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

― ‘철도의 시대’, ‘기준 미달의 물고기’, ‘낱말의 쓰임새’ 다듬기

등록 2008.10.20 17:22수정 2008.10.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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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철도의 시대

 

.. 그러나 철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보다 척박하고 황량한 이스트 플럼 크리크 쪽에 보다 경사가 완만한 지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권영주 옮김-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7쪽

 

 이 글에 나오는 “철도의 시대”라는 말은 “철도 시대”로만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우리가 “영웅의 시대”라 하지 않고 “영웅 시대”라 하고, “삼국의 시대”가 아니라 “삼국 시대”라 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토씨 ‘-의’ 못지않게 다른 낱말 문제가 곳곳에 보이는군요. ‘도래(到來)’, ‘보다’, ‘척박(瘠薄)’, ‘황량(荒凉)’, ‘경사(傾斜)’, ‘완만(緩慢)’, ‘지대(地帶)’ 같은 말은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이 아니거든요. 이런 얄궂은 낱말이 한 글월에 뒤섞여 있다니, 이것참. 이렇게 글을 못 쓰고 낱말을 못 고를 수 있을까요.

 

 ┌ 철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 철도 시대가 찾아오면서(다가오면서)

 ├ 보다 척박하고 황량한 → 더욱 거칠고 메마른

 └ 보다 경사가 완만한 지대가 있다 → 좀더 비탈이 덜한 땅이 있다

 

 저는 이렇게 다듬어 봅니다. 이 말 말고도 다른 말로 다듬을 수 있고, 좀더 살갑고 알뜰한 말을 헤아려도 됩니다. 문제는, 엉뚱한 낱말이 뒤섞인 얄궂은 말을 아무 거리낌없이 쓴다는 대목에 있습니다. 또, 이런 엉뚱한 낱말이 섞인 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한테 있고요.

 

 

ㄴ. 기준 미달의 어린 물고기들

 

.. 도라 잭슨은 전복을 따거나 고기를 잡을 때 전복 한 무리에서 두세 마리 이상을 따지 않으며 기준 미달의 어린 물고기들은 잡지 않는다 ..  《팀 윈튼/이동욱 옮김-블루백》(눌와,2000) 155쪽

 

 “두세 마리 이상(以上)을 따지 않는다”는 말은 “두세 마리만 딴다”나 “두세 마리 넘게는 따지 않는다”로 다듬어 줍니다.

 

 ┌ 미달(未達) : 어떤 한도에 이르거나 미치지 못함

 │  - 정원 미달 / 함량 미달 / 기준 미달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

 ├ 기준 미달의 어린 물고기들

 │→ 기준에 미달된 어린 물고기들

 │→ 기준에 못 미치는 어린 물고기들

 │→ 아직 어린 물고기들

 │→ 조그맣고 어린 물고기들

 │→ 크기가 작은 어린 물고기들

 └ …

 

 “기준에 미달된 어린 물고기”쯤으로는 적어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미달’을 손봐서 “기준에 못 미치는”이나 “기준에 떨어지는”으로 적을 수 있어요. 느낌을 살려서 “아직 어린”이나 “아직 작은”이나 “작고 어린”으로 풀어내어도 됩니다.

 

 

ㄷ. 세 낱말의 쓰임새

 

.. 이 세 낱말의 쓰임새를 정확하게 알고 될 수 있는 한 상황에 맞추어서 적절하게 쓰는 것이 좋다 ..  《남영신-남영신의 한국어용법 핸드북》(모멘토,2005) 150쪽

 

 ‘정확(正確)하게’는 ‘올바로’나 ‘제대로’로 손질합니다. “될 수 있는 한(限)”은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으로 다듬고, ‘상황(狀況)’은 ‘그때그때’나 ‘흐름’으로 다듬으며, ‘적절(適切)하게’는 ‘알맞게’로 다듬습니다. “쓰는 것이”는 ‘써야’나 ‘써야지’로 손봅니다.

 

 ┌ 세 낱말의 쓰임새를

 │

 │→ 세 낱말 쓰임새를

 │→ 세 낱말이 어찌 쓰이는가를

 │→ 세 낱말을 어떻게 쓰는지를

 └ …

 

 토씨 ‘-의’를 꼭 붙여야 하는지 아닌지 헷갈리다면, 한 번은 붙여서 말을 해 보고 한 번은 떼어서 말을 해 봅니다. 이렇게 해 보면서 어느 쪽이 부드럽게 말이 나오는가를 살핀 다음, 말씨를 어떻게 추슬러 주면 한결 나은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적잖은 분들은 이만큼 짬을 내어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써야 알맞는지 저렇게 써야 걸맞는지 돌아보지 못합니다. 너무도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토씨 ‘-의’는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하는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한두 번이지만, 나중에는 서너 번도 아닌 열 번 백 번이 되다 보니까, 저절로 ‘잘못 쓰는 말버릇’이 자기 말투가 되어 버리고, 이렇게 굳은 자기 말투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한테 익은 말씨이기에 그대로 써야 한다’는 외곬로 뿌리를 내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20 17:22ⓒ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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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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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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