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범인의 이름, 왜 하필이면 Mr. Black일까?

수업시간 'Black'의 다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등록 2006.04.08 16:00수정 2006.04.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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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폭풍 치는 밤이었다. Smart 탐정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총성처럼 들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Mr. Black의 전화였다. “저의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그는 소리쳤다. Mr. Black은 노인이었고 홀로, Smart 탐정 사무실에서 바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Mr. Black의 집에(이웃사람들은 그 집을 검은 저택이라고 불렀다) 도착해서, 차를 주차하고, 정문을 향해 빗속을 달려갔다. 그가 초인종을 누르자, Mr. Black이 나왔다. “그 일이 대략 10분 전에 일어났어요”라고 그 노인이 말했다. Smart 탐정은 수첩을 꺼내면서, “발생한 상황을 저에게 정확히 말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저는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거의 잠에 빠져들 무렵이었지요. 그때 거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어요. 침실 화장대에서 권총을 꺼내어, 거실로 나갔어요. 집안이 너무 어두워서, 무언가에 부딪쳤고 큰 소리를 냈어요. 제가 거실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열린 뒷마당 쪽 창문으로 달아났어요. 겨우 벽에 있는 그림자를 볼 수 있었지요. 저는 창으로 가서, 어둠을 향해 총을 쐈어요. 그때 무언가가 뒷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어서 또다시 발사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웃집 개였어요. 제가 당신에게 전화를 했을 때가 그때였어요”라고 Mr. Black이 설명했다.’

“개가 총에 맞았나요?”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요?”라고 노인이 말했다.
“그 개는 말썽꾼일 뿐이어서 남의 밭을 망쳐놓기나 하는데요.”

Mr. Black은 아이들과, 특히 개를 싫어하기로 유명했다.’


고등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추리소설 <검은 저택에서의 추리(Mystery at the Black Mansion)>의 앞 대목이다. Smart 탐정은 Mr. Black의 진술에서 몇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첫째는 벽에 있는 그림자를 보았다는 그의 진술이다. 집안은 완전히 어두웠고(너무 어두워서 무언가에 부딪칠 만큼)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보일 수 있었을까?

두 번째는 총성이다. Smart 탐정은 단지 한 발의 총성을 들었는데 Mr. Black에 따르면 적어도 두 발을 쏘았다고 했다. 탐정의 사무실이 검은 저택에서 겨우 한 불록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는 발사된 총성을 모두 들었을 것이다. 의심을 품은 Smart 탐정은 집안으로 들어가서 Mr. Black에게 보통 권총을 어디에 보관하는지 묻는다. 그는 침실화장대 안이라고 말하고는 열쇠로 화장대 서랍을 열고 상자를 꺼내어 권총을 보여준다. Smart 탐정은 나무상자에 들어있는 권총을 살펴보더니 Mr. Black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Mr. Black, 그 사건이 발생한 후 침실로 돌아갔습니까?”
“아니오. 저는 가능한 한 빨리 당신에게 전화하려고 서둘렀지요.”
“Mr. Black, 당신을 체포합니다. 당신을 동물학대죄로 고발합니다.”

그는 어떻게 Mr. Black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Smart 탐정이 Mr. Black의 침실에 들어갔을 때, 권총상자는 치워져 있었고 화장대 문이 잠겨 있었다. 강도를 잡으려고 누군가가 서두르고 있었다면, 그 사람은 총을 집어서 그냥 갔을 것이다. 그는 상자를 치우고 서랍을 잠그려고 머뭇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Mr. Black은 침실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는 단지 이웃집 개를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개를 죽였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그는 강도사건에 대한 전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었다.

내 독서취향으로 말하자면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든다는 추리소설이나 무협소설과 관련된 통과의례도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형이 읽고 있던 <괴도루팡>을 <피도루팡>으로 잘못 읽어 가족들을 배꼽 잡게 했던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희끗한 중늙은이가 된 오늘날까지 내가 읽은 추리소설을 모두 합해도 서너 권이 될까 말까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머리 회전이 빠르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을 듯싶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수업준비를 하기 위해 과제분석을 할 때부터 나는 소설의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Smart 탐정이 Mr. Black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대목에서 나는 궁금증을 품지 않을 수 없었고, 나중에 그 전말을 알게 되었을 때는 실제로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연발했던 것이다. 다시 읽어보면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많았는데 왜 그것을 쉽게 눈치 채지 못했을까? 이런 아쉬움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 주기도 했다.

