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전거 여행... 이유는 로저 클레멘스

자전거 세계 일주 2 - 미국 뉴저지에서

등록 2007.05.06 13:50수정 2007.05.06 15:33
0
원고료로 응원
천진함이 가득 담긴 아이같은 눈으로 기내에서 연신 북미의 광활한 대륙을 빼꼼히 쳐다본 나는 이제 시작될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Vision Trip,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기 위한 여행)의 첫 걸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자전거 세계일주의 출발지로 21세기 신라이벌 미국과 중국을 놓고 고민했었다.

둘의 차이점은 단지 시계방향으로 돌 것인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 것인가의 차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내 가슴 속의 작은 영웅, 로저 클레멘스의 혼이 담긴 양키스 스타디움을 생각하고는 단번에 뉴욕으로 결정해야 했다. 그의 아스트랄한(황당한, 대단한) 플레이가 기억나는 양키스 스타디움의 격렬한 열성주의가 나의 몸보다 의식을 먼저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긴장하지 마. 긴장할 필요 없어. 혹시 힘들면 부딪히지 말고 잠시 쉬었다 가는 거야. 넘어지면 어때? 당당하게 손 내밀 용기를 가지라구. 네게는 너를 믿어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 사람들과 항상 함께라는 걸 잊지 말자. 이 봐, 문(Moon). 신이 너에게 왜 자전거로 지구 한 바퀴라는 환상을 보여주셨는지 잘 생각해 봐. 하나님은 어디엔가 너만을 위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해 놓으신 거거든. 이제 시작이야. 자, 보라구. 넌 지금 네가 예전에 상상하며 소망한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잖아. 잘해 보자구. 잘 할 수 있을 거야.'

장대한 태평양을 건너 들어선 시애틀의 밤하늘은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지방에서 잘 숙성시킨 1907년산 샤또(Ch^ateau) 와인에 사파이어를 담가놓은 듯 유난히 검고 맑아 보였다. 이제 막 북미대륙에 들어선 나를 수줍게 맞이한 2508개의 별들은 일제히 환한 불을 켜고 있었으며, 로키의 설산들은 언제라도 와서 익스트림 등반을 즐겨보라며 수직에 가까운 자신의 등을 거만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마침내 약속의 땅에 입성한 것이다!


지나치게 큰 정원 속 나무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a 따사로운 햇살 속 뉴저지의 아침 풍경

따사로운 햇살 속 뉴저지의 아침 풍경 ⓒ 문종성

뉴저지의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더없이 상쾌하기만 하다. 청설모는 사람의 인기척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예의 귀여운 몸짓으로 이곳저곳 생기 넘치게 뛰어 다닌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하얗고 빨간 이름 모를 꽃잎들이 나풀거리다가 이내 눈 내리듯 떨어지고, 정원에는 민들레꽃들이 푸른 잔디 사이에서 도드라진 개성을 감추지 않으며 시선을 잡아 끈다.

a "청설모야, 어디 숨었니?"

"청설모야, 어디 숨었니?" ⓒ 문종성

전형적인 미국식 중산층의 모습을 하고 있는 뉴저지의 마을들은 대개 단층 혹은 이층 구조로 된 정원 딸린 슬라브 주택이이다. 마당에는 어느 집이나 벤치가 놓여 있어서 운치를 더해주고, 이런 저런 나무와 꽃들로 정원을 단장해 놓은 모습이 일상의 여유로움을 대변해 준다. 가끔 지나치게 큰 나무들이 집을 가리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 안에 있는 나무라 하더라도 반드시 당국에 신고한 후 베어내야 하고 또 그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시차에 의한 피곤함으로 이틀 간 쉬고 나서 미국 현지 적응차 처음으로 뉴저지 아침 산책에 나섰다. 햇살을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하다. "실례합니다만 버거킹이 어딨죠?" 아주 간단한 기초회화부터 서서히 미국 문화에 적응해 나간다. 일단 패스트 푸드점의 위치가 확인되면 주문을 위해 또 한 번 어눌한 한국식 억양으로 현지 언어에 대한 적응 관문을 뚫어야 한다. 한적한 길에서 눈웃음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 것도 소박한 즐거움이다.

