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야생동물 수십 마리가 죽은 곳입니다"

달내일기(116)-작은 도로 동물 사고 많이 일어나, 펼침막 등 대책 필요

등록 2007.08.18 14:32수정 2007.08.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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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고라니가, 오늘은 너구리가 죽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오늘(18일) 아침, 3일과 8일에 서는 입실장에 가는 길이었다. 웬만하면 집에 있는 반찬으로 때우려 했으나 오후에 손님이 온다는 바람에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여름에 찾아오는 손님만큼 미운 손님도 없다지만 2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찾아온다는데 그냥 대충 차려줄 수 있으랴.

햇살은 덥다 못해 뜨거워도 풀빛은 더욱 푸르고, 매미 소리 새소리도 요란하다. 자연은 더위를 즐기는데 사람만 더위를 피하는가보다 여기며 시장까지 10여 분 걸리는 거리를 반쯤 내려와 굽잇길을 돌았을 때 갑자기 급정거를 해야 했다. 길가에 시커먼 짐승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어서였다.

처음에는 웬 동물인지 퍼뜩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이미 오가는 차에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치여선지 '피떡'이 돼 있었다. 만약 내 차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차가 있었더라면 나도 치고 나갔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굽잇길을 막 돌아서는 지점이었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으리라.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울산에 모임이 있어 갔다 늦어지는 바람에 밤길에 차를 몰고 오늘 아침과는 달리 아래에서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때도 저 앞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놓여 있어 맞은편에 차가 오지 않는 관계로 중앙선을 벗어나 지나치는데 아무래도 짐승인 것 같아 내려와 보니 고라니였다. 정통으로 머리를 받힌 듯 골이 깨어져 죽어 있었다.

한여름일수록 '찻길동물사고'로 목숨 잃는 야생동물이 는다


도시에서는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은 걸 자주 보듯이 요즘 시골길에선 이런 사고를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영어로는 야생동물이 길에서 차량 등에 치여 죽는 걸 '로드킬(road-kill)'이라 하나 '국립국어원(www.korean.go.kr)'에서 우리말 다듬기의 일환으로 만들어낸 표현은 '찻길동물사고'다.

이 '찻길동물사고'가 다른 계절보다 여름철에 더욱 잦고, 특히 요즘처럼 열대야에 시달릴 때 더욱 많이 발생한다. 이유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강한 불빛에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은 야생동물의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찻길동물사고'를 사람들이 의식하게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환경보호단체에서 그 원인을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그 해결방안이 대부분 도로 건설로 생태축이 단절된 백두대간과 9개의 정맥 주변에 치우쳐 있다.

지금 '찻길동물사고'는 이제 그런 큰 도로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사는 달내마을은 외남선(경주시 외동읍과 양남면을 잇는 지방도로)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있는데 승용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이 도로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결코 이곳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찻길동물사고'는 일차적으로는 해당 야생동물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야생동물 사체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급격한 차선 변경과 급정차 등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함은 물론, 사체를 목격한 어린이나 노약자들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방안을 세워야 한다. 물론 '찻길동물사고'를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로를 없애는 것이나 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도로는 늘어가고 차량 통행이 많아질 것이므로 사고는 더욱 잦아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작은 도로 '찻길동물사고'를 막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가장 먼저 나온 방안이 생태도로를 만드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속도로나 국도 등의 큰 도로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지방도 등에는 설치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수천수만에 이르는 도로 모두에 다 설치하려면 예산을 확보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작은 도로에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본다. 우선 떠오르는 게 자주 다니는 이들보다 낯선 이들이 사고를 내기 쉽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요즘 차에 많이 설치된 '길도우미('내비게이션'을 국립국어원 우리말 다듬기에서 결정한 표현)'를 통해 운전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입력을 의무화한다.

다음으로 경고판 또는 펼침막을 사고다발지역에 설치하는 방법이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가끔 '교통사망사고 일어난 곳'이란 경고문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차에 치여 죽었다는 글귀를 보면서 경각심을 느끼듯이 '야생동물 수십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곳' 같은 글귀를 보고 신경 쓰지 않을 운전자가 있을까?

또한 사고가 잦은 곳에 가로등을 달아놓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사고의 대부분은 순간적으로 들어온 차량의 강한 전조등에 야생동물들이 방향 감각을 잃어 일어난다고 하니 가로등을 켜놓아 불빛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방법은 동물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밤새도록 불을 켜놓아 주변 식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하니 좀 더 깊이 연구한 뒤 사용해야 할 방법 같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꼭 생각하여야 할 건 동물의 안전을 위함이 결국 우리 인간의 안전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야생동물을 치었을 때 운전자나 차량이 받는 충격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결국 '찻길동물사고'를 막는 건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이롭게 함이라는 걸 인식한 상태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단순히 야생동물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걸 뚜렷이 알 것이기에.

어제 오늘 고라니와 너구리 두 마리 야생동물의 시체를 길가로 치우면서 안타까움에 앞서 이런 일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였다.
#야생동물 #찻길동물사고 #로드킬 #생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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