그날 수업을 끝내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영어사전이나 인터넷을 검색하여 black과 white의 뜻을 각각 10개씩 찾아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왜 그런 숙제를 내 준 것일까? 그것은 소설의 재미와는 달리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물을 학대하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그려진 범인의 이름이 하필이면 흑인을 암시할 수 있는 Mr. Black인가?

영어사전에서 black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검은, 흑색의’라는 일반적인 뜻 외에도 ‘엉큼한, 속이 검은, 음흉한’이란 뜻도 있다. 작가는 그 점을 착안하여 범인의 이름을 Mr. Black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애당초 black이란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 장본인들이 바로 백인 작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은 학생들이 해온 숙제를 모아본 것이다.

black: 1. 검은, 흑색의 2. 암흑의, 아주 어두운 3. 오염된, 더러운 4. 피부가 검은, 흑인의, 흑인종의 5. 비관적인, 암담한 6. 불길한, 흉조의 7. 성난, 험악한, 8. <극 등이> 병적으로 이상한 , 불유쾌한 9. 사악한, 속이 검은, 흉악한 10. 불명예스러운 11. <지역 등이> 불행을 입은 12. 부정한, 비합법적인 13. 악마의, 악마에 관계된 14. 엉터리인 15. 보이콧대상의 16. 미완성의 20. 비밀의 21. 재앙의 22. 엉큼한 23. <미 속어> 질 좋은 마리화나 24. 공갈치다(블랙메일) 25. 암거래의 26. 험상궂은 27. 흑자의 28. 순전한, 철저한(철저한 공화당원) 28. 크림을 치지 않은 29. 상복(喪服) 30. 얼룩, 오점.

31. look black 뚱해 있다.
32. black looks 험악한 얼굴
33. black mood 절망감
34. put on a black 큰 실수를 하다
35. black gratitude 배은망덕

white: 1. 흰, 하얀, 백색의 2. 순백, 결백, 무구 3. 백인, 백인의, 백인종의 4. (인쇄) 공백, 여백 5. (흑인에 대하여) 백인 지배(전용)의 6.(공포, 분노, 질병 등으로) 창백한 7. 투명한, 무색의
8. 눈이 오는, 눈이 쌓인 9. 공명정대한, 신용할 수 있는, 관대한 10. 운이 좋은, 행운을 가져오는 11. 결백한, 더럽혀지지 않은 12.<거짓말, 마법 등이> 선의의, 해(害) 없는 13. (감정 등이) 격렬한 14. 정직한, 성실한, 공정한

15. a white witch 행복을 돕는 마녀
16. a white sister 백의의 수녀
17. a white day 길일(吉日)
18. He is the whitest man I've ever seen. 저렇게 결백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아직 우리나라가 정치적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 요즘 언론보도를 통해서 ‘검은 돈’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영어로는 'black money'가 되겠다. 왜 하필이면 black인가? 딴은 그럴 법도 하다. 검은 돈은 어두운 돈이요, 어두운 돈은 부정하고 비합법적인 돈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black이 '부정한, 비합법적인'이란 뜻으로 통용되는 것이 무슨 문화적인 편견이나 음모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black을 ‘악마의, 악마에 관계되는’이라고 풀어놓은 것도 시비 거리가 되지 못한다. 악마가 어둠의 제왕이기도 하지만, 악마에게 어울리는 옷감을 고르라면 열이면 열 검정 색을 고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봄직하다. 만약 예수님의 머리칼 색깔이 우리 황인종이나 흑인종처럼 검정색이었고 해도 black을 감히 ‘악마의, 악마에 관계되는’이라고 풀이할 수 있었을까?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끔찍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서양의 유명 화가들이 중동에서 태어난 동양인 예수의 모습을 갈색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서양인으로 그려놓았는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 black이 지니는 긍정적인 면은 없는 것인가? 딱 하나가 있다. 회계용어인 ‘흑자(surplus)’이다. 그것이 전부다. 영어사전을 다 뒤져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간혹 black의 뜻을 ‘순수한, 철저한, 순전한’이라고 설명해놓은 사전도 있는데 이때의 '순수한'이란 white가 지니는 질감과는 다른 ‘100%’의 순전함을 의미한다. '100% 순수한' 악마가 좋은 예가 되겠다.

