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37) 일촉즉발

[우리 말에 마음쓰기 384] ‘사시사철’과 ‘늘-철따라-철마다’

등록 2008.07.26 14:22수정 2008.07.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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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시사철

.. 꽃은 항상 나를 달래 준다. 사시사철 꽃이 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다. 철 따라 나오는 각양각색의 꽃들. 그들은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온 것 같다 ..  《노은님-내 짐은 내 날개다》(샨티, 2004) 24쪽


‘여간(如干)’은 ‘좀’으로 다듬어 줍니다. ‘각양각색(各樣各色)의’는 ‘갖가지’나 ‘온갖’으로 다듬어 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위(爲)해”는 “나 같은 사람을 생각해”로 풀어냅니다.

 ┌ 꽃은 항상 나를 달래 준다
 ├ 사시사철 꽃이 있다는 것
 └ 철 따라 나오는 꽃들

보기글을 보면 글월 하나마다 뜻이 비슷한 말이 하나씩 보입니다. 첫 글월에서는 ‘항상’, 둘째 글월에서는 ‘사시사철’, 셋째 글월에서는 ‘철 따라’.

첫째와 둘째 글월에 쓰인 말은 비슷한 느낌이고, 둘째와 셋째도 서로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라면 이 보기글을 “꽃은 늘 나를 달래 준다. 한 해 내내 꽃이 있다는 일이 얼마나 반가운지. 철 따라 나오는 온갖 꽃들. 이 꽃들은 아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세상에 왔구나 싶다”쯤으로 쓰겠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면 한결 부드러우며 살갑게 글을 쓸 수 있고, 생각을 펼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얄궂거나 안타깝거나 우리 삶과 어긋나거나 동떨어진 낱말이나 말투는, 그만큼 우리 삶도 제대로 돌아보지 않거나 우리 말도 차분히 살피지 않기 때문에 나오고 만다고 느낍니다.


ㄴ. 일촉즉발 1

.. 거의 몸을 날려 막아야만 하는 일촉즉발의 순간들이었다 ..  《이란주-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 2003) 215쪽


‘순간(瞬間)’은 ‘때’로 다듬습니다.

 ┌ 일촉즉발(一觸卽發) : 한 번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같이 몹시 위급한 상태
 │   - 일촉즉발의 상황 / 일촉즉발의 순간 / 일촉즉발의 위기 /
 │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다
 │
 ├ 일촉즉발의 순간들이었다
 │→ 아슬아슬한 때였다
 │→ 아찔한 때였다
 └ …

톡 하고 건드려도 터질 듯한 모습을 보면 살그머니 ‘두렵’습니다. 말 한 마디 잘못 나오면 꽝 하고 터질 듯 말 듯한 모습을 보면 적이 ‘무섭’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르릉 쾅쾅 뚜껑이 열릴지 모르는 ‘살엄음판’은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 일촉즉발의 상황 → 아슬아슬한 상황
 ├ 일촉즉발의 위기 → 터질 듯 말 듯한 위기
 └ 일촉즉발의 긴장감 →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긴장감

괜히 건드려서 덤터기를 쓰지 말자며 ‘아슬아슬’ 지나가고 싶습니다. 잘못 건드려서 불똥이라도 튈까 봐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ㄷ. 일촉즉발 2

.. 동구권에서도 폴란드, 루마니아 및 유고슬라비아가 외채상환을 연기했으며, 헝가리와 동독도 일촉즉발의 사태에 놓여 있었다 ..  《다렐 델라메이드/김지명 옮김-외채, 무엇이 문제인가》(일월서각, 1985) 21쪽

‘연기(延期)했으며’는 ‘미루었으며’로 고쳐 줍니다.

 ┌ 일촉즉발의 사태에 놓여 있었다
 │
 │→ 아슬아슬했다
 │→ 벼랑 끝에 놓여(몰려) 있었다
 │→ 곧 터질 듯했다
 │→ 건드리면 터질 듯했다
 └ …

“한 번 건드리면 곧 터진다”는 ‘일촉즉발’입니다. 이런 말은 그냥 “건드리면 터질 듯하다”처럼 쓰면 훨씬 낫지 싶어요. 한자를 아는 사람들, 고사성어 따위를 좀 배운 사람들이나 어렵잖게 헤아릴 만한 말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들으면 곧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알아들을 말을 써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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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우리말 #우리 말 #사자성어 #상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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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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