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49) 둔(鈍)하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 456] "벌레의 활동은 둔해지고" 다듬기

등록 2008.10.22 14:40수정 2008.10.22 14:40
0
원고료로 응원

 

.. 그러나 10월, 11월 날씨가 서늘해지면 벌레의 활동은 둔해지고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후루노 다카오/홍순명 옮김-백성백작》(그물코,2006) 173쪽

 

 “벌레의 활동(活動)은”은 “벌레 움직임은”이나 “벌레들은 움직임이”로 다듬습니다.

 

 ┌ 둔하다(鈍-)

 │  (1) 깨우침이 늦고 재주가 무디다

 │   - 머리가 둔하다 / 어리석고 둔한 사람

 │  (2) 동작이 느리고 굼뜨다

 │   - 걸음걸이도 느리고 행동도 둔하다 / 차량들의 움직임이 둔하다

 │  (3) 감각이나 느낌이 예리하지 못하다

 │   - 그녀는 둔해서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 신경이 둔하고 무식해서

 │  (4) 생김새나 모습이 무겁고 투박하다

 │   - 날씨가 추워서 옷을 껴입었더니 몸이 둔하다 / 무겁고 둔해 보이는 몸집

 │  (5) 기구나 날붙이 따위가 육중하고 무디다

 │   - 피해자의 머리에는 둔한 흉기로 얻어맞은 듯한 상처가 보였다

 │  (6) 소리가 무겁고 무디다

 │   - 멀리서 둔하게 들리는 대포 소리

 │  (7) 빛이 산뜻하지 않고 컴컴하다

 │   - 창틀에는 둔하게 빛이 나는 무슨 기계가 하나씩 놓였는데

 │

 ├ 벌레의 활동은 둔해지고

 │→ 벌레는 뜸해지고

 │→ 벌레는 줄어들고

 │→ 벌레는 사그라들고

 │→ 벌레는 잦아들고

 └ …

 

 곡식을 갉아먹는 벌레이지만, 날이 서늘해지면 조금씩 줄다가 어느새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에서는 ‘둔하다’를 썼는데, 이 말보다는 ‘줄다-잦아들다’ 같은 말이 한결 어울리지 싶어요.

 

 ┌ 머리가 둔하다 → 늦되다, 어리석다, 모자라다

 ├ 움직임이 둔하다 → 느리다, 굼뜨다

 └ 신경이 둔하다 → 무디다

 

 국어사전을 보면 모두 일곱 가지 ‘둔하다’가 보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도 이 말 ‘둔하다’를 퍽 오랫동안 입에 달고 살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일곱 가지 쓰임새를 하나씩 놓고 입에 굴려 봅니다. 어릴 적부터 ‘둔하다’라는 말만 썼는지, 다른 말도 함께 썼는지 곱씹어 봅니다.

 

 ┌ 둔해 보이는 몸집 → 투박하다, 무겁다

 ├ 둔한 흉기로 얻어맞은 → 묵직하다

 ├ 둔하게 들리는 소리 → 무겁다

 └ 둔하게 빛이 나는 → 칙칙하다

 

 낱말풀이 (1)∼(3)은 어느 만큼 썼어요. 그렇지만 (4)∼(7)은 쓴 일이 없습니다. 다른 분들 입에서도 (4)∼(7)은 거의 들을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또한, (1)∼(3)에서도 저마다 다른 모습을 알맞게 맞추어 썼구나 싶어요. 덜 떨어지거나 잘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머리가 둔하다”고도 했지만 “머리가 어리석다”라든지 “머리가 모자라다”고 했습니다. 잰 몸놀림을 보여주지 못하고 늘 어기적어기적하는 모습을 두고 “움직임이 둔하다”고도 했지만 “움직임이 느리다”거나 “움직임이 꿈뜨다”고도 했어요. “그것도 못 느낄 만큼 둔하냐”고도 했으나 “그것도 못 느낄 만큼 무디냐”고도 했어요.

 

 가만히 보면, 때와 곳에 따라 다 다르게 쓰던 우리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이처럼 다 다르게 쓰던 우리 말이 사라지고 있으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쓰임새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할 만큼 되었습니다. ‘어리석다-모자라다-느리다-굼뜨다-무디다-투박하다-묵직하다-칙칙하다’ 같은 말을 어디에서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 이런 낱말이 쓰이나요. 동화책이나 소설책에 이런 말이 쓰이나요. 시나 수필에 이런 말이 쓰이나요. 방송에서 새소식을 알리는 분들이, 신문에 기사를 쓰는 분들이 이런 말을 쓰나요.

 

 우리가 제때 제대로 못 느끼는 사이에 사그라드는 우리 말이구나 싶어요. 우리 스스로 쓰임새를 줄이고 쓰이는 자리를 없애며 쓸모를 내버리고 있는 우리 말이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안 가꾸는 우리 말이며, 우리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낄 마음을 안 쏟는 우리 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22 14:4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