그렇다면, 사전적인 뜻은 그렇다 치고 우리 생활 속에서 black이 뜻하는 긍정적인 뜻이나 이미지는 없는 것일까? 나는 학생들과 함께 그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한 아이가 즉각 나섰다. 그런데 대답이 다소 엉뚱했다.

“밤이요.”
“밤이라니?”
“밤은 깜깜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밤에 휴식을 취할 수 있고요.”
“와, 정말 그러네!”

“검정 옷은 따뜻해요.”
“그렇지. 색감도 그렇고 실제 태양빛을 잘 받아들이니까 따뜻하기도 하겠다.”
“남자가 검은 양복을 입으면 멋있어요.”
“그렇지. 어딘지 완숙한 느낌을 주지.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야. 멋쟁이 여성은 검은 옷만 입는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그런데 그런 멋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보고 옷이 더럽다고 하면 말이 안 되겠네?”
“맞아요.”

“흙은 검은 색에 가깝나요? 흰색에 가깝나요?”
“검은 색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흙색과 흑색을 혼동해서 쓰기도 하지. 세상에 흙이 없으면 살수 있을까요?”
“살 수 없습니다.”
“흙은 곧 생명이지요. 우리 몸의 성분도 흙의 성분과 똑 같은 것 알지요?”
“예. 압니다.”

“참, 모든 색을 합치면 무슨 색이 되지요?”
“검은 색이 됩니다.”
“그럼 검은 색은 종합적인 색이네요. 균형이 잡힌 안정된 색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그리고 검은 색은 어딘지 강하고 튼튼해 보이지 않나요?”
“검은 색이 좀 스트롱하죠.”
“맞아. 그런데 검은 색이 지닌 장점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작가들은 검은 색의 부정적인 면들만 부각시켰을까요? 그것은 혹시 오랜 세월 동안 백인들이 이 세상을 지배해온 것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은가. 만약 흑인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거나 백인과 다를 바 없는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black이란 뜻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black: 1. (흙처럼) 생명력이 있는, 생명을 북돋아주는 2. (검정 옷처럼) 따뜻한 색감의, 훈훈한 3. (젊은이의 검은 머리칼처럼) 흑발의, 튼튼한, 건강미가 넘치는 4. 종합적인, 균형 잡힌, 완성된 5. 굵은 저음의, 남성적인

6. look black 튼튼하고 건강해 보이다
7. black looks 안정된 얼굴
8. black mood 자신감
9. put on a black 대박을 터뜨리다
10. black gratitude 결초보은(結草報恩)


지금 언론은 미국 풋볼의 영웅 하인즈 워드의 방한으로 연일 뜨겁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낀다. 그의 방문을 계기로 혼혈인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도 우선은 반갑다. 선거를 눈앞에 둔 정치권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해도 어차피 하루아침에 세상이 순결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2005년 한 해 외국인과의 결혼이 전체 결혼의 13.8%를 차지한다고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0~2004년까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모두 12만 8762명, 거기에 외국인 며느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전라남도라고 하니 머지않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도 혼혈아(다문화권이 좋겠다) 학생이 입학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날 나는 black에 대한 작가의 그릇된 편견과 하인즈 워드의 방한의 의미에 대하여 짤막하게 말해준 뒤에 수업을 이렇게 마무리 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한 가지 색이 아니지요. 보라색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색감들의 조화가 저를 황홀하게 합니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좀 안정감이 없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보라색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못지않게 녹색도 좋아하고 갈색도 좋아하고 흰색도 좋아하고 검정색도 좋아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사실 저는 싫어하는 색깔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늘 행복한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고통이나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싫어하는 것보다도 사랑하는 것들이 많다보면 그들과 함께 쉽게 이겨낼 수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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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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