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예쁜 아이 편애는 문제없을까

미움이 가는 아이, 그러나 미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

등록 2006.04.21 12:14수정 2006.04.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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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얼레지 군락-미운 꽃이 없듯이 미운 아이도 없다

얼레지 군락-미운 꽃이 없듯이 미운 아이도 없다 ⓒ 안준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세 명의 여학생을 만났다. 낯이 익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그 중 한 아이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넸는데 자꾸만 말끝을 웃음으로 흐리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두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몇 번인가 되물었지만 끝내 의사소통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게 조금 미안했는지 정색을 하며 목례를 했다. 그런데 두어 발짝 발을 떼기가 무섭게 웃음을 터뜨리며 또 한번 자지러졌다. 마치 웃음 바이러스에 걸린 아이들 같았다.

세 아이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것. 못난이 삼총사라고 하면 딱 좋을 만큼 세 아이 모두 얼굴이 밉상이었다. 게다가 나에게 말을 건네 놓고 저희들끼리만 아는 비밀이 있는지 웃어죽겠다고 깔깔거리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내 눈에 예뻐 보일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거나 짜증스런 표정을 짓기는커녕 여유 있게 웃음까지 보여주며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까지 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매너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오후 내내 복도에서 만난 세 아이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긴 했다. 세 아이의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식한 것. 그렇다고 그것을 내색한 것은 아니었으니 아이들은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그런 마음의 자연스러운 작용까지 죄라고 할 수 있을까?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었더라도 불편했을까?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내 자신만은 부인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세 아이 얼굴이 못생겼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정서적인 작용을 한 점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참을성 있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그 순간이 썩 즐겁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교사라고 아이들 앞에서 늘 즐거워야할 의무는 없다. 문제는 즐겁지 않은 그 이유였다. 복도에서 만난 세 아이가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었다고 해도 내가 즐겁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제자들의 외모에 대해서 섬세하고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얼굴이 조금 예쁜 아이와 조금 밉상인 아이가 내 눈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아이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면서부터 생긴 일이다. 아이들은 내게 외모나 어떤 조건보다 하나의 동일한 생명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편애를 해서는 안 되는 교사로서 그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한 때 편애가 심한 교사였다. 그렇다고 얼굴이 예쁜 아이만 좋아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음씀씀이가 곱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내가 편애하는 주 대상이었다. 하긴 누군들 인간미 넘치고 탐구심 있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편애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누군가를 편애한다는 말은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a 낙안민속촌에서 만난 아이들

낙안민속촌에서 만난 아이들 ⓒ 안준철

내가 얼굴이 예쁜 아이를 편애하지 않고 마음이 예쁜 아이를 편애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비난을 면할 수 있을까? 세상 상식 속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식과 진실은 다르다. 상식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진실의 세계에서는 엄연한 죄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교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자넨 왜 그렇게 그 아이를 미워하나?"
"그 애는 정말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요."
"자네는 얼굴이 예쁘지 않다고 학생을 미워해 본적 있나?"
"그럼 선생도 아니지요."


"그러면 인간성이 나쁜 아이들은 미워해도 된다는 말인가?"
"당연하죠.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인간성을 고치든가 해야지요."
"얼굴이 예쁘지 않은 것과 인간성이 나쁜 것과 어느 편이 그 아이에게 더 불행할까?"
"그야 인간성이 나쁜 것이 불행하지요."
"그럼 자넨 더 불행한 아이를 미워하는 셈이 아닌가?"
"예?!"

후배교사는 잠시 할말을 잃은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조금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반에 그 애보다 가정환경이 더 나쁜 아이들도 많아요."
"가정환경도 좋은데 인간성이 나쁘다면 그 아이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겠구먼."
"맞아요. 그 아이는 본래가 인간성이 나쁜 애라고요."
"본래가 인간성이 나쁜 아이라면 그런 유전적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인데, 그것이 그 아이의 잘못인가?"
"예?!"

정말 미워하는 학생이 있다면?
"미워하세요. 그리고 후회하세요"


그때 후배교사가 지어보였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고맙게도 그는 나와 나눈 몇 마디의 대화로 상식의 세계에서 진실의 세계로 발을 옮겨온 것이었다. 언젠가 이런 대화의 내용을 나를 초청해준 전교조 소속 새내기 교사들 앞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한 여교사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교사도 사람인데 정말 미움이 가는 아이가 있으면 어떡하죠?"
"그럼 미워하세요. 그리고 후회하세요."

그 말에 장내가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잠시 후 나는 강의를 이렇게 갈무리했다.

"미운 짓을 한 아이를 미워하는 것은 때로는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미움으로 아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지요. 그래서 후회하라는 말씀을 드린 건데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다만, 이 세상에 미워해야할 아이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나도 그날 복도에서의 일을 오후 내내 후회하고 반성했지만 나 자신을 심하게 책망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그런 공의의 사랑은 사실 인간으로서는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신의 사랑이 아닌가. 그러니 연습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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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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