혀끝에 착착 들러붙는다. 국수를 먹으며 가끔 떠먹는 맛국물의 깊은 감칠맛도 끝내준다. 금세 막국수 한 그릇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a 동치미 국물이 시원한 냉물 막국수

동치미 국물이 시원한 냉물 막국수 ⓒ 이종찬


a 한 그릇을 시키면 둘이서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쟁반막국수

한 그릇을 시키면 둘이서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쟁반막국수 ⓒ 이종찬

비빔막국수 한 그릇을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다 먹고 난 다음, 김규철 선생이 먹고 있는 냉물막국수(4천원)도 맛보았다. 냉물막국수는 평양냉면 맛과는 좀 다른 독특한 맛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 맛은 집에서 담근 동치미국물의 시원한 맛에서 나오는 듯하다. 또한 국수 가락을 뽑을 때 좋은 메밀을 쓰고, 알맞게 잘 삶아서 그런지 씹으면 씹을수록 쫀득쫀득하게 달라붙는다.

이 집의 특징은 국수마다 색다른 감칠맛이 나는 것도 그만이지만 무엇보다도 푸짐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국수 두 그릇을 시키면 네 사람이 먹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값 또한 몹시 싸다. 한 그릇을 시키면 4천원을 받지만 두 그릇을 시키면 7천원, 세 그릇을 시키면 1만원을 받는다. 게다가 국수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덤으로 더 얹어주기도 한다.

주방을 맡고 있는 임은희 실장은 "저희 집 막국수가 강남의 젊은 처녀들에게 웰빙식품으로 알려지면서 후원막국수를 자주 먹으면 미인이 된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다"고 귀띔한다. 이어 후원막국수는 자주 먹어도 뱃살이 찌는 게 아니라 오히려 뱃살이 빠진다고 덧붙인다. 그 이유는 이 집 막국수의 재료인 메밀이 지니고 있는 저칼로리 때문이라는 것.

그 신묘한 맛의 황제, 후원쟁반막국수

이 집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후원쟁반막국수'의 맛도 기막히다. 후원쟁반막국수는 이 집에서 개발한 독특한 양념에 콩나물과 상추, 양배추, 오이를 올린다. 그리고 포옥 삶아 기름을 쏘옥 뺀 돼지고기를 잘게 찢어 올리고, 무김치와 건포도, 잘게 빻은 땅콩가루까지 얹혀 나온다. 그냥 막국수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섭섭할 정도다.

나와 함께 이 집을 찾은 이승철 시인은 쟁반막국수를 먹으면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니, 숨 쉴 틈 없이 입으로 마구 들어가는 쫄깃한 국수 가락 때문에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쟁반막국수를 정신없이 먹고 있던 이승철 시인이 마침내 젓가락을 내려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은 국물까지 후루룩 다 들이킨다.

a 쫄깃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인 메밀국수

쫄깃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인 메밀국수 ⓒ 이종찬

"이 시인, 거참 이 집 막국수는 여름철 맛의 황제라고 부를 만하네. 이토록 맛있는 막국수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야? 이 무더위에 홍복을 누렸네, 그려."

"막국수에 버무린 콩나물 맛도 좋고, 또 땅콩가루까지 얹으니, 신묘한 맛이 나네. 양껏 먹어 배는 부르는데 젓가락이 나도 모르게 막국수로 자꾸 가니…, 이것 참."


이승철 시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규철 선생이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한마디 거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집에서 자랑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맛이 있다. 깔끔하고도 깊은 맛이 일품인 메밀국수다. 김 가루를 얹은 갈색 메밀국수를 맛국물에 잠시 담갔다 입에 넣으면 쫄깃하게 씹히면서 혓바닥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강원도 전방 부대 군인들이 휴가 때나 입대하기 전에 왔다가 제대하는 날 또 다시 찾아와요. 1인분을 시켜도 두 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치 양이 푸짐하니까 군인들의 엄청난 식욕을 충족시켜주는가 봐요. 요즈음에는 젊은 연인들도 자주 오지요. 아마도 후원막국수의 새콤달콤한 맛이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딱인가 봐요."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지하철 2호선 강변역(동서울터미널)-테크노마트 지하 1층 테크노쇼핑몰 먹자거리-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02-3424-1137)

덧붙이는 글 ☞가는 길/지하철 2호선 강변역(동서울터미널)-테크노마트 지하 1층 테크노쇼핑몰 먹자거리-후원쟁반막국수모밀집(02-3424-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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