게으르게 발걸음을 움직이다가 은빛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멋진 여성에게 시선을 한 번 뺏긴 다음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잡일을 하고 있을 스페인계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에 시선을 고정해 본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법체류의 불안한 위치에서 오는 조급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똑같이 사회의 일원으로 또 가정의 부모로 남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뉴저지 주민이기 때문이다.

해외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것들

오늘은 토요일. 집집마다 '차고 세일(garage sale)'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옆집 할머니는 그림 몇 점과 각종 살림살이를 마당 앞 잔디에 깔아놓으며 새 주인을 맞을 채비를 한다. 욕심나는 물건이 있어도 짐이 무거워지고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이중의 부담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구입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아이쇼핑으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 된다. 이렇듯 '가든 스테이트(garden state)'라는 별명을 가진 뉴저지 주는 자연과 그 자연 속에 조화롭게 살아가는 아늑한 라이프 스타일을 누리고 있다.


a 주말을 맞이하여 차고 세일을 하는 모습.

주말을 맞이하여 차고 세일을 하는 모습. ⓒ 문종성

사실 뉴저지는 도시가 아니라 주(州)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구가 뉴욕과 인접한 곳에 밀집해 있으며, 매일 뉴욕과 인근 필라델피아로 왕복하는 유동 인구가 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뉴저지라고 하면 으레 뉴욕 맞은 편에 있는 도시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미국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 뉴저지(Ten a fly, New Jersey)에 머물면서 이번 미국 횡단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체크하고 있다.

해외 자전거 여행에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는 물론 자전거 용품이다. 이동할 수단인 자전거와 각종 물품을 담을 수 있는 패니어(자전거용 가방)를 비롯해 신체 보호를 위해 걸치는 져지와 고글, 헬멧, 그리고 각종 액세서리와 수리 공구 등이 필요하다.


둘째는 캠핑 용품이다. 물가가 비싼 미국과 캐나다의 사정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캠핑은 자연과 사람에게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강력한 매개가 된다. 세계 곳곳에서 써먹을 수 있게 3계절용 텐트와 침낭을 준비하고 이동 중 간단히 취사할 수 있는 물품 등을 장만했다.

셋째는 각종 디지털 제품이다. 성실한 여행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록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슴 속에 혼자만 담아 두는 여행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해외 자전거 여행은 체험과 더불어 정보 공유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 보존은 필수다. 노트와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떠난 선배들의 세대와는 사뭇 다르게 디지털 노마드가 가지고 가는 용품에는 소형 노트북과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외장 하드, MP3, USB 등이 따라간다. 기나긴 여정 동안 잘 버텨줘야 할텐데 가장 신경쓰이는 장비들이다.

마지막으로는 각종 서류 및 증이다. 여권과 항공권, 국제학생증 등을 챙기고, 해외 체크 카드와 일부 나라에서 요구하는 황열병 예방 접종 카드를 예로 들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남미와 아프리카 경유를 위해 A형 간염 예방 접종과 장티푸스를 추가로 맞았다. 유사시를 대비해 상비약을 챙기는 것도 있지 않았다.

이밖에 자신의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 자전거 여행 용품 준비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모든 장비를 두루 갖춰 준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흠없는 완벽한 여행 준비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 부족한 여백을 스릴 넘치는 즐거움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는 통찰이야말로 귀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a 로드 바이크를 이용해 아침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로드 바이크를 이용해 아침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 문종성

실패가 두려워 실패한 인생이 되기 싫었던 혈기 넘치는 20대. 젊은 혈기는 어떻게 준비해도 거칠고 실수 투성이가 되기 마련이다.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과 교감하면서, 여러 사건에 부딪히면서 이 부분을 다듬고 감싸 안아 줄 위로가 깊은 깨달음을 얻길 기대한다. 쉽지 않은 자전거 세계일주를 통해 세상이 나에게 전하는 세찬 바람같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다음 주에는 미국 횡단에 앞서 일주일 동안 세계의 심장, 뉴욕 맨해튼에서 다양산 인간군상과 문화들을 살펴볼 계획이다. 맨해튼이 세계의 축소판이라니 이만큼 입맞에 딱 맞는 적응장소도 없다. 이런저런 상념으로 뉴저지의 차분한 아침을 가로지르고 나니 어느 새 나도 모르게 햇살은 머리 위로 내려 앉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의 홈페이지는 www.vision-trip.net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의 홈페이지는 www.vision-trip.net입니다.
#뉴저지 #세계일주 #미국 #뉴욕 #문종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